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도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꺼린다. 산업재해(아래 산재)가 줄어들기를 바란다. 생산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의 얘기다. 회사는 개별 노동자들이 ‘조심’해서 안전사고를 줄이기를 바란다. 그들의 ‘안전’에는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산재를 줄이는 것을 포함하지 않는다.

2011년 한국지엠에서 한 보전작업자가 고장 설비 관리 중 손가락 협착 사고를 당했다. 설비 가동을 중단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장 원인을 파악하던 중 조립작업자가 설비를 작동시켜 사고가 발생했다.

회사는 사고 이후 해당 기계의 고장원인, 재해발생 원인에 대한 사고조사, 안전보건교육은 전혀 없이 라인을 정상 가동하다가 라인을 원래 가동하지 않는 ‘쉬는 시간’에 설비를 고쳤다.

뒤늦게 경과를 들은 대의원이 사내 안전보건규정에 규정하는 재해발생 원인조사, 재발방지 대책마련, 안전교육실시와 사고 위험에 대한 조합원들과 회사의 각성을 위해 설비 가동을 중단했다. 이후 임시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열어 ‘라인을 가동하는 도중 정비 작업을 하는 경우 사고 위험이 높기 때문에 설비 가동을 중단한 후 정비한다’는 원칙을 다시 확인했다.

그동안 보전작업자들 사이에서 유사한 사고가 반복해 발생했음을 회사도 인정하고 향후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약속하기도 했다. 사건 발생 20여일 후, 회사는 해당 대의원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회사에 막대한 재산상 손해를 끼쳤을 때’에 해당한다며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지난 2월 초,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 노동안전부장은 현장을 돌아보다 로봇 한 대가 오작동으로 멈춘 것을 확인했다. 로봇이 멈추자 작업자는 주 전원을 끄지 않은 채 문을 열고 로봇 안으로 들어가 불량제품을 꺼내려고 했다. 지나가던 다른 작업자가 실수로 문을 건드려 닫힐 뻔한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위험천만한 광경을 직접 본 노안부장은 바로 회사 안전관리담당자를 불러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 작업을 중지한 후 살펴보니 로봇 운전과 관련한 특별안전교육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로봇 안전장치 센서부위가 가려져 있어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었음이 드러났다. 노사는 임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열어 특별안전교육과 특별안전점검에 합의하고, 노사 각기 특별안전교육을 실시한 후 여섯 시간 만에 작업을 재개했다.

사건 발생 한 달이 지난 후 뒤늦게 회사는 노동조합과 간부를 업무방해와 폭력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 기아자동차는 단체협약으로 개별 노동자의 대피권을 인정한다고 하지만, 조합원을 대신해 작업중지권을 발동한 대의원을 징계하고 업무 방해로 고발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작업중지로 인한 징계나 고소, 고발까지 벌어지고 나면 현장에서는 안전을 위해 작업을 늦추거나 잠시 멈출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가 씨가 마른다. ‘지난번에 찢어져서 열 바늘 꿰맸을 때도 작업중지 안 했으니, 이번에 다섯 바늘밖에 안 꿰매는 상처는 당연히 작업 중지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자료사진>

비슷한 원인의 사고가 반복해 발생하는데 경각심을 갖고,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을 막으려고 한 노동자에게 징계라니. 로봇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을 발견해 인명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 노동조합 간부에게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업무방해로 고발을 하다니. 작업장 안전과 작업중지권을 바라보는 자본의 시각이다.

알아서 조심하라?

현장 노안 활동가들은 작업중지권을 한마디로 정리해달라는 질문에 ‘생명의 최후 마지노선’, ‘안전보건활동의 기본’, ‘사람 살리기’라고 답했다.

회사, 자본에게 ‘작업중지권’은 어떤 의미일까?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 중대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수단? 아니다. 회사는 일상적 작업중지권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작업중지권을 좀 더 쉽게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노동계와 노동안전보건운동계의 요구에 회사는 ‘일상적 파업권을 달라는 것이냐’고 으름장을 놓는다.

노동시간과 과정을 기획, 운영하고 작업 중단과 재개를 결정하는 것은 ‘경영’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다칠 위험이 있든,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결함이 있든, 심지어 사람이 다친 뒤에도 ‘경영’에 있어 생산설비를 최대한 가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자가 기계를 멈춘 시간은 꼭 그 만큼의 생산량 손실로, 회사와 국가에 끼친 천문학적인 금액 손실로 표현한다.

작업중지권을 확보하고 확장하는 싸움은 안전보건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노동시간과 작업현장 통제’를 둘러싼 투쟁이기도 하다. 자본은 이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회사는 개별 노동자의 대피권은 인정하지만, 노동조합이나 노조 대의원, 노동자 대표의 작업중지권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기아자동차는 단체협약으로 개별 노동자의 대피권을 인정한다고 하지만, 조합원을 대신해 작업중지권을 발동한 대의원을 징계하고 업무 방해로 고발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현장에서 작업 도중 급박한 사고 위험을 느낀 노동자는 원칙적으로 대피할 수 있다. 설비에서 작업하는 경우 비상정지 버튼을 누르고 대피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일반 조립라인에서 일하다 위험을 느끼는 조합원의 경우 노조 대의원에게 이야기를 한다. 위험할 것 같고 일하기 부담스럽지만, 혼자 판단하고 대피하거나 라인을 멈추는 것은 더 부담스러운 일이다. 현장 노동자 얘기를 듣고 작업을 중단하고, 상황을 확인하자는 대의원의 건의를 관리자가 묵살했다. 대의원이 이에 불응하고 작업을 중단하자 이를 두고 징계, 고발한 것이다.

현장 분위기는 더없이 얼어붙는다. 이미 현장에서는 본인이 사고나 아차사고를 목격해 위험을 인지하고도 스스로 작업을 멈추거나 대피하지 못할 만큼 노동자들이 위축돼 있다. 작업중지로 인한 징계나 고소, 고발까지 벌어지고 나면 현장에서는 안전을 위해 작업을 늦추거나 잠시 멈출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가 씨가 마른다. ‘지난번에 찢어져서 열 바늘 꿰맸을 때도 작업중지 안 했으니, 이번에 다섯 바늘밖에 안 꿰매는 상처는 당연히 작업 중지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작업중단이 회사의 경영권인가

지난해 4월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는 비상시에 쇳물을 버리기 위해 파 놓은 구덩이에 쇳물을 붓는 순간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로 조합원 세 명이 화상을 입었다. 노조나 회사가 신고하기 전에 소방서에서 먼저 출동했을 정도로 큰 사고였다. 비상시에 안전을 위해 만들어 둔 구덩이를 전혀 관리하지 않아 물이 고여 있었고, 갑자기 뜨거운 쇳물을 붓자 고여 있던 물이 기체가 돼서 폭발한 것이다.

워낙 큰 사고였기에 당연히 작업을 중단했지만 회사는 빠른 작업 재개에만 혈안이었다. 노조는 다른 구덩이들도 검사하는 등 안전 조치를 충분히 한 뒤 작업을 재개할 것을 요구했다. 회사는 구사대 50명을 모아놓고 작업자들에게 작업중지는 징계감이라고 협박했다. 노조와 조합원들이 버텨 결국 사흘동안 작업을 중단하고 안전점검을 벌였다. 그 결과 다른 구덩이에도 모두 물이 고여 있던 것을 발견했다. 모두 비슷한 사고 위험이 있던 셈이다.

▲ 현대차 전주공장에서는 지난 1월 300kg에 달하는 엔진을 운반하던 중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와중에 라인을 가동하려는 5백 여 명의 회사 구사대와 1천 여 명의 조합원 간에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졌다. 법적으로도 작업중지권의 적용을 어떻게든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쓰고, 현장에서는 라인을 빨리 가동시키기 위해 구사대까지 동원한다. 자본은 작업중지권이 갖는 계급 투쟁의 의미를 간파하고 이를 공격하고 있다. <자료사진>

이 공장에서는 지난 1월 다시 300kg에 달하는 엔진을 운반하던 중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천만 다행으로 엔진이 떨어진 아래 작업자가 없었다. 회사는 사람이 죽거나 다치지 않았으니 안전사고가 아니라며 추락물을 치우고 빨리 라인을 가동하라고 요구했다. 노조는 다른 사고를 막기 위해 당연히 원인을 제대로 찾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맞섰다. 이 와중에 라인을 가동하려는 5백 여 명의 회사 구사대와 1천 여 명의 조합원 간에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졌다.

법적으로도 작업중지권의 적용을 어떻게든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쓰고, 현장에서는 라인을 빨리 가동시키기 위해 구사대까지 동원한다. 자본은 작업중지권이 갖는 계급 투쟁의 의미를 간파하고 이를 공격하고 있다.

조직력 무너지면 작업중지권 활용도 어렵다

작업중지권이 노동자 현장 권력의 한 척도라고 평가하는 것에 대해 ‘업종 차이가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좀 더 중대재해가 많이 일어나고, 더 위험한 조선업종에서는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고 있고 그보다 덜 위험한 업종에서는 작업중지권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업종 내에서도 노조 유무에 따라, 노동안전보건 전임자의 수와 역량에 따라 사업장마다 작업중지권 실천에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조선업종의 경우 길고 치열한 노동안전보건 투쟁의 역사, 안전사고가 크고 잦다는 점, 라인 작업이 아니라서 특정 구역에 대해서만 작업 중지가 가능하다는 점 등이 작업중지권을 좀 더 관용적이고 일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배경으로 보인다.

조선업종이라고 해서 모든 사업장에서 작업중지권을 활발히 활용할 수 없다. 현장 활동가들은 노조 유무와 노조 안전보건 전임자의 역량에 따라 사업장별 차이가 천차만별이라고 입을 모은다. 타임오프제도는 노안 활동 전반과 작업중지권에도 큰 제약으로 작용한다.

안전보건 전임자를 충분히 확보하고, 매일 작업장 안전점검을 독자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노조 간부는 작업중지권이 일상이라고 말한다. 그는 작업중지권이 회사를 압박해 “가장 빠르게, 가장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평소에는 회사 안전담당자들과 “노사합동 안전점검은 언제 할 거냐, 개선안은 언제까지 마련할 거냐” 등의 사안으로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는데, 작은 일부 작업이라도 작업중지권을 발동한 상태에서는 회사가 해결하려는 노력이 굉장히 빠르다.

같은 조선업 사업장에서도 노조 전임자가 부족하면 예방적이고 일상적인 활동은 불가능하다. 산재 처리와 계절마다 돌아오는 건강진단, 작업환경측정에만 매달리기에도 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작업중지권을 활용하는 사업장이 모두 현장조직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직력이 무너진 사업장에서 작업중지권을 노동자의 무기로 사용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더 많이, 더 넓게 작업을 중단하자

자본은 생산에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만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허용한다. 노동자의 작업중지, 작업거부는 자본의 허용선을 넘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오히려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을 때 생산을 허용할 수 없다는 선언이다.

자본은 노동자들에게, 자본이 제공하는 ‘안전’의 소비자로 머물 것을 요구한다. 노동자의 작업중지, 작업거부는 자본의 이런 기획을 넘어선다. 계속 이렇게 일할 것인가, 어떤 때 멈출 것인가, 멈췄던 일은 언제 다시 시작할 것인가를 노동자가 결정하자는 것이다.

작업중지권은 안전보건의 문제일 뿐 아니라 작업장을 누가 지배하느냐의 문제, 현장조직력의 문제다. 작업중지권을 다양한 형태와 이름으로 확대해야 한다. 사고가 발생할 위험에만 멈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골병들 수밖에 없는 빠른 작업 속도에도 ‘당장 멈춰’를 외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라인 작업을 멈추는 것 뿐 아니라, 진상 손님의 전화를 끊을 수 있는 권리로 나아가길 바란다.

10회에 걸쳐 금속 노동자들과 ‘작업중지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이 노동자가 주인인 현장을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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