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판결로 우리들도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는 건가요?”
12일 오후 2시경 2공장 모처에 심각한 노동자 20여명이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투싼 단종에 따라 해고될 처지에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었다. 이번에도 66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게 생겼다. 기존차량이 단종 되고 신차가 투입될 때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매번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그 때마다 비정규직지회가 나서서 투쟁을 벌였지만 역부족인 경우가 많았다.

해고대상 조합원들 노조 집단가입

▲ 13일 낮 12시에 울산 현대차 2공장에서 열린 불법파견 대법판결 관련 보고대회에서 해고 위기에 처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피켓을 들고 서있다. 이들은 12일 모두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김상민
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이들은 이날 현대차 불법파견 대법판결의 주인공인 최병승 노조 미조직비정규사업국장과 간담회를 갖고 금속노조에 집단 가입했다. 간담회 결과는 명확했다. ‘우리는 이미 정규직으로 간주돼야할 노동자이기에 하청업체는 우릴 해고할 자격이 없다’는 것.

굳이 당장 해고될 처지에 있지 않은 이들 역시 대법판결 이후 속속 금속노조에 가입하고 있다.

“대법 판결이 나온 후 가족들이나 주위 사람들이 오히려 더 관심가지고 저에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12일 낮 1시 불법파견 대법판결 관련 보고대회를 마치고 공장에서 만난 김환성(가명, 32세)씨가 말했다. 김씨는 8년간 현대차 사내하청업체에서 일을 해온 비정규직이다. 지역 언론에서는 이 문제가 연일 다뤄지고 있다 보니 김씨도 정규직이 될 수 있는지 주위 사람들이 궁금해 했던 것이다.

김씨가 일하는 하청업체에는 원래 조합원이 10명 수준이었지만, 이번 대법판결을 계기로 4~50명이 추가로 조합에 가입했다. 김씨 역시 방금 열린 보고대회 때 금속노조 가입신청서를 작성한 신규 조합원이다. 과연 어떤 생각으로 그간 꺼려왔던 가입을 결심하게 됐을까.

김씨는 “지금 당장 내 처지가 바뀔 거라고 믿고 가입한 건 아니”라며 “우리가 얼마나 어떻게 나서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나와 동료들 모두 잘 알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일각에서는 비정규직지회의 조합원 수 급증을 바라보며 내실이 튼튼하지 않은 ‘거품’일 수도 있다고 우려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어차피 2년이상 근무 못할 바에는 싸울 수밖에”

김씨와 같은 업체 소속인 이정식(가명, 32세)씨는 이와 관련해 “우리들은 이번이 말 그대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비정규직들이 정규직화되지 못한다면 사측은 직접고용을 피하기 위해 2년마다 우릴 해고시킬 것이 뻔하다”며 “어차피 2년 이상 근무 못할 바에는 싸울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간의 부당한 차별을 청산할 정규직화의 좋은 기회라는 기대심리도 있지만, 이와 동시에 싸우지 않으면 해고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점도 노조에 가입하게 만든 중요한 이유인 셈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만큼은 아니지만 정규직 역시 불법파견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다. 13일 낮 12시 2공장에서 열린 불법파견 대법판결 보고대회를 주변에서 구경하던 현대차 정규직 안모 조합원은 “지역 언론에서 하도 떠들어대 정규직 동료들도 대법 판결 내용을 대체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안씨에 따르면 정규직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의 결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고 한다. 그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고용의 안전판 역할을 강요받아왔다. 또한 정규직들이 기피하는 힘든 업무에 종사해 온 것도 사실이다. 현대차 자본이 의도적으로 노동자를 갈라치는 것임을 모르지 않지만, 일부 정규직 조합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조리 정규직화 됐을 때 현실적으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정규직들도 정규직화 인정하는 분위기

하지만 안씨는 이 같은 생각은 일부에 불과하다며 “대부분의 동료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화되는 것을 대세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안씨는 “지금은 회사도 비정규직을 함부로 못 건드린다.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13일 2공장 보고대회가 끝난 후 만난 2공장 정규직 소속 김모 대의원은 현재 정규직 조합원 분위기에 다소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김 대의원은 “사실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는 벌써부터 당연시했어야 한다”며 “하지만 일부 정규직들은 대법 판결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관심이 부족한 듯하다”고 전했다.

정규직의 관심과 지지 절실

김 대의원은 “이번 판결이 정규직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규직들이 어떤 대응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노조차원의 구체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해 정규직의 지지와 협조가 필수불가결한 현 조건에서,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에 정규직이 나서도록 준비시키는 노력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현대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동료들에게 바라는 것은 사실 그리 큰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정규직 형님들과 함께 수년간 한솥밥 먹으며 근무해 왔거든요. 비정규직 문제인 만큼 당사자인 우리가 앞장서야죠. 정규직 형님들은 해봤자 되겠냐는 힘 빼는 얘기보다 최소한 희망을 주는 따뜻한 격려와 응원 한마디라도 해 주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정규직에게 바라는 것은 묻는 질문에 사내하청 노동자 김환성씨가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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