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한자는 ‘葛藤’으로 칡과 등나무란 뜻입니다. 칡이나 등나무가 자라면서 가지끼리 몸을 꼬게 되는데서 유래된 말입니다. 갈등이란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불화를 일으키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이 싫어서 갈등이 없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마다 가치관, 경험,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에 갈등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갈등이 없기만을 바라는 것보다 피할 수없는 갈등을 자신과 상대에 대해 잘 알 수 있고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기회로 만드는 것이 더 바람직할 거라 생각됩니다. 갈등을 꼬여서 풀기 어려운 상황이라 생각하지 말고 서로 꼬였기에 약한 줄기에 힘이 생겨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아이들의 인사법

며칠 전입니다. 두 번째 수업인데 1학년 꼬마들이 “안녕하세요?” 반갑게 맞이합니다. 기분이 좋아져 나도 “안녕?” 하자마자 계속해서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수십 번을 합니다. 아이들 얼굴은 마냥 즐겁습니다. 몇 몇 아이들은 덩덜아 따라서 하는 게 재미난 모양입니다. 한 아이가 다시 “안녕하세요?” 하면 일제히 또 따라합니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이라서 아이들과 믿음을 쌓아야 할 시간이기에 더욱 긴장되었습니다. 아이들을 보니 무시하거나 수업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장난인 듯합니다.(추측) 장난에 심각하게 반응하기도 우스운 듯해서 나도 “안녕×100” 해버렸습니다. 아이들이 웃습니다. 상황은 종료되고 즐겁게 수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수업이 끝날 때 “아까 큰소리(사실)로 인사해주어서 고마웠어요(느낌). 근데 자꾸 하니까 혹시 장난치는 게 아닌가(이것은 추측이어서 맞을 수도 안 맞을 수도 있어요) 조금 기분이 안 좋아질 뻔했어요.(느낌) 혹시 여러분은 정말 반가워서 그랬는데 선생님은 여러분이 장난한다고 오해해서 여러분이 미워지면 안 되니까 왜 그랬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부탁) 선생님은 여러분하고 1년 동안 잘 지내고 싶기에 서로 터놓고 말하고 싶어요.(요청)” 이유는 말하지 않고 “네” 합니다. 그래도 정리되지 않은 기분입니다.

다음날 문을 열자마자 아이들이 “안녕하세요?” 1번 인사합니다. 그리곤 “어제 장난친 거 아니에요. 반가워서 그랬어요.” 한 아이가 얘기하자 아이들이 “맞아요” 합니다. 제 복잡한 감정이 정리되었습니다. 만약 내가 섣불리 판단하여 ‘장난치지마라, 버릇없구나, 수업 안하려면 나가’ 등등 극단적인 말까지 했다면 어땠을까요? 등골이 오싹합니다.

분노하거나 혹은 이해하거나

아이들의 감정은 무시한 채 교사로서(부모로서) 훈계(인사할 때는 공손히 해야 한다), 평가(대책없고 버릇없는 아이), 명령(다시는 그러지마), 경고(다시 또 그러면 혼난다.) 회피(그냥 참거나 아무 일도 없는 척하기)한다면 결국 아이들이 미워지고 아이들과의 관계가 일그러질지도 모릅니다.

어른의 권위로 훈계, 평가, 명령, 경고 등의 말을 하게 되면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껴서 깊은 대화를 거부하게 됩니다. 회피하고 참는다면 아이들은 상대도 좋아한다 생각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행동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를 내면 아이들은 ‘뭐야? 지난번엔 가만히 있더니 변덕이야’하며 원망하고 일관성 없는 어른들의 행동에 눈치를 보게 될 지도 모릅니다.

분노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몸이 경직되고 심장박동수가 빨라지고 땀이 나고 동공이 확대됨을 느끼면서도 분노를 억제하면 우울이나 무능력감을 느낍니다. 적절한 정서는 문제해결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지만 감정에 사로잡히면 언어적 보복, 비꼬기, 빈정거림 등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방해해 정상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습니다. 또 자신이 감정에 북받쳐 하는 행동과 말은 상대를 자극해 불쾌감을 느끼게 하고 대안을 모색하지 않게됩니다. 순간적인 감정 폭발은 상대나 사물에 대한 손상을 입힐 수도 있습니다. 분노를 적절히 해소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남게 되면 적개심이 되어 정상적 발달과업을 저해하거나 정신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

분노, 이렇게 해소하자

분노가 생기면, 첫째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면 공격적인 표현을 하기 쉬우므로 분노를 말하기 전에 10부터 거꾸로 숫자를 세거나 크게 숨을 쉬어봅니다. 그러면 감정의 수위가 낮아져 상대를 자극하는 말을 멈출 수 있어 문제 해결이 쉬울 수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감정을 드러내기 전에 ‘껌 같은 사람’이란 시를 외워보라 권합니다.

껌은 빳빳하지요.
그러나 입속에 넣으면 사르르 녹지요.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고 팽개쳐 버려도
누군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싸주면
껌과 같이 사르르 녹겠지요.
딱딱한 마음이 껌과 같이 되겠지요.

둘째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봅니다. 내 가치관으로는 상대의 행동을(만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인사를 장난으로 하는가, 정중하고 공손하게 하는 게 인사인데) 허용할 수 없더라도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여 수용(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거야. 수업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 여러 번 인사할 수도 있지 등) 해보는 겁니다.

셋째 자신의 속마음은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존중받고 싶은데, 서로 믿음으로 관계 맺고 싶은데 무시당하는 것 같아 좌절했는지, 다른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보였기에 저러나’ 나를 비난하는 것이 싫은 것인지, 상대에게 정말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봅니다.

넷째 화를 내는 대신 자신이 바라는 것을 정확히 알았으면 나는 ** 때문에 화가 났으며, **를 원한다고 말해봅니다. “나는 너희들과 서로 존중하는 관계가 되고 싶은데 여러 번 인사하는 것이 장난이 아닌가 걱정되어 속상해. 왜 그랬는지 말해줄 수 있겠니?”
이때 평가하는 말이 들어가면 상대를 자극해 갈등을 풀기 어려울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나는 너희들이 버릇없이(평가) 여러 번 인사하는 것 때문에 속상해, 그러므로 그렇게 하지않기 바래.” 이렇게 평가가 들어가면 반발심(내가 무슨 근거로 버릇없다는 거야)이 생기게 됩니다. 평가 없이 사실만을 가지고 얘기해야 마음이 가라앉아 다음 대화를 이어갈 여유가 생깁니다.

다섯째 나에게도 욕구가 있듯이 상대가 욕구를 채우려는 것은 자연스런 일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 상대에게도 나름의 생각이 있으며 나의 기대대로 꼭 해줄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기대수준을 조금 낮춰봅니다. ‘용서하라’ 상대방의 행동에 화가 났다면 인간이란 본래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해봅니다.

대화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대화에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나이가 적던 많던 지위가 높던 낮던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한다면 갈등은 많이 줄어들 것이라 믿습니다.

『아이 생각이 어른 생각보다 좁거나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저 어른들과 다를 따름입니다. 아이들은 지성으로 사고하지 않고 감성으로 사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과 대화한다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입니다. 어른들은 가끔 울음의 의미를 이해하기보다는 울지 않는 아이를 원합니다. 그것은 잔혹한 일이지요. - 야누쉬 코르착의 아이들 중에서 -』

이명남 / 서울영림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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