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여러분. 나는 강제 수용소의 감독입니다. 그 누구의 눈에도 띄어서는 안 될 것들이 내 눈에 보였습니다. 교육받은 엔지니어가 세운 가스실, 교양 있는 의사에게 독살된 아이들, 훈련받은 간호사에게 살해당한 유아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마친 사람들의 총에 맞고, 불에 타 죽은 여인들과 아기들, 그래서 나는 교육을 의심합니다. 부탁합니다. 당신의 학생들이 인간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당신의 노력으로 박식한 괴물이, 숙련된 정신병자가, 교양 있는 아이히만(2차 세계대전 유대인 학살 실무책임자)이 태어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읽기와 쓰기, 수학은 우리 아이들을 좀더 인간답게 만드는데 기여하는 한에서만 중요한 것입니다” (하임G기너트의 <교사와 학생 사이> 중에서)

교사를 부모로 바꾸어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며칠 전 중학교 1학년 아이가 기말고사 걱정을 합니다. 초등학생인 동생이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 하는데 아버지께서 너도 전교에서 5등 안에는 들어야 한다면 부담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이의 큰 숨에 답답한 마음이 느껴져 저도 먹먹했습니다.

공자는 ‘행유여력(行裕餘力) 이어든 즉이학문(卽以學問) 이니라’ 했습니다. 마음의 때를 벗기는 행동을 실천하고 난 후 남은 힘이 있거든 학문을 행하라는 말입니다. 시험 기간마다 부모님들께서 “100점을 맞으면, 몇 등을 하면…” 약속들 하십니다. 이런 약속에 아이들에게 남을 왜곡된 가치관이 저는 걱정됩니다.

▲ 하임 G. 기너트의 <교사와 학생 사이>
성취할 수 있는 아이들은 배움의 기쁨을 알기도 전에 ‘대가’만 배움의 동기가 되고, 성취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부모님과 교사의 인정에 늘 목말라 자존감은 형편없이 낮아집니다. 모두에게 친구는 단지 경쟁상대로 이겨야만 자기가 사는 존재가 될 뿐입니다.

행유여력 즉이학문(行裕餘力 卽以學問)

연합고사 보던 시절 3학년 여학생반 담임을 하던 때입니다. 실업계 고등학교 입학이 결정되고 이제 12월에 연합고사만 남은 11월의 교실 수업은 소란스럽습니다. 시험을 앞둔 아이들이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들을 때려주었으면 합니다. 하루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공부는 관심 없지만 운동 좋아하고 춤을 좋아하는 A 덕분에 에어로빅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얼싸안던 우리 모습. 공부하기 싫어하지만 수업시간에 능청스러운 말솜씨로 우리를 웃기고 수업을 화기애애하게 하던 한 B이야기. 지각을 자주하는 C도 애쓰고 있음을. D의 노래잘하는 장기가 분위기 살리던 학급야영의 즐거운 시간을 곱씹어보자고.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고는 있지만, 어쩌면 '국영수사과'만 공부하는 학교 현실, 그리고 그것을 암기하는 능력만으로 성적을 매기고 사람의 가치를 정하는 학교 현실이 더 문제라고 것. 고교 입시 일정에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선생님은 너희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바쁘지만 한번만 집단 상담을 하자고 부탁했습니다.

아이들이 편지를 읽고 허락해 준 시간에 아이들을 묶어서 집단 상담을 했습니다. 인생곡선그리기, 유서쓰기, 고민 나누기 등 여러 주제를 놓고 원하는 것을 택해 일주일을 하고 나니 아이들은 뜻밖에도 마음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인생 곡선을 그리며 저마다 기쁨과 슬픔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고, 공부만 하고 새침데기인 줄 알았던 친구가 부모님의 기대에 부담을 느끼고 힘들어 한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자기들을 무시하는 줄 알았는데 너희들이 잘 노는 걸 보면 부럽기도 했고 에어로빅 대회 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는 등의 말을 듣고 마음 한편이 풀어졌습니다. 꾸러기인 줄만 알았는데 유서쓰기와 고민나누기를 하면서 속 깊은 생각도 한다는 발견에 놀라워했습니다.

수업방해하는 친구 때려달라는 친구

상담 후 아이들이 마음을 나누는 모습에서 작지만 이런 경험이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었을 때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고 못났다고 버리거나 무시하지 않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 후 회의를 하여 서로 도와줄 방법을 찾았습니다. 실업계에 지원한 아이들은 담당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부기 공부를 하거나 영어 단어를 외우거나 미리 받은 고등학교 숙제를 하거나 목도리를 뜨거나 수업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게 노력해주었고 그 덕분에 연합고사를 앞둔 아이들은 전보다 마음 편하게, 그리고 즐겁게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 아이들은 직장도 다니고 결혼해 아이들도 낳아 제몫을 하며 잘들 살아갑니다. 제가 두 번째 학교로 전근 갔을 때 그 아이들이 3월에 저에게 왔습니다. 먼 길을 찾아온 아이들 얼굴을 보는 순간 불과 얼마 한 달 전까지 배워서 남주냐 공부하라며 연합고사 걱정을 함께 하던 아이들을 새까맣게 잊고 학교에서 또 아이들에게 공부해라 다그치며 경쟁을 나도 모르게 부추기고 있던 제가 얼마나 부끄러웠던지요.

아이들이 누구와 경쟁하는 것이며 경쟁이 왜 필요한지 깊은 성찰 없이 그저 너 잘되라고 좋은 뜻이야,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어 사회 속에 누가 만든 말인지도 모른 채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그 무서운 말에 저도 모르게 휩쓸려 아이들에게도 앵무새처럼 지껄이고 있던 제가 무서워졌습니다. 옆 학교에서 친구가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그 친구의 사랑하는 아이들과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이 경쟁해야 한다니.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기 공부를 위해 친구들을 때려달라는 말, 그리고 그 말을 무시하고 자기 하고픈 대로만 하는 아이들 모두 우리 교육이 만든 하임G기너트가 말한 ‘괴물’일지 모릅니다. 경쟁만을 최고로 여기는 이 사회의 피해자들입니다.

암기력으로만 아이들의 가치를 매기고 한 줄로 줄 세우는 경쟁으로 아이들을 몰아넣는 한, 학교에서 한 번도 성취해 본 경험이 없는 아이들은 무기력과 낮은 자존감에 무언가 해볼 생각도 없이 살아가거나, 어린 시절에 채워지지 않았던 부모님이나 교사의 인정과 사랑을 다른 무엇으로라도 보상받고자 허망한 것들을 잡으려 애쓰는 불행한 어른이 될지도 모릅니다.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 주셔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 실제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썼다는 시 <아빠는 왜>
얼마 전 이 시를 보고 놀랐습니다. 아이들 뒷바라지하려고 열심히 일만 했는데 가끔 힘이 빠지는 가장들이 많습니다. 매일 늦는 바람에 아이들과 얘기를 나눌 틈도 없다가 어쩌다 밥이라도 같이 먹을라치면 할 말도 없고 아이들에게 이 순간만이라도 아빠 역할을 해야지 하면서 기대에 차지 않는 아이들의 행동과 말을 지적하고 가르치려는 말만 하다보면 아이들은 불안하거나 아버지와의 자리가 꺼려질지 모릅니다. 요즘 아이들은 경제적인 후원만 하는 부모를 원하지 않습니다.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열악한 교육 환경 속에서 열심히 가르쳐 온 교사들도 힘이 빠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이들은 교사에게 더 이상 지식만을 원하지 않습니다. 지식은 학교가 아닌 곳에서 더 많이 배울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친구는 누구인지 등에 관심을 갖고, 자신들의 감정에 공감하고 이해해주며 인격적으로 존중해주는 어른들을 원하고 있습니다. 공부만 해야 하는 학생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바랍니다.

아이들의 이런 바람을 외면한 채 여전히 경쟁만을 가르치며 아이가 바라는 삶이 아니라 부모의 기대를 채워가며 살아주기 바란다면 아이들은 어른들을 더 이상 신뢰하지도 않을 것이며 자기 존중도 부족하고 그러기에 다른 이에 대한 존중도 부족하여 어울려 사는 행복을 모를까 걱정이 됩니다.

출신 학교가, 직업이 사람의 우열을 나누는 것이 아니며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 사회 구성원에게 이바지하며 자아실현을 한다는 당당함을 가지고 버스를 만들어도, 버스를 운전해도, 기계학을 가르치더라도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점수와 등수 등의 외적인 가치와 경쟁으로 아이들의 영혼이 상처받지 않도록 교사로서 아이들의 꿈을 존중하는 새로운 교육을 꿈꾸어 봅니다.

이명남 / 서울영림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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