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더위가 한창이다. 전 지구적으로 이상기후현상이 연일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이런 일은 자연을 수탈과 이용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인간들에게 마치 자연이 경고를 주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에 따른 정상적 기후변화에 익숙했던 인간들에게 이상기후현상은 지금까지의 생활방식이 과연 정상적이었는지를 되묻게 한다. 과잉영양화에 따른 비만을 다이어트로 해결하려는 사회, 과잉생산으로 인한 물질적 풍족을 결코 포기하려 들지도 않고 오히려 조금의 부족이라도 생기면 그 이상을 모으려는 탐욕이 판치는 사회에서 익숙함과 편안함이라는 단어가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노사관계 변화의 전초전: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올해 임단협에서 전임자임금지급 문제는 노사관계 변화와 관련된 주요 관심거리였다. 노조활동에 전념하는 간부 활동가들에게 사용자가 임금지급을 하는 것은 또 다른 부당노동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노동부의 이색적인 유권해석은 현재의 노사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선전포고와 다를 바 없다. 지금까지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해오던 사항을 노동부가 개입하는 행위가 과연 얼마나 정당한지 의문이 드는 마당에, 이것도 모자라서 동네 장기판의 훈수정도가 아니라 법으로 단죄하겠다는 발상은 초국가주의(super-nationalism)의 망령이 한국사회를 여전히 드리우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노사관계 자율성 훼손의 결과는?

노사관계에서 자율적이고 고유한 내용들마저 정부가 법으로 처리하겠다는 태도는 올 하반기에 진행될 예정인 현장실사에서 그 목적과 의도가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노동부가 감독권을 행사해 현장실사를 하면, 그 주요대상은 금속노조에 가입된 사업장일 것이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금속 죽이기’로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용자들은 정부가 노동법을 제시하니까 자신들도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식의 온정적 자세에서부터, 법은 지켜야하지 않느냐며 어느 날 갑자기 도덕군자연하는 고압적인 태도까지 다종다양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정부나 자본이 노동문제를 접근하는 것이 여전히 전근대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선 공통적이다. 노사관계가 변화하면 자신들에게 유리하고, 반대로 노조에겐 불리할 것이라는 아전인수 격의 해석만 보이기 때문이다.

노조가 힘이 약해지면 자본이 힘이 강해진다는 단순논리가 항상 맞지는 않다. 왜냐면 노사관계의 이러한 비정상성은 예기치 못한 위험요소들을 잠재화하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꼭 경험을 해야 인정을 하는 우둔함으로 인해 노사관계의 비용은 증가할 가능성이 많다. 왜냐면 지금 당장은 먹기에 달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치유가 어려운 질병으로 되면서 몇 배 이상의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노사관계의 또 다른 존재이유이다.

누구를 위한 노사관계의 변화인가

노조를 부정하고 무시하는 기업일수록 생산성과 경영실적이 뛰어나다는 말이 한때 도요타 자동차를 빗대어 나오곤 했다. 하지만 도요타자동차의 대량 리콜 사태의 이면에는 조직내부의 비판이 사라진 기업문화가 있었고, 이런 기업문화를 가능하게 한 주요 요인은 무기력한 노조였다는 사실을 떠올려야 한다. 조직내부 비판자가 사라지면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문제는 더욱 확대되고 심화될 뿐이다.

노조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조직은 결코 제대로 된 발전을 하기가 어렵다. 또한 번거로운 내부감시자가 사라지면 일하기가 편할 것이라는 발상은 자기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지극히도 편의주의적이거나 사적인 이해관계만 앞세우는 이기주의와 다를 바가 없다. 사업장에서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노조의 존재를 부인하는 행위는 궁극적으로 조직발전보다는 자신들의 안위와 평안함만 추구하는 행위로 밖에 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자신들의 치부를 덮기 위하여 상대방의 약한 고리를 건드리는 비겁함은 결코 오래갈 수없는 저열한 정치술수라는 점에서 보면 더욱 그러하다.

이종래 / 한국노동운동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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