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稱讚) - 잘한다고 추어주는 것. 또는 그러한 말.
격려(激勵) - 용기나 의욕이 솟아나도록 북돋아 줌.

학부모님들께 보내드리는 부모 교육 가정통신문에 칭찬 많이 해주십사 부탁하면 우리 아이는 칭찬을 해볼까 생각하다가도 도대체 칭찬할 것이 없으니 고민이라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찌보면 칭찬거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칭찬이란 무언가 큰 일, 대단한 일, 어른들이 좋아하는 일을 해내야만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이 고정된 건 아닌가 합니다. 금메달이 아니면 슬픈 표정으로 고개도 못 드는 대표 선수들이 보여주듯이 과정보다 결과만 중시하는 사회 풍조, 1등이 아니면 실패자라고 치부해 버리는 우리의 생각은 어디서 왔을까요?

과정보다 결과만 중시하는 사회

상벌이 교육에 효과적이라면서 목표를 달성하면 상을 주고 그렇지 못하면 벌을 주어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려는 시도가 아직도 학교에선 중요한 교육 방법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사가 들고 있는 고리를 뛰어 통과하는 아이들에게 과자를 주는 게임으로 설명되는데 이는 결국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소수의 아이들에게만 효과가 있을 뿐이며, 더 많은 아이들을 실패자로 내모는 방법입니다. 갑자기 어떤 아이는 통과하면 과자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뛰는 것이 힘들다고 투정으로 부리거나, 최대한 노력해도 안 된다며 포기하거나, 고리가 너무 높다며 교사를 원망하기도 합니다. 어떤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넘는 것을 바라만 보다가 놀림을 당하면 좌절해 아예 학교를 떠나는 경우도 생깁니다.

▲ 과정보다 결과만 중시하는 사회 풍조 속에 아이들은 자존감과 자율성을 잃어가고 있다. 수능 시험지를 앞에 둔 학생.

이런 방식은 아이들에게 자존감과 책임감, 자율성을 갖게 하지 못합니다. 지금 학교 현실을 보면 그렇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쉬운 일조차 시도하지 않으려 하거나 지레 겁을 먹고 자신의 능력을 믿지 않는 일이 허다합니다. 아이들도 뭔가 대단한 일을 해야만 가치있고 존중(?)받는 인간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글씨 잘 쓴다, 손톱이 예쁘다, 깨끗하게 걸레를 빨았다 등등 아이들에겐 사소(?)하지만 나에겐 예뻐 보이는 것들에 칭찬하면 비웃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기 보다 못나고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에게 참으로 못되게 굽니다. 남을 깎아내리고 비웃음로써 자기 자신의 자존감을 확인하고 회복이나 하려는 듯.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교사로서 참으로 슬픕니다.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타인이 나를 존중하고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으면 기대에 부응하는 쪽으로 변하려고 노력하여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주변의 부정적인 평가나 선입관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실제로 부정적인 방식으로 행동하여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얻게 되는 스티그마 효과라는 것도 있습니다. 즉 아이들은 어른들이 말하는 대로 커가는 것입니다.

어른들의 말대로 아이들이 자란다

교사와 부모의 진심어린 관심이 아이의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지만 무조건적인 기대와 관심 이전에 아이들마다 다른 재능과 바람, 자존감의 강도, 스트레스를 감당하는 정도 등 아이들 저마다의 독특함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진심어린 인정이 동반되어야 효과를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잘 할 때만이 아니라 힘들 때에도 교사나 부모가 곁에 있어주기 바랍니다. 잘 한 것에 대한 칭찬만이 아니라 결과가 실패로 보일지라도 아이가 이룩한 것,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간 것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격려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나 남들에게 소음공해를 주던 수현이를 위해 교실 벽면에 ‘실내용 목소리’라고 붙여놓고 목소리가 커지면 제가 실내에서 알맞은 목소리로 모범(?)을 보이며 ‘실내용 목소리’하면서 벽면을 가리키기만 했습니다. 멈칫하며 주의를 합니다. 다시 커지면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근데 가끔 정말 작게 말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틈새를 놓치지 않고 칭찬합니다. “잘했어!” 엄지손가락이라도 들어주면 어깨를 으쓱합니다. 야외 활동 시에는 수현이의 큰 목소리가 정말 필요합니다. 수현이가 “우리반 모여라!”하면 아이들 시선 집중은 성공적입니다. 큰 목리가 나쁘거나 잘못이 아니라 때와 장소에 따라 조절할 필요가 있으며 큰 목소리가 꼭 유용할 할 때도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 아이들마다 다른 재능과 바람, 자존감의 강도, 스트레스를 감당하는 정도 등 아이들 저마다의 독특함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진심어린 인정이 동반되어야한다.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라고 해도 유리컵이 좋다며 물을 먹던 아이가 컵을 깼습니다. 마침 식탁에 있던 행주로 물을 닦습니다. 깨진 유리는 안 보이나 봅니다. 그 때 어른들 반응을 상상해봅니다.
1) 내 그럴 줄 알았어. 엄마 말 안 듣더니 잘 한다. 고집부리더니...
2) 유리부터 치워야지! 지금 뭐하는 거야. 얘가 장난하나...
3) 조심성이 없어 큰일이다! 엄마 일 또 만들어주고 짜증난다!
4) 잘 하는데, 엄마도 도와줄까. 유리에 찔리면 다치니까 먼저 큰 유리조각부터 치우고. 바닥을 잘 보면서 발을 옮겨.

어떤 반응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고, 부모와 아이의 관계를 돈독히 할까요? 아이들의 부족함을 단순히 비난하기보다는, 책임감을 느낄 줄 아는 능력이 스스로 싹터 오르도록 아이들이 실수한 어떤 상황을 바로 잡기 위해 스스로 애쓰고 있음을 이해하고 격려해주는 일은 중요합니다. 아이는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비록 어른들이 보기에는 효과적으로 대처하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흘린 물을 닦으려는 걸레질만큼은 옳았던 것입니다. 그 점을 이해하여 부모는 실수할 수도 있다는 너그러움을 보이며 아이의 실수보다 노력을 인정해준다면 아이는 스스로 책임감을 배우게 되는 긍정적인 감정 교류를 경험하며 부모와 깨진 유리조각을 치우면서도 돈독한 관계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아이들에게 실수를 저질렀을 때뿐만이 아니라, 어떤 일을 잘 해냈을 때에도 애매한 칭찬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인정과 격려를 해준다면 아이는 자신이 성취한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게 되고 또한 자기 행동에 책임지려 하며 고쳐나갈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에 근거한 인정과 격려가 책임감과 자율성 키운다

양말을 방에 벗어놓는 것 때문에 늘 갈등하던 아이가 다른 날과 달리 양말을 빨래통에 넣습니다.
1) 언제나 그래주면 엄마가 얼마나 편하겠니? 오늘만 그런 건 아니지.
2) 어쩐 일이야? 양말을 빨래통에 다 넣다니 해가 서쪽에서 뜬 건 아니겠지?
3) 양말을 넣으려면 제대로 넣어야지 제대로 뭐 하나 똑바로 하는 게 없니?
4) 착하다... 우리 아들. 사랑해.
5) 빨래통에 양말을 넣어주니 엄마가 할 일이 줄어들어 행복하구나!

어떤 반응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고 아이가 그런 행동을 자율적으로 지속하고 싶을까요?
자신의 행동을 인정을 받으면 스스로를 칭찬할 수 있게 되어 행복한 아이로 자랄 것입니다. 그러나 4번 같은 애매한 칭찬은 아이가 노력하고 향상된 모습이 가치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있게 보이려면 부모의 말을 잘 들어라’, ‘난 언제나 부모의 말을 들어야만 가치있는 존재야’로 남의 칭찬에 행불행이 좌우되게 만들거나, ‘내가 착하다니 그건 너무 과장이야’처럼 부모의 말을 자신을 조종하려는 의도로 느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칭찬도 벌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통제의 한 방법입니다. 칭찬과 벌은 타인의 의견에 좌우되고 이를 근거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해서 도움이 되었다. ~하지 못 했지만 ~는 해냈구나’가 아니라 ‘착하다 잘 한다’등에 길들여지면 그런 말을 듣지 못할 경우 부모의 인정 받지 못하는 것 같아 불안을 느끼게 될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빨래통에 양말을 넣었다. 그래서 엄마 할 일이 줄었다. 갈등이 없다. 평화롭다.’ 는 사실에 근거한 격려가 책임감과 자율성을 길러나가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또한 피그말리온 효과는 타인의 기대와 관심이 대상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부담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아이의 욕구가 아니라 이런 아이가 되었으면 하는 부모나 교사의 욕구에 맞춘 기대가 아닐까 고민해야 합니다.

그것에 비해 격려는 비록 작은 것이라도 향상되고 노력한 것에 주어지는 것이며 실패했을 때에도 주어지며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가치있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격려가 더 바람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칭찬을 한다면 아이의 성격이나 인격과 관련된 막연한 표현보다는 아이들도 인정할 만한 실제적인 노력이나 사실적인 성취에 근거를 들어야 합니다. 또한 하지 못하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격려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비록 빨래통에 제대로 넣지도 못하고 양말을 접혀진 채로 그냥 넣었다 할지라도 부모가 원했던 양말을 넣는 행동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고 격려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해결책이나 가야할 길을 알려주면 다음 행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입니다.

집중을 잘 못하는 아이에게 집중하지 않으면 혼난다 해도 여전할 때 그 아이의 속도에 맞게 시간을 작게 나누어 아이나 부모나 성취감을 맛보면서 시간을 늘려가는 건 어떨까요? 책을 5장 읽기. 10장 읽기. 3분, 5분 약속을 해서 그 약속을 지키면 격려해주는 것입니다. “5장 읽을 동안 책에 집중했어. 약속을 지켰구나. 대견하다”
이처럼 긍정적인 기대감에 찬 환경을 만들어 주고 부모가 아이의 능력에 대해 신뢰를 표현한다면 아이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일으켜 하던 일을 계속 추진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 격려는 비록 작은 것이라도 향상되고 노력한 것에 주어지는 것이며 실패했을 때에도 주어지며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가치있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들이 모든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키우며 성장해 간다는 점을 굳게 믿으며 성공이건 실패건 결과에 상관없이 언제나 그들 곁에 함께 머물러주는 것입니다. 실패하더라도 그 속에 숨은 성취와 노력을 일깨워주고 인정한다면 아이는 자신감을 얻고 다시 도전할 용기를 낼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사회는 아이들의 숨은 재능이 발휘되어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라 믿습니다.

어느 날 전염병으로 아들을 잃은 노인이 슬퍼하자 사마휘는 “감사할 일이군요.”라고 해서 사람들을 당황하게 했습니다. 그는 “당신과 부인, 손자들은 다 건강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답니다. 사마휘는 ‘잃은 것’을 생각하지 않고 ‘남은 것’을 바라본 것입니다. 우리는 커다란 흰 백지는 보지 않고 그 백지에 찍힌 아주 작은 검은 점 하나에 온통 정신을 빼앗길 때가 많습니다. <오인숙의 지혜로 여는 아침 2 중에서>

이명남 / 서울 영림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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