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이하 한노보연)는 ‘중대재해 근절과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팀’(이하 당장멈춰)을 구성해 작업중지권 복원을 위한 실태연구와 이론 축적 등의 사업을 진행한다. 한노보연은 올 하반기 노조 노동안전보건실의 협조를 얻어 금속노조 사업장의 작업중지권 실행 경험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작업중지권의 현실에 대한 진단과 고찰, 작업중지권 복원과 확장에 대한 한노보연 당장멈춰팀의 기획 연재를 열 차례에 걸쳐 싣는다.

<연재 기획>

① 작업중지권이 일상인 현장, 어떻게 활용하고 지켜나고 있는가.

② 노동자의 안녕을 위한 권리 구성

③ 징계 및 손배로 작업중지권을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사업장

④ 작업중지권의 법리적 쟁점

⑤ 임금 손실로 직결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⑤ 임금 손실로 직결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⑥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26조 ‘작업중지권’ 의 현실을 넘어서기 위한 과제

⑦ ‘위험’이란 무엇인가, ‘급박한 위험’이란 무엇인가.

⑧ 해외의 작업중지권 사례 비교

⑨ 작업중지권의 확장 : 유해위험작업중지권, 작업거부권, 작업거절권, 작업회피권

⑩ 현장의 조직력 강화 측면에서의 작업중지권 

금속노조 완성차 사업장에서 실제 작업중지권을 실행했던 노동자들을 만났다.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지난 2011년 안전사고 이후 후속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사례와 올해 4월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전개한 상용 소재부 용해라인에서의 사례를 싣는다. 마지막으로 올해 7월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진행한 라인중단 사례를 통해 각 사업장의 작업중지권 투쟁을 소개한다.

라인을 잡을 권리

자동차 산업은 ‘컨베이어 벨트’ 노동으로 대표되는 반복 흐름 작업이 이뤄진다. 따라서 자동차산업에서 전개하는 작업중지권 발동은 흔히 ‘라인을 잡는다’, ‘라인을 끊는다’고 표현한다. 노동자들은 작업중지권을 어떻게 행사하고 있을까?

자동차 공장은 지난 연재에서 소개한 조선소와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 차이는 기본적인 작업의 특성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작업중지권을 행사해 온 과정을 보더라도 뚜렷한 차이가 있다.

과거 자동차 공장에서의 작업 중지권은 ‘현장권력의 상징’과도 같았다. 내가 노동하고 있는 곳을 스스로 통제하려고 하는 노동자들의 단결되고 조직된 힘이기 때문이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라인을 끊는’ 작업중지권이 용인되는 순간 일상적인 파업권(쟁의권)을 허용하는 것과도 같았다. 이 통제권을 둘러싼 노동자와 자본가의 힘겨루기는 지금도 치열하게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현장이 많이 침체됐다고 하지만 ‘일상에서의 전투’를 벌이고 있는 동지들이 여기 있다.

①한국지엠지부

한국지엠은 대우그룹의 부도로 대우자동차를 지엠그룹이 매각한 사업장이다. 그 과정에서 1,750여명이정리해고로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렸다. 현장이 ‘산자’와 ‘죽은 자’로 나뉜 아픔을 경험했고 현장은 침체됐다.

과거 대우자동차 시절 활동가와 조합원들의 헌신적인 투쟁으로 어렵게 지켜왔던 현장통제력은 정리해고 사태 이후 사라졌다. ‘산업안전보건법’과 ‘단체협약’의 작업중지권마저 한낱 공문구가 됐다.

치열하고 처절한 복직투쟁의 성과로 조합원들이 2003년, 2006년 현장으로 복귀했다. 공장 정상화 과정에서 새로운 젊은 세대들이 현장에 들어갔지만 한번 얼어붙은 현장 분위기는 여전했다. 주변 작업자가 안전사고를 당해 현장에 구급차가 들어와도 이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라인은 금세 바삐 돌아갔다. 사고 현장 주변 작업자들을 제외한 다른 작업자들은 사고 발생 사실조차 모른채 라인을 가동했다.

얼어붙은 현장, 다시 라인을 끊다

2011년 3월31일 저녁9시경 부평공장 조립2부 자동차 도어 부착기계 정비 도중에 안전사고가 발생했다. 보전작업자가 설비고장의 원인을 파악하던 중 조립라인이 가동돼 손가락이 협착된 것이다. 그러나 사고 이후 고장원인이나 재해발생 원인에 대한 조사, 안전보건교육 없이 재해자만 병원으로 후송한 후 20분간 라인이 정상가동 됐다. 쉬는 시간이 돼서야 2차 점검과 보수작업을 진행했다.

▲ 법정투쟁은 패배했지만 안규백 대의원은 이 투쟁이 ‘패배’가 아니 ‘성과’였다고 말한다. 이를 계기로 얼어붙었던 현장이 꿈틀대기 시작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조합원들의 인식변화를 꼽았다. 안전사고가 발생해도 무감각했던 조합원들이 사고가 발생하면 수군거리기 시작하고 ‘왜 안전사고가 났는데 안전교육을 하지 않느냐’고 회사에 따지기 시작했다는 것. 사진=신동준

조합원에게 연락받은 당시 해당부서 대의원인 안규백 조합원은 사고현장을 찾아 설비가동을 중단시켰다. 안 대의원은 사측에 재발 발생의 원인, 재발방지 대책, 안전보건 교육을 요구했다. 곧바로 노조와 회사가 대책회의를 진행했고 ‘유사한 보전작업은 라인 가동을 중단하고 한다’고 합의한 후 라인을 가동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20여일 후 회사는 돌연 인사위원회를 개최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회사에 막대한 재산상 손해를 끼쳤을 때’에 해당한다며 안 대의원에게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이러한 사측의 이해할 수 없는 부당징계에 대해 안규백 동지는 법정소송을 벌였으나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꿈틀대는 현장

법정투쟁은 패배했지만 안규백 대의원은 이 투쟁이 ‘패배’가 아니라 ‘성과’였다고 말한다. 이를 계기로 얼어붙었던 현장이 꿈틀대기 시작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조합원들의 인식변화를 꼽았다. 안전사고가 발생해도 무감각했던 조합원들이 사고가 발생하면 이제 수군거리기 시작하고 ‘왜 안전사고가 났는데 안전교육을 하지 않느냐’고 사측에 따지기 시작했다는 것. 직접 사측 관리자에게 문제제기하지 못하는 조합원은 대의원에게 전화를 하고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작업중지권을 쟁취해 나가는 과정은 라인을 멈춰 위험에서 내 몸을 지키고 보호하는 의미만을 넘어 무너진 현장에 다시금 기운을 불어넣고 잃어버렸던 현장통제권을 되찾는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②현대자동차지부 전주위원회

지난 4월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의 엔진 블럭을 생산하는 소재공장에서 큰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용해로 4호기의 1,300도가 넘는 쇳물을 운반하는 래들에 구멍이 생겨 평소처럼 래들을 안전장치인 피트에 올려놨다가 흘러나온 쇳물이 래들에 고여있던 물과 만나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당시 소재공장 주변의 공장까지 건물이 흔들릴 정도의 위력이었다.

그러나 이 위험한 작업공간은 그동안 사고나 폭파사고가 없어 전주공장이 지어진 이후 기본적인 안전점검 조차 이뤄진 적이 없었던 곳이었다. 이 사고로 총 4명의 조합원이 후송되어 3명이 화상치료를 받았다. 사고의 위력에 비해, 경미한 부상자가 발생한 천만다행인 상황.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과 사고 이후 사측에 이해할 수 없는 대응이었다.

▲ 현대자동차는 라인가동을 위해 구사대까지 동원했지만 노조 지침에 따라 조합원들은 설비가동을 거부했다. 결국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논의를 마무리 한 이후 작업을 재개했다. 노조 중심으로 똘똘 뭉친 조합원들의 단결력이 회사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작업중지권을 지켜냈다. 사진=신동준

그래도 일하자?

회사는 사고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피해자가 없는지 확인 후 조치를 취하고, 위험상태의 지속여부를 확인 후 대피명령을 해야 한다. 하지만 출동한 소방관들에게 사측이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상식 밖이었다. 4호기에서 사고가 발생했으니 그냥 두더라도 옆에 있는 3호기는 출탕을 해서 보호기로 옮길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한 것. 즉 쇳물이 굳어버리면 엄청난 비용이 발생할테니 라인가동이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소방관들에게 요청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 결국 엠블런스를 불러 부상자를 후송하고 대피명령을 내린 것은 정윤규 대의원이었다. 소재공장 특성상 소음이 심해 옆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모른채 공장에 머물러 있던 작업자들이 있었다. 용해로뿐만 아니라 용접장, 아르곤 가스 등이 밀집된 위험공간에 건물이 흔들릴 정도의 사고의 여파로 가스관이 새는 등 다른 사고의 위험성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사측편?

이렇게 작업중지권을 발동한 후 임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진행했다. 더욱 화가난 것은 그 자리에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노동부에 사고발생 소식을 알린 후 점검요청으로 현장을 방문한 근로감독관이 한참이나 자리를 비운 후 갑자기 사측과 참석해 있었기 때문이다. 근로감독관은 사고가 난 장비 이외에는 가동해야 되지 않겠냐는 사측의 편을 들으며 노조간부들에게 벌금을 운운하고 라인 가동을 협박하는데 동조했다. 사측은 라인가동을 위해 구사대까지 동원했지만 노조 지침에 따라 조합원들은 설비가동을 거부했고 산보위 논의를 마무리 한 후 작업을 재개했다. 노조 중심으로 똘똘 뭉친 조합원들의 단결력이 사측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작업중지권을 지켜냈다.

③기아자동차지부 화성지회

지난 7월26일 오전 8시30분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조립3부 헹거에 매달려 가던 K5에서 무게 약 10kg에 해당하는 머플러가 작업자 40cm 옆으로 떨어졌다. 아찔한 상황이었다. 만약 작업자를 향해 추락했었다면…. 홍진성 대의원은 즉각 작업 중단과 함께 사측에 정확한 안전점검을 요구했다.

회사는 ‘작업자가 다치지 않았기에 안전사고가 아닌 단순 설비 트러블’이라는 어이없는 논리를 들이대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홍진성 대의원은 사고원인 파악을 위한 안전점검 등의 후속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라인을 가동할 수 없다며 공청회를 실시했다. 이렇게 라인을 중단한 여덟 시간 동안 회사는 100여명의 관리직을 동원해 강제로 작업을 재개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홍진성 대의원이 라인가동을 막기 위해 설비 앞에서 연좌하는 등 강고한 투쟁을 벌였고 조합원들도 가세했다.

▲ 홍진성 대의원은 사고원인 파악을 위한 안전점검 등의 후속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라인을 가동할 수 없다며 공청회를 실시했다. 이렇게 라인을 중단한 여덟 시간 동안 회사는 1백 여명의 관리직을 동원해 강제로 작업을 재개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홍진성 대의원이 라인가동을 막기 위해 설비 앞에서 연좌를 하는 등 강고한 투쟁을 벌였고 조합원들도 가세했다. 기아자동차 조립라인. <자료사진>

결국 저녁 6시20분경 노동조합이 참여해 사측과 대책회의를 진행하고 라인을 다시 가동 했다. 이후 사측은 홍진성 대의원을 상대로 업무방해와 손해배상을 제기했다. 현재 법정투쟁을 진행 중이다.

회사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홍진성 대의원은 조합원들의 지지와 격려가 있기에 힘이 난다고 말한다. 그냥 넘어가면 안되는 문제이기에 때문에 주저없이 라인을 멈췄다는 것. 홍진성 대의원은 법정투쟁에도 방청을 오는 등 조합원들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힘이 난다고 말한다.

생명을 지키는 일상의 전투

앞선 세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 자본의 대응은 한결 같다. 마치 공동의 대응 매뉴얼이라도 있는 듯 동일하다. 한국지엠은 1시간 라인정지 중 27분을 문제 삼아 3억 3천 여 만원의 손실을 입혔다며 정직 2개월의 해고 다음의 중징계를 내렸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역시 한 몸의 자본답게 무차별적인 고소고발과 악명 높은 손해배상 청구로 공격을 하고 있다.

‘생산’에 대한 통제권이 마치 함부로 침범해서는 안 되는 신성한 권리인양 구는 자본에 맞서 누군가는 그 얘기가 결코 정의가 아님을 실천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윤보다 생명을’이라는 구호가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일상의 전투’를 벌이고 있는 동지들이 그 길을 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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