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를 하고 그 실수를 넘어서게 하세요. 어린이가 실수를 저지르고 즐겁게 그 실수를 넘어서려고 애쓰게 합시다. 어린이들은 웃기 좋아하고 돌아다니며 장난치는 것을 좋아합니다. 삶이 당신에게는 무덤과 같은 곳이어도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그곳을 목장으로 볼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루기 쉬운 아이로 만들려 하지 마세요. 착한 아이와 다루기 쉬운 아이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잘 울지 않고, 밤에 잘 깨지 않고 밝고 온순한 아이, 이 아이는 착한 아이입니다. 요즘 교육 방식은 아이들을 다루기 쉽게 만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재우고 숨죽이게 하고 그의 의지와 자유를 구성하는 모든 것과 아이의 기질을 조율하고 아이가 바라고 의도하는 것들을 이끌어내는 힘을 억누르려 합니다. 이렇게 하면 행동거지가 바르고 말 잘 듣고 순종적이고 다루기 쉬운 아이가 될지는 모르나 그 내면 세계는 나태해지고 고여서 썩어간다는 사실에는 무심합니다.
  -  야누쉬 코르착의 ‘아이들’ 중에서

등교는 8시 30분, 수업 시작은 9시, 교복은 이런 모양과 색깔, 1교시는 국어, 2교시는 체육... 학교는 나름의 규칙으로 움직입니다. 수업 시작과 끝도 일사분란하게 종소리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런 큰 규칙은 아이들도 일상생활에서 반복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히고 따르게 됩니다.

그런데 수업을 하다보면 금지행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아이들과 소소한 갈등이 많습니다. 휴대폰 사용, 다른 과목이나 학원 숙제, 잡담 및 쪽지 보내기 등등 그럴 때마다 잔소리를 하거나 또는 물리적인 체벌을 가하기도 하지요.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교사 눈을 피하느라, 교사들은 아이들 행동 파악하는데 주의를 기울이다보면 서로가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운 난감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서로 이런 주의를 수업에 쏟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이들과 같이 규칙 만들어보세요

그래서 저는 수업 규칙이나 학급 규칙을 아이들과 만들었습니다. 아이들과 미리 규칙을 정하고 규칙을 지키지 못할 경우에 어떤 방법으로 책임질 것인가를 정해 일관되고 공정하게 실천하면 갈등이 줄어 편하고 즐겁습니다. 아이들 또한 교사로부터 잔소리를 듣거나 혼나는 일이 줄어들어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됩니다. 함께 만들고 상황에 따라 개정이 가능한 규칙은 아이들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아이들은 미성숙하다’는 아동관에서는 아이들에게 참여할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보호와 통제의 대상으로만 다뤄져 책임질 기회를 갖지 못해, 결국 미성숙하고 무책임한 행동을 하게 됨으로써 어른들은 ‘아이들은 미성숙하다. 그러므로 보호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자기들의 전제를 다시금 확인했다고 믿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성숙하고 책임을 질 기회를 갖지 못하게 실수를 차단하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어른들의 생각보다는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며 자기들이 합의한 규칙은 더 잘 지키려고 합니다. 규칙을 지키지 못할 경우에도 기꺼이 책임을 지는 등 충분히 주체적이며 믿을만합니다.

▲ 이유가 타당하지 않은 규칙은 효과 없이 독재적인 통제수단으로만 인식될 뿐 아니라 규칙이라는 이름의 잔소리로만 여길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직접 결정하는 규칙이 필요합니다.
저는 수업 시간에 휴대폰으로 게임이나 문자를 할 때 무조건 뺏기보다는 수업 첫 날 아이들에게 서로 존중하는 행복한 수업을 방해하는 항목을 묻고, 방해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규칙을 만듭니다. 규칙을 어기면 휴대폰을 교탁에 올려놓았다가 수업이 끝나면 다시 돌려주는 것으로 정해 실행했습니다. “수업 중에 왜 핸드폰을 사용하니?”라고 비난하고 잔소리하기보다는 ‘규칙 3번’ 이라고 짧게만 이야기해도 아이들은 행동을 바꾸고 저는 수업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다가 특정 아이들의 휴대폰 사용이 반복되면서 다시 제 어려움을 얘기하고 개정을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휴대폰을 사용(‘문자왔다, 시계 봤다’ 등 어떤 이유도 예외는 없다고 못 박고)하면 수업 끝날 때까지 휴대폰 사용을 하지 못하는 불편을 겪게해 규칙을 어긴 자기 행동에 자기가 책임을 지도록 했습니다. 함께 정한 규칙이기에 아이들은 비록 선뜻 내놓지 못할 때도 있지만 공평하고 일관돼야 함을 얘기하면 큰 갈등은 없었습니다. 규칙을 적은 종이에는 자신들의 확인 서명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규칙을 만드는 과정에 동참하고 의견을 낼수록 동의가 훨씬 쉽고 자발적으로 지키려고 더 노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체적이고 융통성있는 규칙 만들어야

규칙을 정할 때는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내 잘못이 아니다, 문자가 온 걸 어떻게 하느냐, 시간을 봤다” 등등 어른들이 볼 때 변명이라 생각되서 화가 나고 규칙보다는 다시 통제하고 명령하는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늘 규칙은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어려워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그랬구나. 문자가 와서... 네 말을 믿는다. 지금 규칙엔 없는 상황이어서 당황스럽다. 수업시간에 휴대폰을 꺼두는 것이 예의이니까” 그러면서 오는 문자, 시간 확인 등의 경우엔 어떻게 할지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해 ‘어떤 경우도 안 된다’는 규칙을 첨가했습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규칙이 정교하게 만들어지는 동안 아이들은 서로 갈등이 일어날 때 손쉬운 통제와 명령이 아니라 서로의 욕구를 존중하며 모두에게 만족되는 규칙을 만드는 새로운 관계맺음을 배워가게 된다고 확신합니다.

가정에서도 부모와 아이가 빈번하게 갈등을 겪는 상황을 잔소리나 꾸중으로 관계를 서먹하게 하기보다는 함께 간단한 규칙을 정해 생활한다면 아이들의 자율성과 책임감도 기르고 관계도 좋아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식사 중에 아이들이 식탁에 휴대폰을 올려놓고 문자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밥을 먹을 때 휴대폰을 사용하면 다른 식구가 덜 중요한 사람으로 느껴지고 불편하다는 감정을 아이에게 이야기하고, 가족과 이야기 나누고 서로 모여 앉은 식사시간만은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일단 문자하는 것은 안 하기로 정했습니다. 유선 전화도 오면 급한 일이 아니면 되도록 식사시간이라고 양해를 구하고 나중에 전화하는 걸로 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매번 문자하는 것이 맘에 안 든다고 비난하거나 일방적으로 하지 말라고 명령한다면 식사 자리가 불편해짐은 물론이고 아이들은 기분이 안 좋아 질 겁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마음의 고통에 빠져 부모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것이 중요한지 생각하기도 전에 반항하거나,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진심으로 따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외 없는 규칙은 없기 때문에 만약 정말 급한 일이라 판단되면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른 곳으로 가서 문자를 하거나 전화 통화를 하기로 하는 등 절대 규칙으로 하기보다는 융통성을 두어 좀 더 지키는데 마음이 편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이 규칙은 아이들만이 아니라 가족 누구나 예외 없이 지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가족 그 누구도 그 규칙을 신뢰하거나 따르지 않아 또 다른 갈등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항상 규칙을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어길 수밖에 없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래도 규칙을 정한 뒤에는 잔소리는 줄었고 본인은 미안해하며 조심하는 것을 봅니다. 이렇듯 식사할 때만이 아니라, 공부할 때, 집안일을 할 때, 또는 아이가 갖기 바라는 좋은 습관을 길들일 때 등 상황별로 규칙을 만들면 아이들도 일관된 규칙 속에서 편하게 생활습관을 배워나갈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아이들에게 생활습관을 가르치고 갈등을 줄이기 위해 만드는 규칙이므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정해 규칙의 수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규칙이 너무 많으면 모든 행동이 제약되는 것 같은 구속감과 중압감이 생기거나 심지어는 어떤 규칙이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생깁니다. 또 꼭 지켜야 되는 것은 무엇이고, 어겨도 되는 것은 무엇인지 또 다른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수업 규칙은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가끔 발표하는 친구를 비난하거나 놀리는 경우나, 중요한 설명할 때 ‘규칙 1번’ 이라고 하면 잔소리 없이 집중을 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규칙) 또박또박 크게 말하고 (잘못 들어 오해가 생기거나 다시 물어야 하는 상황을 방지하는 규칙) 자신의 감정을 말하되 솔직하고 상대가 감정상하지 않게 말하기 (가끔 공격적인 말투로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에 ‘규칙 2번’이라고만 해도 멈칫하기도 합니다.) 등 몇 가지가 안 됩니다. 그래야 아이들도 지키는데 부담이 줄고 저도 잊지 않습니다. 또한 일주일이나 이주일 정도 수업 규칙을 적은 종이를 칠판에 붙여놓고 수업을 합니다. 한 번 정했다고 아이들이 규칙을 기억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규칙을 정하기만 하면 되냐 지켜야지. 규칙도 모르냐?” 등의 잔소리를 줄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반복을 통해 학습이 이루어지고 익숙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규칙을 실천할 때에도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제대로 따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규칙에 익숙해지도록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복을 통해 아이가 규칙을 지켰을 때는 칭찬해주고 규칙을 어겼을 때도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야단보다는 격려를 해줍니다. 아이들의 자존감을 살리기 위해서 ‘(네가 그럴 얘가 아닌데) 에구, 깜빡했구나’ 등으로 규칙도 안 지키는 못된 아이가 아니라 누구나 깜빡할 수 있고 실수는 용서 가능하며 다시 규칙을 지키도록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 체험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규칙뿐만 아니라 남의 실수에 대해 용서의 기쁨도 배울 기회가 되도록 만듭니다.

명령 NO, 스스로 만든 규칙이 효과 만점

아이들은 친구나 선후배의 영향을 받을 수 있기에 집밖에서 벌어질 갈등 상황에서 필요한 행동규범(?)도 함께 정하면 좋을 것입니다. 행동규범이 있다면 또래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내키지 않는 일에 끌려 다니는 일은 줄어들 겁니다. ‘방과 후 갑자기 친구 집에 갈 때는 어떻게 할까? 가고 싶지 않은 곳을 가자고 할 때는 어떻게 할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자고 할 때는 어떻게 할까?’ 등 부모가 걱정되는 항목과 아이에게 곤란했던 상황을 물어 항목을 정한 다음에 행동지침을 함께 만들고 그에 맞는 행동과 말을 연습하면 아이들은 행동규범에 따라 생활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또래 친구들이 자신의 행동규범과 정반대되는 행동을 요구하더라도 꿋꿋하게 자신의 행동규범에 어긋나지 않는 분별있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학급에서 놀림 받는 아이에게는 “그렇게 하면 속상해. 그러지 말아 줘”라는 말을 연습시키고 그래도 안 될 경우에는 도움을 청할 친구를 스스로 정하게 해서 도움을 청하고, 그래도 안 되면 담임에게 이야기하는 식으로 단계를 만들었습니다. 담배를 피우고 싶지 않은 아이에게는 갈등 상황에서 당장 고민하기 어려우므로 친구들이 권할 때 “난 폐가 안 좋아서 못 해. 미안해. 그렇다고 너희들이 내 친구가 아닌 것은 아니야” 등 아이와 함께 자기가 할 수 있는 가능한 말을 만들고 연습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이것에는 아이들이 따를 타당한 이유가 필요합니다. 부모가 ‘늦으면 전화해라, 이렇게 말해라, 이런 친구와는 놀지 말아라’ 등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지시하면 아이들은 행동규범이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몸에 익지 않아 어른들이 가르쳐준 행동규범대로 따라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유가 타당하지 않은 규칙은 효과 없이 독재적인 통제수단으로만 인식될 뿐 아니라 규칙이라는 이름의 잔소리로만 여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규칙의 필요성을 통감했을 때 그 규칙을 가장 잘 지킵니다. 명백한 이유가 없는 규칙은 아예 만들지 말고, 규칙을 지켜야 할 아이들이 그 이유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 여부를 꼭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규칙은 서로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규칙을 지킴으로써 서로 좀 더 자유로워지고 즐거워진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 체벌로 아이들에게 권위를 세우고 명령하면 아이는 폭력성이 강화되고 부모와의 관계도 나빠집니다.
교육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육의 역사를 보면 인간은 아동을 처음에는 마치 물건처럼 다뤘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동을 살 수도 있었고 팔 수도 있었습니다. 교육의 관점에서 아동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관념과 질서를 철저히 수용해야만 하는 대상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심한 체벌도 하면서. 흔히 사람들은 사회적 전통이나 훈육을 위해 체벌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제 상황에서 교육적 체벌과 학대 사이에 뚜렷한 구분은 어렵습니다. 많은 사회에서 전통과 체벌의 이름으로 학대를 정당화시키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계 24개국이 모든 종류의 신체 폭력을 학교, 가정 등 모든 환경에서 금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헌법과 초중등교육법에서도 ‘신체의 자유’를 위해 법으로 체벌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법으로 체벌을 금지하는 목적은 부모나 교사를 기소하고 벌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성인은 때리면 안 되는데 아이는 때려도 괜찮다는 인식과 상황을 바꾸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실수를 했을 때도 맞거나 비난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성장하면서 생활습관들을 학습해야 합니다. 스웨덴은 우유병에 '절대 아이를 때리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새기고, 영국은 출생신고 할 때 일종의 체벌 금지 서약에 서명을 하기도 한답니다.

어른들이 권위를 내세우면서 강하게 명령하면 아이는 겉으로는 듣는 척하지만 점차로 반항적인 태도를 내면화합니다. 이런 강압적인 태도로 양육된 아동은 폭력성이 강화되고, 부모와의 관계도 나쁘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원활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는 성인이 되었을 때 우울증에 빠질 위험성이 높다고 합니다. 아직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아이들에게 부모가 자신의 기준으로 일방적으로 가르치려고만 한다면 부모의 기준에 맞지 않는 아이는 자신을 ‘나쁜 아이, 못된 아이, 멍청한 아이’로 낙인찍은 어른들의 말을 믿으며 자신에 대한 좌절감만 심해질 것입니다.

아이가 자라서 자율적이고 타인을 존중하며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면 체벌과 잔소리로 부모를 두려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감정과 발달단계의 이해를 바탕으로 따뜻하고 안정된 관계 속에서 부모가 원하는 바를 강요하기보다는 스스로 해결책을 찾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서로를 자유롭고 편하게 만드는 규칙을 만들고 지키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감을 갖고 스스로의 행동에 좋은 결정을 내리고 통제력을 스스로 기르며 또한 다른 사람이나 나쁜 일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것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이제 아이들이 살아가는 동안에 필요한 예의와 비폭력, 자존감, 타인존중 등의 생활습관을 배우도록 아이에게 실수하고 책임질 기회를 주어야 할 때입니다.

이명남 / 서울 영림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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