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선풍기를 발로 꾹 눌러 켜기에 “앞으로는 손으로 해” 하자 아이가 대뜸 “엄마도 그러면서” 합니다. 이런, 내가 그런 일을? 아이가 볼멘소리로 저번에 부엌에서 일하다가 덥다고 발로 눌렀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여러 번 아이가 봤나 봅니다. 심호흡 한번 하고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무심코 편하게 습관적인 행동을 하다가도 아이가 보고 있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말보다는 행동을 보고 배웁니다. 그 이후 교사로서도 학생들에게 늘 제 행동을 조심합니다. 그 중의 하나로 ‘꽃으로도 아이들을 때리지 마세요’ 라는 프란시스코 페레의 말이 쓰인 버튼을 달고 다니며 체벌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습니다. 체벌과 학대로 인해 몸에 생긴 상처는 시간이 흐르면 치유됩니다. 하지만 아이들 영혼에 새겨진 상처는 평생 동안 치유되지 못할 수도 있고, 어느 누구에게 그대로 전이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엄마도 그랬으면서"

대화법 중에 가치관의 차이가 있을 경우에 ‘모델링(modelling)’을 사용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가치관이 다를 때 통제나 명령 및 권유보다는 모범을 보이며 그 행동이 따를 만한 것임을 스스로 느껴 체화되게 하는 것입니다. 각 가정의 아이들도 대부분의 인간관계나 가치관을 부모의 행동을 보고 내면화시키고 있습니다.

▲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에서 담임교사가 학생의 뺨을 때리고 발로 차는 등 폭행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긴 동영상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평등교육 실현을 위한 서울학부모회 회원과 학부모 등은 7월15일 오전 서울 동작구 A 초등학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학교 6학년 담임교사 오모(52) 씨가 1학기 동안 학생들에게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둘렀다고 주장하며 이를 입증하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일명 오장풍 사건으로 불거진 학교 내 체벌의 심각성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시교육청은 체벌 전면 금지의 대원칙을 세웠습니다. 체벌이 금지되고 몇 달이 흐른 지금까지도 일부에서는 과도한 체벌이 문제되는 것이지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을 교육적으로 지도하는 행동까지 폭력으로 간주하면 되느냐고 불만이 있습니다. 아이들도 “그럼 수업은 어떻게 하냐”고 불안해합니다. 일부 학부모들도 체벌의 필요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사회가 체벌을 비롯한 폭력에 대해 너그러움(?)과 필요성을 내면화한 것 같아 씁쓸합니다. 그런데 더 마음이 아픈 것이 있습니다. 체벌이 없어진다고 하자 몇 몇 아이들이 “체벌 금지니까 우리한테 아무것도 못하죠?”, “선생님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이는 겁니다. 그동안 아이들은 스스로 행동에 책임을 갖고 자신의 행동을 수정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매가 무서워 교사의 말을 들었던 것입니다.

체벌이 필요하다고?

체벌이 교육적 효과가 없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 유독 체벌을 고집하는 것은 체벌을 대신하여 아이들을 변화시킬 대안이 어른들 모두에게 없다는 것일지 모릅니다. 이제부터라도 어른들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지금의 어른들도 그런 방법 외에 다른 대안을 보거나 배워본 적이 없는 피해자입니다만 어른들의 행동을 합리화시키고 변화를 거부하기보다는 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학년말이 되면 교사들은 생활기록부에 아이들의 행동발달사항이란 것을 기록하면서 근면, 성실, 예의, 책임, 자율, 협동, 봉사 정신 등 어른들 기준으로 만든 도덕적인 말들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찾기 곤란하다고 합니다. 정말로 그런 아이를 찾는 것이 힘들어서일까요?

▲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체벌 전면금지'를 들고 나왔고 체벌금지에 관한 여론조사는 77%가 반대로 나타났다.

성격은 가르친다고 해서 가르쳐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의 성격은 사람을 만나고 상황을 겪으면서 느끼고 깨달아가는 경험 속에서 형성됩니다. 아이에게 앞에서 꼽는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성격을 가르치려면 눈앞에서 직접 보여주고 체화되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경험한 만큼 배웁니다. 아이들에게 부모나 교사의 말과 행동은 교과서입니다.

어른의 말과 행동이 아이들의 교과서

어른들로부터 ‘비교’ 당하는 말을 지속적으로 듣고 자란다면 타인에게 배려와 연민이 생기기 어려울 것입니다. 남에게 뒤쳐질까 늘 두려움에 떨면서 남들은 사랑해야할 존재가 아니라 내가 이겨야 할 적으로만 여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학교에 왔을 때는 공부하는 것이 네 임무라는 것을 알아야 돼”라든가 “개인적 문제는 가정에서 해결하도록 해”, “네가 할 일은 계획을 세우는 거야, 그러면 너의 숙제를 끝마칠 수 있어” 등의 충고나 설교를 늘 듣고 자란다고 칩시다. 그러면 자신의 문제를 충분히 생각하고 대안이 되는 해결책을 찾아 실생활에 적용해보고자 하는 노력과 책임감은커녕 늘 어른들이 하라고 해야 움직이는 의존적이거나 반대로 저항만 하는 아이들이 될 지 모릅니다.

“너는 게으르거나 꾸물거리는 녀석이야” 등의 인격을 비난하는 말을 계속 듣는다면 비판을 사실로 받아들여 열등감, 무력감을 느끼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너는 고등학교에 들어갈 학생 같지가 않아. 꼭 4학년짜리 같이 행동하고 있어” 라는 욕설과 조롱을 듣고 자란다면 자신을 가치 없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몇가지 사례들

어른들이 화났을 때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면 아이들도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줄 모르게 되며 다른 사람과 더불어 잘 지내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대하지만 집에서는 화가 나면 참지 못하는 부모의 이중적인 행동을 보여서선 안됩니다. 그러면 그것을 보고 자란 아이는 다른 사람 앞에서는 자신 있고 당당하게 행동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가까운 사람을 무시하는 이중적인 성격을 아이가 갖게 될 수 있습니다.

또 아이들의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서, 감당하기 어려운 아이들의 행동을 막기 위해서 쉽게 이런저런 약속을 한 뒤에 미루거나 잊어버리거나 아이들에게 “잊어버릴 수도 있는 거지”라며 화를 낸다면? 아마 그 아이들은 약속이란 힘 있는 사람이 마음대로 하는 것이라거나, 일방적으로 깨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책임감 없는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 어른들이 화났을 때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면 아이들도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줄 모르게 되며 다른 사람과 더불어 잘 지내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게 됩니다. <사진은 특정사람과 관련 없음>

명절 때 집안 아이들에게 용돈을 줄 때도 남의 이목 때문에 형편을 벗어난다면 아이는 자신의 형편에 대해 부끄러워하거나 물질이 정성보다 더 중요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형편은 사람의 우열을 나누는 것이 아니므로 자기 형편에 당당할 수 있도록 형편껏 당당하게 준다면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정성이 중요하며 남과 다른 것에 대해 당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어른이라고 완전무결 성숙한 존재?

아이가 까치발로 아파트 입구 번호를 누르는데 엄마가 그렇게 느려서야 되냐고 부정적인 말을 하기보다는 스스로 해보려하는 마음을 격려하거나, 가족들을 위해서 힘껏 애쓰는 점을 지지하는 긍정적인 말을 듣게 합시다. 또한 부모가 나눔과 봉사의 생활을 하는 것을 본다면, 부모가 책과 가까이 하는 것을 본다면 아이들은 저절로 그렇게 자랄 것입니다.

기존의 아동관은 아이들을 미성숙한 존재로 보며 교육의 본질은 미성숙한 존재를 성숙한 존재로 변화시키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어른들은 교육을 담당할 성숙한 존재’라는 말을 내포합니다. 그런데 어른이라고 완전무결하고 성숙한 존재는 아닙니다. 교육은 그래서 상호 불완전한 두 인격체가 만나 서로 가르치고 배워가는 성장의 과정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와 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게 많은 가치관과 행동을 내면화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늘 좋은 역할 모델이 되도록 자신을 성찰하면서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가르치는 법을 배워나가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아이의 10~20년 뒤를 위해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명남 / 서울 영림중학교 교사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