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전화를 하고 있는 거실로 아이가 와서 TV를 켭니다. 그때 벌어질 수 있는 대화의 한 장면입니다.

엄마 : 엄마 전화 받는 거 안 보이니? 소리 좀 줄여라. (비난과 명령)
영희 : 이게 뭐가 커요. 엄마 전화하는 소리가 더 커요.
엄마 : 꼬박꼬박 말대꾸야. 왜 그렇게 고집이야! 꺼버린다.(비난과 경고)
영희 : 엄만 아닌가 뭐! 엄만 매일 엄마 맘대로야.
엄마 : 뭐라고?
영희 ; 엄마 미워! 비 오빠가 오늘 컴백해서 처음으로 노래한단 말이에요.

이런, 엄마가 부탁하는데도 영희는 “이게 뭐가 커요, 게다가 엄만 매일 엄마 맘대로”라며 밉다고까지 하니 엄마는 화가 날 겁니다. 전화 받으랴 아이랑 입씨름하랴 바쁜 엄마는 ‘잘못을 누가 해 놓고.’ 화가 나서 아마 이어지는 대화에서는 더 거칠게 대꾸할지모릅니다.

어른 못지않게 아이들도 자기 일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엄마는 소리를 줄여달라고 명령과 경고를 하며 아이에게 거절당한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문제해결은 더 어려워지고 급기야 서로의 감정까지 상하게 될 말을 하기도 합니다.

말대답하는 아이와 부모의 갈등 

이렇게 자녀들이 자라면서 부모와 문제가 있을 때 ‘말대답’을 하거나 부모에게 거칠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겁니다. 그럴 때 부모도 역시 더 거칠게 말해서 아이들을 두렵게 만들어 행동을 바로잡으려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아이들에게 부모를 존중하라고 가르치면서 아이들은 존중하지 않는 부모의 이중적 태도만을 보여줄 뿐, 아이들과 관계 맺는 것에서도 더 나아가 다른 사람과 존중하며 관계 맺는 방식을 가르쳐주는데도 별로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일단 화가 나면 아이들이 자신이 한 행동의 이유를 설명해도 변명으로 보이고, 말대답으로 들리는 우리 부모의 마음부터 진정시킵니다. 그리고 아이의 그런 반응이 처음이라면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아이도 처음이라면 말을 해놓고도 금세 자신의 말에 더 당황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하니 엄마한테, 너 누구한테 배웠어.”라는 반응은 아이가 무시당한 자기 감정 때문에 가시 돋힌 말을 함으로써 얻고자 했던 것, 엄마를 화나게 하는 것을 성공시키는 경험을 하게 할 뿐입니다. 아이가 순간 화가 나서 하는 말에 너무 의미를 두어 문제를 확대시키기보다는 순간적인 돌발 행동으로 가볍게 여기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엄만 영희가 엄마가 밉다고 하니 지옥에 떨어지는 아찔한 느낌이야. 영희야 살려줘!” “에구, 엄마가 비에게 졌네.“ 등 유머로 분위기를 바꾸거나, 오히려 의아한 표정으로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네가 그렇게 말하니 엄만 슬프구나. 난 너를 미워한 적이 없고 다만 TV소리를 줄여달라고만 했을 뿐인데 그렇게 말하니 정말 슬프다.”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 후에 “엄마가 무엇 때문에 너를 화를 나게 했는지 말해 줄래.”라고 해봅니다.

이때 정말 아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좋아하는 가수가 컴백해서 노래를 듣고 싶어 그랬다)을 설명하면 변명이 아니라 설명으로 듣고 경청하며 아이의 감정을 받아들여줘야 합니다.

“겨우 그것 때문에 하면 엄마한테 화를 냈니? 어처구니없구나.”하면 싸움은 반복되고 자기의 일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고 엄마한테 삐진 마음은 다시는 아이가 자기 마음 속 이야기를 하지 않게 할 겁니다. 그 대신에 “그랬구나! 오랜만에 비 오빠가 나와서 네가 무척 기분이 좋아 그랬구나.”라고 한다면 문제 해결과 동시에 다음번의 싸움도 피할 수 있고 관계가 좋아지는 방법을 아이에게 가르쳐 줄 수 있을 겁니다.

이 방법은 아이에게 ‘네 의도대로 나는 화내는 것을 보이고 싶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아이를 무례하게 말하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와 말다툼을 하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막고 자기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아이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을 때 이용할 수 있는 행동의 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런 행동이 습관적이라면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뭔가 어긋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 태도는 아이가 갖고 태어나는 성격이 아니라 가족 내에서 어른들끼리 말하는 방식일 수도 있기 때문에 가족들의 역할 변화가 절대 필요합니다. 아이가 부모를 존중하도록 가르치려면 부모가 먼저 아이를 존중하는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먼저 아이를 존중하자

학년이 바뀌어도 학교를 옮기지 않는 경우에는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거나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서 선생님의 반응을 떠보는 아이들의 튀는(?) 행동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학교를 새로 옮기면 한 달에서 두 달 정도는 신고식(?)을 치러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번에도 2학년의 한 반에서 심하게 그러더군요. 들어가면서 인사할라치면 “국어 정말 하기 싫어!” 목소리가 감기로 쉬자 “목소리 정말 짜증난다.” 정말 짜증은 제가 나지요. 수업을 잘 하고 싶은데 시작부터 장애물이니까요.

하지만 그럴 때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어떻게 선생님에게 그런 말을!” 이라는 반응을 보인다면 그것은 아이들에게 선생님을 화나게 하려는 자기들의 의도가 성공했다는 성취감(?)만을 줄 뿐입니다. 흔히 요즘 아이들 말로 낚이는 것이지요.

이럴 때 “정말? 너는 국어를 싫어하니? 국어 공부에 흥미가 없다는 말이지?”, “선생님은 네가 국어를 싫어한다고 하니 어떻게 해줘야 할지 걱정되는구나! 왜냐면 아직 나하고 국어를 배운 시간이 얼마 안 되는데 그렇게 말하니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등으로 반응을 합니다. 이 방법은 앞서 말한 것처럼 아이의 의도대로 화내는 것을 보이지 않으며 아이를 무례하게 말하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면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가끔 아이들이 수업을 방해하거나 수업에 집중하지 않을 때 “내가 중요한 것을 설명할 때 네가 다른 친구와 이야기하고 있으면 네가 듣지 못할까 봐 걱정되는구나! 여기 좀 보자.” 라고 지적을 하면 다른 애들과는 달리 “왜 나만 그래요. 제도 그랬는데. 만날 나만 미워해!” 등의 반응을 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럴 때도 아이의 눈을 응시하며 진심으로 의아한 표정을 짓거나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너만 미워한다고 생각하는 거니?”라고 말합니다. 이러면 어떤 아이들은 아니라거나 침묵으로 답을 대신합니다. 어떤 아이들은 여전히 수긍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갈등 해결에 최소의 시간을 소모하고 다시 수업으로 돌아오도록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뭔가를 말할 때 전혀 듣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지면 부모는 좌절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에 집중하면 다른 사람이나 상황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특성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무시당했다고 분노를 느끼기 보다는 어떻게 아이들에게 관계 맺는 것을 보여줄지 생각해야 합니다.

'나 전달법'으로 대화하기

앞서 엄마와 영희의 대화는 어떻게 이끌어 가면 좋았을까요?
일단 경청을 한다면 좋아하는 오빠가 오랜만에 발표한 노래니까 더 잘 듣고 싶었구나 하고 엄마가 영희의 감정을 읽어주면 영희가 기꺼이 소리를 줄여주었을지도 모릅니다. 다음으로 ‘나 전달법’으로 “엄마가 중요한 전화인데 저쪽 목소리가 잘 안 들리는구나!” 라고 엄마의 상황만 전달했다면 훨씬 더 저항을 줄일 수 있을지 모릅니다. 갈등 상황에서는 나를 주어로 하는 ‘나 전달법’이 상대를 움직이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전화를 다른 방에서 하는 환경 재구성으로 갈등을 피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또는 전화가 끝난 뒤에 거실은 공동의 장소이므로 서로 방해되지 않도록 공동생활 규칙을 만드는 문제해결 대화도 할 수 있을 겁니다.

1) 엄마 : 전화 받는데 저쪽 목소리가 너무 작아 안 들리는구나! TV 소리 좀 줄여주지 않을 래. (요청, 선택은 아이의 몫)
영희 : 네. 알았어요. 미안, 엄마. 내가 그만 비 오빠 보려고 엄마가 전화하는 거 생각 못하고 방해했어. 다음부턴 조심할게요.

2) 엄마 : TV 소리를 크게 틀어야 할 이유가 있니? 엄마가 전화를 하는 중이라서 방해가 되는구나. (질문, 단, 왜 크게 하니? 는 비난으로 들리는 질문이므로 피하세요.)
영희 : 비 오빠가 오늘 컴백해서 처음으로 노래해요.
엄마 : 응 그래. (무선전화기라면 전화기를 들고 방으로 가거나 아니면 상대에게 좀더 크게 말해달라고 양해를 구하거나 등등)
영희 : 내가 그만 비 오빠 보려고 깜빡 잊고 엄마 방해했는데 고마워, 엄마.

이렇듯 더 이상 누가 더 문제인가 찾아내는 말하기에서 벗어나 서로 존중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부모가 아이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가장 최선의 것을 배우고 택한 것이 아니라 부모도 그저 그 윗세대인 어른들에게 배운 것을 되풀이하는데 지나지 않습니다. 이제 부모의 말과 행동이 아이에게 의도하지 않더라도 그대로 모델이 되어 타인과 관계맺는 방식으로 고착될 수 있음을 알고, 아이의 말대꾸나 관계 맺는 방식을 아이의 탓으로만 돌리고 비난, 경고, 훈계만 하는 방식이 아니라 부모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부모에게 말대답하는 아이에게 상처받으며 배신감을 느끼시나요? 그래서 섭섭하고 화가 나서 아이가 미워지나요? 저도 학교나 집에서 아이들에게 그런 마음이 들면 이 글을 읽으며 마음이 평정을 찾곤 합니다. 도움되실 것이라 믿습니다.

감사할 줄 모름에 대하여
흙이 그 위에 내리 쬐는 햇빛에 감사하던가요?
나무가 자신이 움트고 나온 씨에게 감사하던가요?
지빠귀새가 포근한 가슴으로 자기를 따뜻하게 감싸준 어미새에게 감사의 노래를 부 르던가요?
당신은 당신의 부모님에게 받은 모든 것을 아이에게 선물로 주나요?
아니면 만기 이자까지 셈해서 돌려받기 위해 모든 항목을 꼼꼼히 적어놓으면서 아이 에게 그저 빌려주는 것인가요?
당신의 사랑은 대가를 돌려받기 위해 베푸는 것인가요?
- 야누슈 코르착의 < 아이들 > 중에서 -

이명남 / 서울 영림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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