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이하 한노보연)는 ‘중대재해 근절과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팀’(이하 당장멈춰)을 구성해 작업중지권 복원을 위한 실태연구와 이론 축적 등의 사업을 진행한다. 한노보연은 올 하반기 노조 노동안전보건실의 협조를 얻어 금속노조 사업장의 작업중지권 실행 경험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작업중지권의 현실에 대한 진단과 고찰, 작업중지권 복원과 확장에 대한 한노보연 당장멈춰팀의 기획 연재를 열 차례에 걸쳐 싣는다.

<연재 기획>

① 작업중지권이 일상인 현장, 어떻게 활용하고 지키고 있는가.

② 노동자의 안녕을 위한 권리 구성

③ 징계 및 손배로 작업중지권을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사업장

④ 작업중지권의 법리적 쟁점

⑤ 임금 손실로 직결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⑥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26조 ‘작업중지권’ 의 현실을 넘어서기 위한 과제

⑦ ‘위험’이란 무엇인가, ‘급박한 위험’이란 무엇인가.

⑧ 해외의 작업중지권 사례 비교

⑨ 작업중지권의 확장 : 유해위험작업중지권, 작업거부권, 작업거절권, 작업회피권

⑩현장의 조직력 강화 측면에서의 작업중지권

지난 10월15~16일 이틀 동안 경남지역 조선소 세 곳의 노동조합을 방문해 조선소에서 행해지는 작업중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정부기관인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자료에서 조차 ‘기술력은 1등, 안전은 미흡’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유해위험요인이 많은 조선소에서 치열하게 조합원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일상을 보내고 있는 노조 경남지부 STX조선지회, 성동조선해양지회, 대우조선해양노동조합 노동안전 활동가들의 작업중지 이야기를 전한다.

① “안전, 보건은 타협이 없다” - 경남지부 STX조선지회

10월15일 STX조선을 방문했다. 박용운 STX조선지회 노안부장과 인터뷰를 위해 지회사무실 한켠에 자리를 잡고 인터뷰 취지와 내용을 설명하는 도중 문이 벌컥 열렸다. “노안부장님 사고 났습니다. 가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지회 간부가 사고 소식을 전하는 것과 동시에 박용운 노안부장의 전화기도 울리기 시작한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했던가? 인터뷰 시작과 동시에 발생한 사고 소식으로 당장멈춰팀은 긴장했다. 어렵사리 방문한 현장에서 인터뷰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지만, 사고가 자칫 작업자의 목숨을 위협할 만한 것이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더 컸다. 다행히 잠시 자리를 비웠던 박 노안부장님은 10여분 후 다시 인터뷰에 응했다. 60cm 높이의 작업대에서 작업자가 발을 헛디뎌 발생한 경미한 사고라며 안심하라고 말했다.

▲ 산업은행의 지배관리 하에 있는 stx조선에서는 경영상 위기 등을 거론하며 노동조합이 실행하는 작업중지에 대해서 대화로 문제를 풀어보자고 했다고 한다. “회사가 당연히 취해야 할 조치들을 안 하는 것이 문제지, 그것을 대화로 풀 문제는 아니다. 안전은 타협이 없다는 얘기가 있던데, 보건 또한 마찬가지다. 조합원들이, 노동자가 당장 다치지 않는다고 하지만 건강권은 우리가 지켜야 할 권리이기 때문에 철저히 지키고 또 더 강화해야 할 문제다, 따라서 타협할 사안이 아니다.” <금속노동자>

“작업중지요? STX 조선에서는 일상입니다.”

작업중지권 실행의 경험을 묻자 박용운 노안부장은 일상이라고 말한다. “보통 일주일에 평균적으로 열 건 이상 됩니다”라고 말하는 그. 노사합동 점검을 통해서 작업중지를 발동하기도 하고, 노동조합이 독립적으로 현장 패트롤을 통해서 하는 경우도 있다. 현장에서 전화가 오면 찾아가 조치를 취하는 등 작업중지의 방식은 다양하다.

노안부장으로 전임 활동을 시작한지 10년차라는 박 노안부장은 특정한 구역에 상당인력을 투입해 혼재작업이 이뤄지는 조선소의 특성상 위험이 상당히 잠재돼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안전보건법(아래 산안법)에서 제시하는 사업주의 의무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노동자의 안전이나 건강을 책임지기는 어렵다고 강조한다. 박 노안부장은 사업주가 산안법 의무사항을 이행하도록 강제하는 것을 기초로 해 작업중지 대상을 확대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위험이 뻔히 보이는 상황 바라만 볼 수 없다

박 노안부장은 “회사는 안전상의 조치에 대해서는 법대로 하자고 하면 바로 조치를 취하지만 작업장 내 조명, 환기, 유해물질 취급 등 노동자 건강상의 문제를 야기할 만한 것에 대해서 작업중지를 하면 ‘이것이 작업중지 대상이냐’며 논란이 벌어진다”고 말한다.

“사업주가 해석하기로는 그런 상황은 산안법 26조의 급박한 위험은 아니라는 얘기죠.” 하지만 그것이 안전문제든, 보건상의 문제든 박 부장의 태도는 단호하다.

“모든 재질이 스틸재질이다 보니 화기로 절단을 하고 용접을 한다. 그런 과정에서 나오는, 비산먼지나 흄, 미스트 등이 밀폐공간 내에 노출 되고 있다. 환기시켜야 하는데 강제 환기든, 자연환기든, 국소배기를 한다든지 어떤 방식이든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작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작업자를 먼저 투입한다. 그런 상황에서 작업자들이 일을 하고 있는데 노동조합에서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

“안전과 보건문제에 타협은 없다”

산업은행의 지배관리 하에 있는 stx조선에서는 경영상 위기 등을 거론하며 노동조합이 실행하는 작업중지에 대해서 대화로 문제를 풀어보자고 했다고 한다.

“회사가 당연히 취해야 할 조치들을 안 하는 것이 문제지, 그것을 대화로 풀 문제는 아니다. 안전은 타협이 없다는 얘기가 있던데, 보건 또한 마찬가지다. 조합원들이, 노동자가 당장 다치지 않는다고 하지만 건강권은 우리가 지켜야 할 권리이기 때문에 철저히 지키고 또 더 강화해야 할 문제다, 따라서 타협할 사안이 아니다.”

아마도 이러한 노동조합의 분명한 태도가 최근 10년 동안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STX조선의 현실을 만들어낸 밑거름이 아닐까 한다.

② 일상에서 꾸준하게 ‘안전’을 말한다 - 경남지부 성동조선해양지회

2013년 7월21일 지회를 설립한 성동조선해양지회는 갓 1년차를 넘어선 신생노조다. 성동조선해양지회는 노조 경남지부와 조선업종분과위원회 차원의 교류,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마창산추련)과의 지속적인 연대활동 등을 통해 노안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는 곳이다.

▲ 아침 출근해서 야드를 도는 현장 패트롤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성동조선해양지회 노안담당자들의 일상이라고 소개했다. 오전, 오후로 나눠 다섯 명의 노안담당자가 작업현장의 유해위험성을 확인하기 위해 순회를 한다. 옥환철 지회 노안부장은 지회가 패트롤 등을 통해서 일주일에 서너 차례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한다. <금속노동자>

손들고 깜짝 놀랐다

옥환철 노안부장은 노조 노동안전담당자 수련회 당시 ‘작업중지권이 있는 곳이 있습니까’라는 강사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가 STX조선지회 간부와 자신만 손을 들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말문을 열었다. 노조 상당수 현장에서 작업중지권 실행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하루의 시작은 패트롤

아침 출근해서 야드를 도는 현장 패트롤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지회 노안담당자들의 일상이라고 소개했다. 오전, 오후로 나눠 다섯 명의 노안담당자가 작업현장의 유해위험성을 확인하기 위해 순회를 한다. 옥환철 노안부장은 지회가 패트롤 등을 통해서 일주일에 서너 차례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인근의 STX조선지회 등의 노안활동 경험이 상당부분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현장 위험 제보하는 조합원이 늘고 있다

지회를 설립하고 처음 작업중지를 실행 했을 때, 현장에 부착한 작업중지권 스티커를 현장 작업자들이 훼손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지회 설립 이전의 관성대로 작업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해지는 현장통제로 느껴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지회는 작업중지를 정착하기 이를 위해 ‘변소안’(변함없이 소중한 안전)이라는 선전물을 제작해 작업중지권 등 일상적인 노안활동과 정보를 전달하는 일을 꾸준히 진행했다. 1년 정도 진행하자 현장패트롤을 돌면서 매일 마주치는 현장조합원들이 “고생한다”고 반응을 보인다, 작업중지의 필요성을 느끼고 위험에 대해 제보하는 조합원들이 차츰 늘어난다고 한다. 지회 활동의 성과가 반영된 변화가 아닌가 한다.

③ “안전활동은 투쟁의 역사다” - 대우조선노동조합

세 번째 심층면접을 위해 찾은 거제의 대우조선노동조합. 박호빈 산업안전실장(아래 산안실장)과 세 명의 산안간부들과 작업중지권과 관련한 인터뷰를 진행하는 도중, STX조선에서와 마찬가지로 작업자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연락이 왔다. 엔진룸 암벽에서 일하는 작업자가 추락해 발목을 다쳤다는 다급한 전화. 인터뷰를 중단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간부들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전 공장에 싸이렌이 울렸다.

하청업체 소장이 직접 사고와 관련해 사측에 연락을 했고, 사측에서 다시 노동조합으로 직접 사고를 알리는 전화를 하는 것은 물론, 작업현장에 있던 작업자들에게도 연락이 왔다.

오랜 투쟁으로 만든 사고 대응시스템

사고 발생과 관련한 대응체계가 잘 갖춰져 있는 것에 대해 묻자 96~97년 이후 대응시스템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자리 잡았다고 말한다. 노조 간부들은 민주적인 성향의 노동조합 집행부가 들어선 이후 초기에는 엠블런스만 출동하고 의사와 간호사가 탑승하지 않은 적도 있었는데 여러 차례 치열한 싸움을 벌이면서 정착한 결과라고 말한다. “산업안전은 투쟁의 연속이고 싸움 과정에서 하나하나씩 자리를 잡아가는 것다. 이것은 시대의 변함이 없습니다”라고 박호빈 실장은 힘주어 말했다.

대우조선은 워낙 야드가 넓어 STX조선이나 성동조선해양처럼 노안간부들이 패트롤을 진행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조건이라고 말한다. 4만5천 여 명의 인원이 대우조선이라는 한 공간에서 노동을 하고 있으니 가히 현장을 직접 돌면서 유해위험요인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작업환경 전체 문제가 없을 때 작업중지 해제

다만 근골격계 집단요양 투쟁을 최초로 전개하는 등 노안활동을 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대응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기계기구의 위험에 대해서는 ‘사용중지’ 스티커를 발부하고, 작업공간에는 펜스를 치고 출입구를 봉쇄하고 사측이 안전보건 조치를 완료할 때까지 작업을 중지하는 ‘작업중지’를 실시하고 있었다. 이렇게 조치를 취한 후 사측의 안전담당부서 담당자를 호출해 관련한 조치를 취하도록 한다. 조치완료 연락이 오면 산업안전보건위원들이 작업환경 전체를 확인하고 문제가 없으면 작업중지를 해제하고 있다.

“대우조선에서의 산업안전은 거짓말 안보태고 투쟁의 역사입니다. 그러니까 노동조합을 만들고 활동을 시작한 계기이기도 하구요. 단체협약에 하나의 문구를 만드는 과정도 그랬습니다. 노동조합이 작업중지를 실행할 힘을 가지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정착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 존엄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역사가 작업중지권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원천적 힘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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