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 일입니다. 모의고사를 치루는 날인데 철수가 학교에 오지 않았습니다. 집에서는 학교에 갔다고 하는데 불과 10분정도의 통학거리라 불안했습니다. 늦은 오후, 철수가 학교에 왔습니다. 햇살 좋은 텅 빈 운동장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늦게라도 와주어서 고맙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걱정 많이 했다. 2호선 전철을 타고 한 바퀴 돌다가 한강에 갔다 왔어요. 뭐 한강? 혹시 시험 스트레스 때문이었니? 아니요, 어젯밤 부모님께서 싸우셔서 잠을 못 이루다 학교에 오려는데 이렇게 기분이 안 좋은데 아무렇지 않게 난 시험을 봐야하나 속상해서.

순간 저는 과거로 시간 여행을 갔습니다. 부모님이 다투던 모습이 떠오르면서 그때 그 순간의 무서움이 몸속에서 번져 나와 가슴이 막히고 울컥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저와 남편은 어떻게 잘(?) 싸우고 있는지 제 자식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목이 메었습니다.

어젯밤 철수가 참 힘들었겠구나 마음이 아파옵니다. 철수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힘들었지” 그건 제가 저에게 하는 소리였습니다. 아이들이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서로 극복해야할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부모가 서로 공격하는 것을 아이들이 목격하는 것은 큰 상처가 됩니다.

부부싸움이 아이를 긍정적으로 가르친다?

사랑으로 결혼한 부부지만 살아온 환경과 타고난 기질이 다른 사람의 만남이라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선 양보할 것도 많이 필요하지요. 하지만 아이가 볼 때 엄마와 아빠는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해서 늘 서로를 비난하기 바쁘고 아이의 교육 방법조차도 의견이 달라 두 사람이 합의를 보는 적이 드물고 때로는 소리를 지르면서 싸우기까지 하니 이해가 안 됩니다. 그리고 어느새 그 아이는 부모의 말과 행동을 따라합니다. 또래들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도 언제나 그런 방식으로 해야 하는 것인 양 알게 되는 것입니다.

▲ 아이들은 말로 배우기보다는 부모의 행동에서 더 잘 배운다. 이른바 어깨너머. 좋은 역할 모델이 되기 위해 부부끼리 잘 싸울 수 있도록 노력하는 건 어떨까?
부모가 싸우는 것을 보는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이러다 헤어지지 않을까 그래서 내 삶의 평화가 깨지지 않을까 겁이 나고 때로는 자기 때문인 것 같아 죄책감도 든다고 합니다. 때론 누가 옳은가를 증언해야 하거나 판단해야 하는 힘든 처지가 되기도 합니다. 정직했다가는 더 큰 문제가 되는 경험도 할 수 있습니다. 정직해선 안 될 때도 있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매우 혼란스러워 합니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싸움은 세상이 흔들릴 큰 사건일 겁니다.

한편 시간이 지나 다시 평온함을 되찾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각자 자기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아이들은 의아해 합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 것 같은 엄마 아빠를 보면 짧은 순간이지만 자기를 온갖 두려움에 떨게 했던 부모남이 원망스러울 겁니다. 도대체 아이들에게 남아있을 부정적인 감정은 어떻게 털어줘야 할까요?

살다보니 어쩔 수없이 벌어질 수 있는 ‘부부싸움’이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가르침(?)보다는 긍정적인 가르침이 되도록 하기 위해 어찌해야 할까요? 지금을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고 있는 철수. 같이 자식 키우는 부모가 된 입장이 된 제자와 싸움의 기술을 논해보았습니다.

내가 변하면 상대도 변한다

“말하기 보다는 듣기” 화가 날 때 상대의 말은 설명이 아니라 변명으로 들리게 되어 상대의 말을 자꾸 끊거나 토를 달게 되는데 상대가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자기 자신을 변호 할 수 있도록 너그럽게 귀를 열어두자. 듣다보면 문제의 핵심을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 또 감정에 휩싸여 있을 때 논리적 대응은 소용이 없으니까 만약 잘잘못을 가리려 한다면 그건 나중으로 미루자.

부부싸움은 보고 있는 누군가를 의식해 자존심을 세우느라 더 사납게 되지 않도록 아이가 보고 있지 않은 적절한 시간과 장소를 택하자. 만약 그렇지 못하면 ‘지금 내 아이가 보고 있고 나의 감정적인 행동을 아이가 보고 배운다“고 생각하자. 그리고 아이가 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엄마 아빠가 지금 이러저러한 일로 생각이 달라 이야기를 하는 거란다. 생각이 다르면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해서 상대를 이해시키려고 한단다. 가끔 잘 이해가 안 되면 큰 소리가 나기도 하지만 엄마 아빠는 잘 결정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니 걱정 안 해도 된단다. 화를 낸다고 해서 엄마를 아빠를 그리고 너를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는단다”라고 안심시키자.

그리고 화해의 모습도 보여주자. 사람은 누구나 다른데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고 분노와 갈등은 우리 삶의 일부분인데 분노를 조절하며 잘 싸우는 만큼 잘 화해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이왕이면 보여주자. 서로 입 다물고 있다가 누군가 뜬금없이 “애들 이불은 잘 덮고 자나?”라고 혼잣말 하듯 한마디 한다면 그 속마음을 읽어주자. 그것은 자존심 때문에 사과하기 어려워 돌려 말하는 것이다. 아이를 빌미로 서로의 말문을 열어보려는 시도로 해석하자. 2차전을 부르는 “흥, 사과한 마디 안 하고 지금 뭐하자는 거야. 장난하나?” “그걸 왜 내게 물어요 가서 직접 봐요”하지는 말자. 낭패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원래 그래 라며 상대가 맞춰주기만 바라지말자. 상대도 그럴 수 있으니. 그래서 자기 성격의 장단점, 나는 어떤 상처가 있으며 왜 어떤 것만은 양보할 수 없는데 상대는 그걸 가볍게 보는지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자. 내가 변하면 상대도 변한다 믿자. 이게 다 경험에서 나온 거야.

어깨너머 학습

우리 모두는 어릴 때부터 분노는 나쁜 거고 참아야 착하기에 분노를 일으키면 죄책감을 느끼도록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숨을 참는 게 힘들 듯 분노도 참으려 참으려 애쓰지만 언젠가는 폭발하기 마련입니다. 분노를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알고 분노 밑에 깔린 감정(섭섭함, 불안함, 실망스러움 등)은 무엇인지 자기 마음을 의식하여 분노를 조절하는 방법을 배웠다면 분노로 제 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행동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는 분노 다스리기를 배워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은 말로 배우기보다는 부모의 행동에서 더 잘 배웁니다. 어깨너머학습이지요. 좋은 역할 모델이 되기 위해서 자식을 키우며 저도 같이 커갑니다. 새해는 혹시나 부부싸움이 자연스럽게 그런 자리가 될지도 모르니 잘 싸우도록 노력하는 건 어떨까요? 다음 이야기는 분노 다스리기에 대해서 한번 같이 배워보면 어떨까요?

화가 난 상황을 알리기 위해 분노로 표현하기보다는 차분하고 간결하게 화가 난 까닭을 말하고 마음속에서 지금 모이고 흩어지는 감정을 이야기하고 상대가 어떻게 해주기를 바란다고 부탁하도록 해 봐요.

이명남 / 서울영서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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