하우스 문을 여니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딱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하우스 안으로 한 발짝 내딛자 TV에서만 보던 어느 열대지방 키 큰 나무숲에 성큼 들어선 느낌이다. 활엽수는 하늘을 가릴 듯 넓게 뻗어 울창하고 5미터 남짓 쑥쑥 자란 나무엔 연두빛이 감도는 바나나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노랗게 잘 익기라도 했으면 뚝 떼 내어 한 입 베어 물고 싶을 만큼 싱싱하고 튼실하다.우리나라의 최남단, 제주도에서나 겨우 볼법한 풍경을 지리산 자락, 경남 산청의 한 시설하우스로 옮겨온 청년이 있다. 1ha 규모의 하우스에서 총 2,650본
인간이 만든 화학물질은 등록 기준 약 1천 200만 종이고, 약 10만 종이 상업 유통되고 있고, 매년 2~3천 종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 노동현장에서 유통되는 화학물질은 대략 10만 종이다. WHO(세계보건기구) 산하 IARC(국제암연구소)가 60년에 걸친 조사연구 작업을 통해 건강 유해·위험성과 독성정보를 명확히 밝혀낸 화학물질은 고작 1,000종에 불과하다. 이 1,000종의 화학물질 중 500종은 발암물질, 생식독성물질, 변이원성물질 즉 CRM 물질로 사람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화학물질은 1리터당 몇 마이크로그램(
지금은 아이들이 자라서 덜하지만, 둘 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우리 부부도 육아는 전쟁이었다. 결혼한 지 3개월, 3년이 고비라고, 그 고비만 넘기면 괜찮아진다고 누가 그런 새빨간 거짓말을 떠들었나. 우리 부부는 결혼한 지 15년이 된 지금도 싸운다. 그것도 치열하게. 하루하루가 고비고 하루하루가 위기다. 좀 달라진 게 있다면 아이들이 좀 어릴 때는 부부싸움의 99%는 “누가 아이를 돌볼 것이냐”의 문제로 일어난 일이었다면 지금은 레퍼토리가 좀 다양해진 정도? 당시 “육아는 엄마 몫이다”를 주장하기 위해 남편이 즐겨 ‘인용’하던 이야
최근 방송을 시작한 MBC 드라마 에 이런 장면이 나왔다. 재계서열 5위 안에 드는 그룹 총수의 아들이 자신, 아니 정확히는 부친의 소유인 백화점에 들렀는데, 여성 주차안내원이 VIP인 자신의 차를 알아보지 못하자 차 옆으로 불러 반쯤 무릎 꿇린 자세로 앉힌 후 짜증을 부린다. 이 모습을 본 다른 주차안내원이 불만 섞인 혼잣말을 내뱉는데, 이 말을 들은 재벌 2세 남성은 화를 내며 차 밖으로 나와 그를 밀쳐 넘어뜨리고 이에 항의하는 여성 주차안내원을 무릎 꿇린다.드라마 홈페이지 속 등장인물 소개와 인물 관계도를 찾아봤다. 재
제작비 200억 원을 넘게 들인 영화 이 개봉했다. 한국에서 제작비 200억 원을 넘게 들인 영화 만들기 자체가 비상식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위해서 600만 명의 관객이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1,000만 관객 넘기는 영화가 종종 나오는데 투자해볼 가치가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할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국민 5,000만의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이 드는 영화가 있는 사실이 비상식적인 일이고, 그런 영화는 1년에 만드는 50편 중 한 편에 불과하다.200억 원 넘는 제작비를 쓰는 영화는 일종의 도
해미(전종서)는 나레이터 모델 일을 하다가 우연히 유통회사 아르바이트를 하는 종수(유아인)를 만나 술을 마시러 간다. 이때 해미는 귤을 까서 먹는 팬터마임을 보여준다. 종수에게 말한다. “귤이 실제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 귤이 없다는 사실을 잊으면 되는 거야.”해미는 종수와 두 번째 만남 때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해미는 아프리카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여행 기간 자신의 집에 있는 고양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해미의 고양이는 낯선 사람이 있으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해미가 고양이를 불러도 나오지 않자 종수는 고양이가 정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망가지지 않은 언론이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그중에서도 심각하게 망가진 언론 중 한 곳은 바로 MBC였다.MBC가 얼마나 망가졌는지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그리고 이들 정권에서 임명한 경영진이 생존했던 마지막 1년을 포함한 지난 10년 동안 두 번의 장기 파업에 나섰던 MBC 언론인들이 절절하게 고백한 잘못과 수치의 말들만 봐도 알 수 있다.이들은 시청자 국민에게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정상 방송의 모습을 찾겠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지난 연말, 이들은 전임 정권에서 임명한 경영진을 합법적으로 퇴
정신없이 바쁜 엄마, 아빠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그래도 보육에 대한 큰 걱정 없이 키울 수 있었던 바탕은 오롯이 지역에 있는 어린이집이었다.두 아이 모두 근로복지공단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을 만 1세부터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꽉꽉 채워 다녔다. 두 아이 모두 ‘장기근속(?)’자에게만 준다는 감사장을 받았다. 그 덕에 나는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을 졸업할 때 학부모 대표로 인사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지난해에 지리산으로 귀농을 하신 원감 선생님 집으로 가족 모두 놀러 다녀오기도 했다. 큰아이는 선생님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지만, 작은 아이
산업안전보건위원회(아래 산안위)는 산업안전보건법(아래 산안법) 19조에 따라 노․사가 사업장 노동안전보건(아래 노안) 문제를 공동으로 심의․ 의결해 산업재해 예방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노조의 의지에 따라 안전보건 현안에 관한 노동자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다.산안위 설치대상은 1) 상시 근로자 100명 이상의 사업장 2) 유해․위험 업종으로서 상시 근로자 50명 이상 100명 미만을 사용하는 사업장이다. 노동자 위원과 사용자 위원을 각각 10인 이내 동수로 구성한다.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천 년 차’라 일컫는 최고(最古) 차나무 아래로 짙은 초록빛을 띤 야생 차밭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깎아질 듯 가파른 산비탈에 굽이굽이 유연한 곡선을 드러낸 차밭에 여성 농민들이 하나둘 들어선다. 작달막한 차나무 사이 좁다란 공간에 서자 “똑, 똑, 똑, 똑” 찻잎 따는 소리가 이내 정갈하게 들리기 시작한다.경남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 도심다원의 차밭에서 찻잎을 수확하는 여성 농민들의 손길이 이른 아침부터 바지런하다. 차밭을 오가며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초록 찻잎을 따 허리에 동여맨 앞주머니에 넣기를 반복하자 때아닌 오월 더위에 비지
혼슈에서 홋카이도로 들어오는 현관인 하코다테는 150년 홋카이도 개척사와 함께하는 도시다. 하코다테는 일본 최초의 개항도시이기도 하다. 1854년 3월 31일 맺은 미일 화친조약으로 일본 정부는 시모다와 하코다테를 개항했다. 그 뒤로 하코다테는 외국 선박의 기착지이자 외국인들이 머무는 도시로 성장했다.일본의 홋카이도 개척과 함께 홋카이도에 철도를 깔았다. JR 하코다테역(이하 하코다테역)은 홋카이도 남단에 있는 주요 역이다. 철도로 본토인 혼슈에서 홋카이도로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역이기도 하다.하코다테 역에 도착해 플랫
벌써 4년 전 일이다. 남측에서 정성스레 준비한 딸기모주(어미모종) 5,000개가 북측으로 전달된 지가. 남측에서 키워 북측에서 육묘한 모종을 남측에 재이식해 생산하는 경남통일딸기, 사단법인 경남통일농업협력회(경통협)는 남북의 화해와 교류, 평화의 상징으로 딸기를 택했다. 그러나 2014년 북측에 전달한 딸기모주는 남측으로 다시 내려오지 못했다. 남북관계 경색으로 전달 시기가 차일피일 늦어지며 북측에서 모종을 제대로 키울 만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어렵게 준비한 모주였지만 2014년 그해, 경남통일딸기 사업은 흐지부지됐다.
며칠 전 교통사고가 나서 자동차보험 회사에 사고접수를 했다. 전화하고 기다린 지 30여 분 만에 도착한 사고처리 담당자가 탑승자들이 다쳤는지 살펴보고, 병원치료 방법을 안내해 주고, 다음 과정으로 보험처리를 넘겨주는 등 일사천리로 과정을 진행했다.노동자가 일하는 현장에서 사고가 났을 때 바로 달려와서 사고 수습을 해주고,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주고 처리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나? 회사는 다치거나 병든 노동자에게 치료비 몇 푼 주고 쉬라면서 산재를 숨기고 산재보상을 도와주지 않는다.노동조합이 있는 현장은 노조가 산재신청을 도와
어릴 적 세 들어 살던 주인집의 둘째 딸과 함께 과외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시험을 보면 그 친구와 늘 점수 차이가 크게 났다. 안 그래도 셋방살이에 주눅 들었던 나는 공부 실력이 크게 차이가 나니 더욱 주눅 들어 살았다. 무엇보다 엄마에게 미안했다. 외화벌이 노동자인 아빠 대신 홀로 우리 남매를 키우던 엄마 기를 살려드리게 보란 듯이 공부라도 잘했어야 하는데.어느 날 주인집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엄마가 일을 다녀서 미야가 공부를 못하는 것 같아.”“그러게. 엄마가 있어야 하는데.”나는 이상했다. 나는 엄마가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 안에서 국민은 딱 하루, 투표일에만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보통 선거 당일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하는 말이다. 하지만 투표를 한다 해도 그게 과연 ‘제대로’ 주권을 행사한 행위였다고 볼 수 있을까.생각해보자. 제대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선, 다시 말해 유권자 스스로 아깝지 않은 한 표를 던졌다 자신하기 위해선,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그 안에서 최선의 선택지를 골랐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한 명의 후보를 선택하는 대선이나 국회의원 선거에선 유권자들도 어느 정도 스스로 확신하며 선택했다
영화 (아래 ) 보기는 단지 영화를 관람하는 행위가 아니다. 제주 4.3의 죽은 원혼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형식으로 구성한 영화 을 보기 위해선 제사에 동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계엄 군경과 서북청년단이 제주에서 초토화 작전을 시작한 직후인 1948년 11월, ‘큰 넓궤’라 불린 동굴과 정방폭포 등지에서 죽은 영혼들을 만나야 한다. 신위(神位 : 영혼을 모셔 앉히다) - 지역영화로서 은 한국영화이지만 한글자막이 있는 영화다. 제주도 말을 담은 영화
지난해 가을부터 올해 봄까지, 광장을 메웠던 촛불 시민들이 국정농단에 대한 책임을 물은 대상은 부패한 청와대와 주변의 정치·경제 권력만이 아니었다. 이명박 정권부터 박근혜 정권까지 무려 9년의 시간을 충실하게 정권에 복무한 언론을 시민들은 국정농단의 공범으로 꼽았다.그리고 5월, 시민들은 정권을 교체했고 국정농단의 중심 인물들은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치를 죗값이 없다고 주장하며 침묵하거나 부패 대신 무능을 선택하거나, 재판에 임하는 전략은 각기 다르지만 국정농단 세력으로 지목된 이들은 어쨌든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그러나 언론은
포데모스(Podemos)는 스페인말로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뜻이다. 이 흔한 구호를 정당명으로 채택한 새로운 좌파의 정치 실험은 스페인 정치를 강타했다. 2014년 1월 반긴축 반부패를 기조로 공식 출발한 신생정당 포데모스는 첫 선거인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네 번째 당으로 등장했다. 2015년과 2016년 총선에서 500여만 표를 얻어 세 번째 당으로 도약했다.포데모스는 파시스트 독재자 프랑코 사망 이후 민주화 이행을 통해 형성한 이른바 ‘1977년 체제’와 지난 40년 동안 스페인 좌파를 지배한 사회당(PSOE)의 헤
최근 드라마 (tvN)에서 인상적으로 본 장면이 있다. 여성의 손목을 잡아끄는 남성을 향해 주인공 시목(조승우)이 “그건 폭력”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여성의 손목을 잡아끄는 남성의 모습은 오랫동안 로맨스 혹은 남성의 분노를 표현하는 장치로 문제의식 없이 등장했다.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성 평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여성을 다루는 미디어의 모습을 둘러싼 토론이 이어지며, 그간 드라마에서 상투적으로 등장시킨 손목 잡아끌기에 불편함을 표시하는 목소리들이 늘었다.이런 흐름에서 극 중 인물의 입으로 여성
더 낮은 임금, 더 열악한 노동조건을 찾아 국경을 넘나들며 이윤을 극대화하는 자본에 맞서 아시아 노동자들이 공동 임금인상 투쟁에 나섰다.국제노총(ITUC)은 지난 5월 31일부터 이틀 동안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아시아 생활임금 최저선 포럼(Asia Wage Floor Forum)’을 열고 ‘월급 50달러(약 56,280원) 인상’을 공동 요구로 채택했다. 이 ‘+50달러’ 캠페인은 삼성을 표적으로 하는 초국적 기업 글로벌 공급사슬 내 노동기본권 보장 캠페인과 함께 ‘기업의 탐욕을 멈춰라’ 캠페인의 양축이다. 인도네시아, 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