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6일이 돌아온다. 어느새 1년이 지났다.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고 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설치한다더니, 예산을 줄이고 사람을 줄이겠다는 정부 때문에 유가족과 국민들은 ‘추모의 1주기’ 대신 ‘농성과 투쟁의 1주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우리 사회는 ‘안전’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그리고 자주 외쳤다. 정부는 전국가적으로 안전대진단을 실시하고, 안전혁신 마스터 플랜을 발표하고, 심지어 안전산업을 육성해서 국민안전을 도모하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 더 안전해졌나?

3월28일 정부가 내놓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은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통해 안전사회로 나아갈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특별법은 이름부터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다.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 못지 않게 이 안타까운 사태를 계기로 안전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국민의 의지가 반영된 법이다.

정부의 특별법 시행령 안은 ‘진상규명국’과 ‘안전사회과’를 두도록 해 안전사회와 관련된 과제를 격하시켰다. 게다가 이 안전사회과에서 다뤄야 할 내용은 4.16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사항으로만 제한하고 있다. 해상사고, 특히 세월호참사와 연관 있는 안전대책만 점검하라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발생시킨 우리 사회 전반의 제도와 관행, 법을 검토해 대책을 마련하라는 국민들의 바람을 저버린 것이다.

그럼 안전사회는 어떻게 가능한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필요와 원칙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노동자의 안전이 시민의 안전이며 사회의 안전’이라는 점이다. 안전마저 돈벌이 수단으로 만들어 버리려는 이 정부,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내놓으면서도 노동안전에는 별 관심이 없는 이 정부에게 우리가 보여주고 가르쳐줘야 하는 구호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 노동자의 작업 중지, 작업 거부권이 있다.

조종사의 작업거부권, 항공기 정석대로 운항하기 위한 보루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아래 한노보연)가 만난 항공기 조종사는 조종사의 작업거부권이 항공기 운항을 정석대로 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보루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비행 전 점검 시간에 비행기에 작은 결함이라도 있으면 조종석에 자동으로 불빛이 들어오거나 메시지가 뜬다. 이런 각각의 신호에 대해 어떤 조처를 해야 하는지 매뉴얼로 정해져 있다. 예를 들어, 비행기에 싣고 다녀야 하는 장비가 없다면 조종석에 불이 들어오고 이에 대한 대응 절차가 매뉴얼에 모두 정해져 있는 것이다. 조종사는 매뉴얼에 따라 ‘그 장비가 없어도 비행할 수 있다, 못 간다, 추가적인 조치를 해야 갈 수 있다’ 여부를 결정하고 그에 따르면 된다. 조종사와 회사가 소통하면서 이 과정을 결정한다.

항공기 운항에서는 한 번 사고가 나면 그 손실이 너무 심각하니 이런 안전장치가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마련했다고 한다. 즉, 그 장비가 없으면 비행을 하면 안 된다고 매뉴얼에 나오지만 실제로 비행에 전혀 지장 없는 경우도 있다는 말이다. 이런 경우 회사는 망설이게 된다. 규정을 안 지켜도 큰 문제가 안 될 것 같을 때, 회사 입장에서 별것 아닌 문제로 천문학적 손해가 날 것 같으면 규정을 느슨하게 적용하려는 유혹을 느끼는 것이다.

▲ 예전에는 사고가 나면 조종사 책임을 주로 물었는데, 최근에는 회사 책임을 더 따져 묻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니 회사에서도 절차대로 하는 방식을 더 취하게 되는 것 같다고 한다. 안전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업의 책임을 제대로 물어야 한다는 시민 사회 주장의 증거다. <자료사진>

인터뷰에 응한 조종사는 이런 경우 조종사가 운항을 거부하는 것은 권리라기보다 의무라고 강조한다. 매뉴얼대로 운항하는 것이 조종사의 의무인데, 그 의무를 다 하는데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니 회사가 이를 제대로 못 하게 하는 셈이다. 정부가 ‘안전 산업’을 육성하며 안전 사회의 파트너로 삼겠다는 기업은 결국 이윤 논리를 따라 움직인다. 노동자의 작업 거부가 안전 사회의 초석임을 웅변하는 사례다. 예전에는 사고가 나면 조종사 책임을 주로 물었는데, 최근에는 회사 책임을 더 따져 묻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니 회사에서도 절차대로 하는 방식을 더 취하게 되는 것 같다고 한다. 안전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업의 책임을 제대로 물어야 한다는 시민 사회 주장의 증거다.

시내버스 운전사의 장시간 노동 거부

한노보연은 2013년 수원-서울 노선 등 230여 대의 버스를 운영하는 한 버스회사 운전 노동자들의 노동 실태를 조사했다. 격일제로 근무하는 운전 노동자들은 대부분 하루 18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었고, 그 중 식사 시간과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도 15시간 이상을 운전했다. 60%가 넘는 노동자들이 고도피로군에 속했다. 전체 노동자들의 피로도 평균 점수는 난치성 질환 환자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전주 시내버스 운전 노동자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38%의 노동자가 중등도 이상의 불면증에 시달렸다. 62%의 노동자가 중등도 이상의 주간졸림증을 호소했다. 2014년 3월, 세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송파 시내버스 사고 역시 1차적인 원인은 운전기사의 졸음 운전이었다. 이 날 사고로 사망한 이 운전기사는 당일 18시간 동안 근무했다. 규정인 9시간보다 훨씬 긴 16시간을 운전했다.

화물 운송도 마찬가지다. 2011년 운수노동정책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화물노동자의 1주 평균 노동시간은 69.9시간이었다. 녹색병원이 2009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화물노동자의 1일 평균 근무시간은 성수기에 13.5시간, 비수기에 11.9시간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는 교통사고다. 노동자운동연구소의 2012년 보고에 의하면 화물차의 고속도로 차량이용량은 9.1%에 불과한데 비해 교통사고건수 비율은 24.0%에 달하고 있다. 사망자수 비율은 무려 40.6%에 이른다.

운수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 자신의 안전은 물론 시민의 생명을 위협한다. 유럽에서는 하루 운전 시간 9시간, 주당 노동시간 48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근로기준법 예외 조항으로 주당 52시간까지 운전이 가능하다. 하루 노동시간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다. 법적 규제를 강화하는 것과 더불어, 실제 말도 안 되는 장시간 노동을 ‘생명과 안전, 노동의 권리’ 이름으로 거부할 수 있는 현장의 힘이 필요하다. 장시간 노동을 거부하고도 적절한 생활이 가능한 임금 보장이 선행돼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악천후에 편지 배달, 미담이 아니다

운수 노동자들처럼 시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 때문에 작업중지권이 긴요하게 필요한 곳이 또 있다. 우편물과 택배를 배달하는 집배원노동자들이다. 업무량에 비해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연간 노동시간이 3,000시간을 넘고, 심한 경우 주당 노동시간이 86시간에 이르는 살인적인 노동조건에서 일한다. 게다가 시간에 맞춰 배달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악천후나 사고 등 작업이 힘든 때에도 참고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집배원 중대재해 근절 운동본부에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우정사업본부 소속 노동자들의 재해발생 경위를 분석했다. 매년 9명이 공무상 재해로 사망해 만 명당 사망률은 전체 노동자 평균의 두 배에 달했다. 특히 교통사고의 경우 사망 만인율이 전체 노동자와 비교할 때 연도별로 130배~500배 높았다. 악천후 속에서 우편물을 배달하다 사망한 집배원의 사례는 미담으로 포장되지만, 이는 미담이 아니라 권리를 짓밟힌 노동자의 비극적인 이야기다.

한노보연이 만난 우정노조 한 조합원은 폭설, 폭우가 내리는 상황보다 더 위험한 것이 업무에 대한 중압감이라고 한다. 통상우편물은 4일 이내 배송, 등기우편물이나 택배는 2일 이내 배송이 원칙이다. 자연재해가 발생하거나 기상 문제가 있더라도 이런 업무지침 원칙이 바뀌지 않는다. 그는 이런 중압감 때문에 위험한 상황인데도 업무를 멈추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 녹색병원이 2009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화물노동자의 1일 평균 근무시간은 성수기에 13.5시간, 비수기에 11.9시간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는 교통사고다. 노동자운동연구소의 2012년 보고에 의하면 화물차의 고속도로 차량이용량은 9.1%에 불과한데 비해 교통사고건수 비율은 24.0%에 달하고 있다. 사망자수 비율은 무려 40.6%에 이른다. <자료사진>

폭설이 내리면 우정사업본부에서는 ‘악천후에 조심해서 배달하라’거나 ‘기상이 너무 악화되면 복귀하라’고 문자는 보내지만 배송 기한을 늘려주지 않는다. 결국 판단을 개별 노동자들에게 전가한다. 개별 집배원들은 이런 중지권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회사의 직접적인 압박이 아니더라도 매일같이 감당할 수 없는 배달 물량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안전한 배달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집배원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작업 중지권이 절실히 필요하다.

콜센터 one strike out 제도도 노동자의 작업거부권으로

작업중지라고 하면 당장 발생할 것 같은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을 때, 라인 작업을 하는 공장의 기계를 멈추는 것만을 떠올리기 쉽다. 그렇지만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공장 뿐 아니라 노동 현장 어디에서나 작업 중지권은 필요하다. 이름을 작업중지라고 하든, 작업거절이나 거부라고 하든 마찬가지다.

최근 ‘진상 고객의 갑질’ 논란으로 사회적 이슈가 된 감정노동도 마찬가지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용주에게 신체적, 물리적 안전 외에도 노동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줄일 수 있는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할 것’을 의무로 부여하고 있다.

콜센터 노동자들이 고객으로부터 언어적, 성적 폭력을 당할 경우 전화를 끊을 수 있는 제도로 일부 회사에 도입돼 있는 콜센터 원스트라이크아웃 정책은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한 사례이다. 이를 ‘회사의 선의’가 아니라 콜센터 노동자의 ‘통화거절권’이라는 이름의 작업거부권의 일환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넓혀 나가야 한다.

노동자가 안전한 작업 조건 하에서 일할 권리를 노동기본권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사용자의 ‘안전배려의무’가 필요하다. 사용자의 안전배려조치의 부재로 인해 폭언이나 욕설을 하는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면 노동자는 이러한 고객 응대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콜센터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사업주의 안전배려의무 고찰’이라는 연구에서 성은지는 ‘고객의 폭언과 성희롱을 참고 응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은 정당한 노무 제공 의무의 범위 자체를 벗어나는 것’이므로 노동자가 이를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없다고 규정한다.

우리는 인격 있는 노동자

이렇게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제조업 노동자에서 운수, 서비스 노동자로 확대하는 것, 제조업 공장에서 모든 일터로 확장하는 것은 ‘노동력’을 팔지만 내 몸과 생명을 나누어 파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노동력을 팔지만 인격까지 파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노동자의 정신과 신체를 손상시키는 업무를 지시하는 것은 정당한 노무 관계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다.

물론 ‘가학적 인사노무 관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노동자를 괴롭히는 행위를 인사 관리의 한 방편으로 활용하는 사업주가 활개 치는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안전과 건강, 정신적 피해를 이유로 작업을 중단하거나 거부, 회피하는 것은 어렵다. 이런 주장을 하면 그들은 늘 ‘경영권을 침해하겠다는 것이냐’며 길길이 날뛴다.

그에 대한 답을 자신있게 내놓기 위해서는 ‘안전 제일’, ‘품질 제일’, ‘고객 만족’, ‘손님이 왕이다’ 대신 ‘일하는 노동자가 건강하고 즐겁게 일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노동자 건강권의 기본 철학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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