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그를 의지해야 하는 아이의 마음을 아십니까?
아이는 혼자서 해낼 수 없을 때 도움을 구합니다. 가끔은 무언가 혼자 해내려고 노력합니다. 다만 보람없이 실패하지요. 이럴 때 다른 이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아이는 안달합니다. 어른들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그 손을 빌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환자가 매정한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에 그 변덕을 그저 참듯이 말입니다. - 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 중에서 -

여러 번 강조해도 모자라는 것은 아이를 부모의 소유가 아닌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고 그 감정과 정서를 존중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를 돕는 것은 수직적인 명령과 복종이 아니라 수평적 관계의 대화와 존중입니다.

나쁜 아이와 좋은 아이는 부모의 기준에 맞는 행동을 하는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합니다. 부모가 허용할 수 없는 행동을 하더라도 아이의 감정을 인정해주면 아이는 너그러워져서 자기 의견을 기꺼이 철회하거나 수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요구도 헤아리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좌절하여 분노하고 반항하는 나쁜 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이의 욕구를 인정해 준다면 아이는 나쁜 아이, 좋은 아이가 아니라 자기 의견을 다시 생각해보고 자기 행동이 남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는 책임감 있고 자율적이며 사려깊은 아이가 될 것입니다.

“넌 왜 그러니” NO, 해결책 제시해야

아이들의 성격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지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동정심, 책임감, 자율성, 배려, 공정함을 배우기 원한다면 부모도 대화와 존중으로 관계를 맺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뭔가 잘못되었을 때 아이들에게 인격에 대해 비판, 비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소설 ‘지나쳐간 사람들’에 나오는 폭풍에 밀려와 바닷가에서 숨이 찬 물고기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비난하거나 동정만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과 같습니다. 그럴 때는 무엇보다도 그를 도와 목숨을 구해주어야 합니다.

▲ 아이의 행동에 대한 비난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아이의 행동을 바람직하게 만들기위한 의도였지만 아이에게 분노, 울분, 복수심만을 남기거나 더 나쁜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가 부모의 욕구를 무시한다고 여기면 분노가 일어 그만 아이들의 행동이 아니라 인격을 비난하고 위협하고 충고하고 명령합니다. 아이들 스스로 자기 행동과 말을 돌아보고 타인에게 끼칠 영향을 생각해볼 겨를이 없이 자기의 욕구를 꺾거나 반항하면서 결국 부모가 바라는 책임감 있고 자율적인 아이는 영영 되지 못합니다.

이렇듯 부모들이 하는 대부분의 비판과 비난은 실제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부모들의 의도는 아이의 행동을 바람직하게 만들겠다는 것이지만 아이에게 분노, 울분, 복수심만을 남기거나 심지어는 더 나쁜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계속해서 비난을 받는 아이는 자존감이 낮아져 자신을 비하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단점을 찾으려 듭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은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가치도 하찮게 여기는 성격이 되거나, 사람들을 의심하며 사람들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고약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남편에게 운전을 배우다가 싸웠다는 아내들이 많습니다. 길에서 방향을 잘못 잡아 길을 잃었을 때 운전 기술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운전자에게는 명확하게 방향을 안내해 줄 친절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게 하는 건설적인 비판에는 중요한 효과가 있습니다. 바로 일이 벌어졌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비난은 쓸모가 없습니다. 쓸모있는 비판은 인격을 건드리지 않고 어려운 사건 그 자체에 대해 해결방법을 찾습니다. 약속을 자주 잊어버리는 아이에게는 약속을 적어 둘 수첩을 마련하거나, 방안에 칠판을 걸어두어 중요한 것을 적어놓게 하거나, 달력에 표시를 하는 도움이 필요하지 “칠칠하지 못하게 왜 만날 그 모양이니?”라는 비난은 자존감만 약화시킬 뿐입니다. 옷을 찾을 때마다 허둥대고 옷장을 헤집는 아이를 위해서는 옷장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써 붙이고 넣을 때도 맞춰 넣어두는 습관을 익히게 하는 게 필요하지 “왜 이리 덤벙대니? 자기 물건 하나 어디 있는 줄 몰라서 나중에 뭐 할래?” 라는 비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적이 떨어진 아이와 대화할 때는 어려운 수학을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어야지 “공부할 때 음악을 들으니 공부에 집중이 되냐?”고 과거를 들춰내 입씨름을 하거나 “이렇게 공부 안 하다가 어떻게 대학 갈래?” 등 앞날을 속단하거나 책임을 돌리며 위협하지 않아야 합니다. 수학의 어떤 부분을 어려워하는지 그것이 이해가 안 된 이유는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아이와 부모 모두 문제 해결의 태도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부모도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어려운 까닭은 부모가 분노에 휩싸이는 순간 이성이 마비되고 판단력이 흐려져서 분노의 감정만 내뱉게 될 뿐, 아이를 도울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화를 냅니다. 그렇다고 부모 모두가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분노는 관심에서 나옵니다. 어떤 순간에는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한데 화를 내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자기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이 없다고도 생각합니다. 누구를 사랑하는 사람은 화를 내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부모의 격렬한 분노와 지나친 폭력조차 견뎌낼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부모가 “그만 됐다. 나도 참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식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속에서는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도 겉으로 계속 기분 좋은 표정을 짓는 것은 위선이지 호의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이 아닌 비언어메시지인 표정과 말투에서 부모의 마음을 읽어냅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지나친 참을성으로 분노를 숨기려고 안간힘을 쓰는 대신에 효과적으로 드러내면 됩니다. 부모의 분노가 아이에게 분노와 앙갚음이라는 적대적인인 물결이 일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다음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1. 아이들이 부모를 기분 나쁘게 하고 짜증나고 화나게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2. 부모들도 죄책감을 느끼거나 후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분노의 감정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
3. 하지만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아이들의 인격을 모욕하는 표현은 쓰지 말아야 한다.

화가 치밀고 감정이 격해져서 거칠게 말하고 싶더라도 절대 인격을 공격하지 말고 다음 순서대로 말해봅니다.
1. 보고 있는 것을 사실대로 이야기해준다. (관찰)
2. 느낌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준다.(느낌)
3. 무엇을 해야 하는 가를 이야기해준다.(요구)

등교하면서 갈아입은 옷을 방에 아무렇게나 널려 놓고 나갔을 때 어떤 반응이 부모가 바라는 것을 기분 좋게 얻을 수 있을까요?

1. 도대체 넌 왜 이렇게 칠칠맞지 못하니? 예쁘게 꾸민 네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지저분한 네 방 꼬락서니를 상상도 못하겠지? 정말 우습다. 한심한 네 방을 좀 봐라!
2. 네 옷들이 방바닥에 어지러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면 하루 종일 할 일도 많은데 네 방까지 치울 생각을 하면 기운이 빠져. 네 나이에 자기 방을 정리하지 못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입었던 옷을 아무렇게나 두지 말고 빨래통에 넣어주렴.

말하고 싶은 핵심을 솔직히 드러내고 모욕도 주지 않고 인격을 공격하지 않은 말은 무엇일까요? 어떤 말을 들었을 때 상대의 심정을 헤아리고 자기 행동을 돌아보게 될까요? 아니면 한바탕 화풀이와 서로에 대한 공격이 끝난 뒤에 사과하고 다시 이유를 설명할 일이 남을까요?

▲ 아이의 행동에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게 하는 건설적인 비판이 중요합니다. 부모의 행동에 아이의 미래가 바뀔수도 있습니다.

때론 아무리 노련하고 의도가 좋다고 해도 여전히 그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는 막막하고 맥이 풀어지는 고통스러운 순간들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포기하지 마시고 “안타깝지만 나도 인간이다. 실수했다. 얘야, 엄마가 이제는 이런 방법으로 너와 대화하려고 한다. 네 마음을 존중하면서 내 마음도 존중받으면서 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그런데 아직 서투르다. 그러니 엄마가 노력하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나에게 너는 사랑스런 아이이고 제일 소중하다”라고 말하며 아이들에게 솔직히 엄마의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도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아이들도 기꺼이 도와줄 것입니다.

서로 낯선 방법이라 아이들도 어색하고, 아이들이 부모 마음을 금방 알아주는 것도 아니어서, 이전의 습관이 때론 빨리 갈등을 끝내고 마음에 차오른 말을 뱉으라고 유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좋은 부모 역할을 하려면 어린 시절부터 깊이 몸에 밴 습관적 가르침들 가운데 몇 가지는 버려야 합니다. 과거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과거를 되풀이하게 마련입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이 보이면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모욕적인 말, 조롱 섞인 말의 되풀이를 막아 악순환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빈정거림은 증오를 부르고 서로 적대감을 자극할 뿐입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서 아이가 가진 단점들을 일러줄 필요가 있다고 믿습니다만 그런 정직함이 결과적으로는 부모와 아이의 대화를 중단시킵니다. 그런 결점을 드러내놓고 인정하라고 강요하면 아이들은 절대 수정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때 시급한 과제는 당면한 위기를 아이가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아이에게 성격을 수정하고 인격을 형성하는 관계와 경험들을 갖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잘못된 비난은 아이의 미래를 망칠지도 몰라요

인격에 대해 비난을 받으면 부모의 의도와 달리 조심성을 기르거나 책임감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아이는 자신을 부정적으로 여기게 되는 부작용을 낳습니다. 아직 어려서 글자를 늦게 깨우쳤을 뿐인데, 아직 걷기에 서툴러 좀 넘어졌을 뿐인데 “아직 글자 배울 준비가 안 되었구나, 아직 걷는 것이 어렵구나”가 아니라 멍청하다는 평가를 반복해서 듣는 아이는 어른들의 그런 평가를 사실로 받아들여서 머리를 쓰는 일을 처음부터 포기할지 모릅니다. 더 이상 조롱 받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에게 어떤 시도는 곧 멍청이라는 실패를 의미하기 때문에 애초부터 시도를 하지 않는 편이 자기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아이는 절대 자발적으로 손을 들지 않습니다. 숙제는 손조차 대지 않고 시험이 다가오면 아픕니다. 그 아이는 평생 동안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하지도 않는다는 잘못된 행동 목표에 매달려 가족을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습니다.

컵을 깨트린 아이에게 “몇 번이나 이야기했니. 조심하라고. 잰 어쩔 수가 없다니까 칠칠맞지 못해서야. 앞으로도 늘 그럴 거야. 걱정이야.” 이렇게 비난을 들으면 아이가 조심성이 생길까요? 중요한 사실은 아이에게 인격을 비난한 댓가가 깨트린 컵보다 훨씬 비싸다는 점입니다. 가장 믿어야 할 부모에 대한 믿음의 상실을 값으로 따지면 얼마가 될까요? 컵을 깨트린 것은 아이가 시도한 많은 것 중에서 실패한 한 가지입니다. 그런 작은 실수 때문에 아이에게 인격적인 비난으로 모욕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경우에 가장 효과적인 대응 방법은 아이의 인격을 모욕하는 대신에 개진 컵을 치우는 법을 알려주고 같이 치우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반응을 통해 불쾌하고 귀찮은 일과 심각하고 비극적인 일을 분별하는 법을 배웁니다. 사소한 불행을 엄청난 재앙처럼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유리컵이 깨진 것하고 팔이 부러진 것은 다릅니다.

아이가 무언가 해 보려다가 혹은 처음 하는 일이라서 서툴러 순간적으로 저지른 실수를 어떻게 하면 너그럽고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도록 건설적으로 다룰 수 있을까요?

아이가 혼자 라면을 끓였는데 그릇에 담다가 엎어버렸다면 엎어버린 것이 아니라 라면을 스스로 끓여먹으려던 것에 집중합니다. “라면을 혼자 다 끓이다니 네가 이제는 뭔가 혼자 해볼 생각을 할 정도로 컸구나. 근데 엎어서 먹지 못하게 되어 속상하겠다.” 하면 아이 스스로 엎은 경험을 되짚어 보며 다음엔 잘 다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너그러운 부모의 태도에 부모와의 신뢰도 깨지 않고 또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을 분별할 줄 알고 자기와 타인에게 너그럽게 대하는 태도도 아울러 배우게 될 것입니다.

설거지통 주변에 떨어진 물이나 덜 짜여진 행주보다는 설거지 한 것에 집중한다면...
숙제를 다 못한 것보다는 늦게까지라도 하려고 한 마음에 집중한다면....
동생에게 화가 나 주먹으로 책상으로 친 아이의 동생을 때리지 않은 마음에 집중한다면..
늦게 일어나 부스스한 모습으로 학교에 갈 때 늦지 않게 가려는 마음에 집중한다면....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도 죄는 밉지만 정상 참작할 만한 부분을 찾아 변호하는 변호사가 있듯이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아이들을 심판하기보다는 아이들의 행동에서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 도움과 희망을 주는 것도 또한 부모 역할이 아닌가 합니다. 부모는 끝없이 아이의 편이 되어야 합니다.

어른이라는 특권으로 아이의 잘못만 꼼꼼히 기록하는지요?

우리는 아이들이 우릴 비판하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자신을 잘 다스 리지도 못하죠.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시도들은 아예 포기해버리고, 그 대신 그 책무 를 아이들에게 맡겨 놓죠. 교사도 마찬가지로 어른의 특권을 차지하고는 자기 자신을 다스리기는 포기하고 아이들을 감시합니다. 아이들의 잘못은 꼼꼼히 기록하면서 자기 잘못을 무시하죠. 우리는 왜 좀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지 않나요? ‘다루기 힘든’ 사람은 아이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어른들 아닌가요? - 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 중에서 -

이명남 / 서울 영림중학교 교사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