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9일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서울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은 올해 양국 외교·국방장관이 참석하는 이른바 ‘2+2회의’ 한미 전략대화 개최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 7월 21일 사상 처음으로 한미 외교·국방장관(2+2)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한미동맹 강화를 합의하고, 전작권 전환을 포함한 새로운 계획인 ‘전략동맹 2015’를 올해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까지 완성하기로 하였다. 또한 공동성명을 채택하여 북의 천안함 공격을 규탄하는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을 환영하고, 북의 책임 있는 행동과 함께 비핵화 의지를 담은 구체적 행동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사상 첫 한미 외교·국방장관회의는 구체적인 미래비전이나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대북압박용 행사로 끝나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2+2 한미 전략대화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한미동맹이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증진시켜 왔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당연히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증진시킬 수 있는 비전과 계획을 밝혀야 했다. 그런데도 2+2회의는 천안함 사고와 관련한 북에 대한 책임 추궁과 핵무기 포기, 비핵화 의지 요구 등 기존의 대북 압박정책을 되풀이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심지어는 미국의 대북 추가 제재방침마저 발표하였다.

▲ 21일 2+2회의에 앞서 한미 양국 장관 4명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를 방문했다.
게다가 민감하게 이 회의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북을 향해 양국 장관들이 판문점 공동 방문이라는 전시성 행사를 연출한 것은 명확하게 대북압박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에 다름 아니다. 도대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심지어 한미 국방당국은 2+2회의가 끝나자마자 7.28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겨냥하기라도 한 듯 동해에서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을 실시하겠다고 밝혀 한반도와 동북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사실상 2+2회의가 한반도의 긴장 고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진정으로 한미동맹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면 지금과 같은 대북압박정책은 즉각 포기되어야 한다. 이 같은 방식은 북의 반발과 중국의 경계심을 자극할 뿐이고 한반도와 동북아에 신냉전을 불러올 뿐임을 한미당국은 명심해야 한다.

첫 한미 전략대화 직후인 7월 25일부터 북의 천안함 공격에 대응한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이 시작되었다. 4일 동안 동해에서 ‘불굴의 의지’라는 명칭으로 치러지는 한미연합훈련에는 핵항모 조지 워싱턴호(9만7천t급)와 아시아 최대수송함인 독도함(1만4천t급), 3천200t급 한국형 구축함(KDX-Ⅰ)과 4천500t급 구축함(KDX-Ⅱ)인 문무대왕함 및 최영함, 1천800t급 잠수함, 해양 탐사선 등 양국 함정(잠수함 포함) 20여척이 참가한다.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미 공군 주력기인 F-22(렙토) 전투기 4대를 비롯 F/A-18E/F(슈퍼호넷) 및 F/A-18A/C(호넷) 전폭기, 조기경보기 E-2C(호크아이 2000)와 한국군 F-15K, KF-16 전투기, 대잠 초계기(P3-C), 대잠 헬기(링스)를 포함한 200여대의 항공기도 훈련에 참여한다.  


또한 미 육, 해, 공군, 해병대 병력 8천명도 훈련에 참가한다. 한미연합훈련은 미국 사이버사령부 요원도 참가한 가운데 네트워크 방어전, 연료 공급과 지휘통제(해병대), 대잠훈련(해군), 공중급유와 합동타격훈련(공군) 등으로 진행되며 동해 북방한계선(NLL) 인근도 훈련구역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져 군사적 긴장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7월 27일에는 천안함 피격과 같은 사건의 재발방지를 명분으로 실전과 유사한 대함사격 훈련도 진행된다. 이 훈련에서는 실제 어뢰를 발사하고 이를 격파하기 위한 폭뢰 및 기만 기뢰 등이 투하된다.

나아가 일본의 요청에 따라 해상자위대 소속 대령 등 장교 4명이 조지 워싱턴호에 탑승해 훈련을 참관할 계획이다. 일본 자위대원의 한미연합훈련 참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을 강화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는 이 훈련에 이어 9월 중으로 서해에서도 고강도의 연합 해상훈련을 실시할 계획이어서 점차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워질 전망이다.

이에 맞서 지난 7월 24일 북 국방위원회 대변인은 동해상에서 진행되는 한미연합훈련 등과 관련해 “강력한 핵 억제력으로 당당히 맞서나갈 것”이라며 “우리 군대와 인민은 미제와 남조선 괴뢰들이 의도적으로 정세를 전쟁 접경에로 몰아가고 있는데 대응하여 필요한 임의의 시기에 핵 억제력에 기초한 우리 식의 보복성전을 개시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속도로에서 중앙선을 벗어난 차량이 서로를 향해 질주하는 형국이다.

이러한 엄중한 시기에 베트남 하노이에서 아세안지역포럼(ARF)이 개최되었다. 진통 끝에 7월 24일 제17차 아세안지역포럼(ARF) 외교장관회의 의장성명이 채택되었다. 의장성명에서는 천안함 침몰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인명손실에 대해 애도를 표했다. 아울러 한반도와 지역 평화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관련 당사자들의 모든 분쟁을 평화적 수단으로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고 당사자들의 6자회담 복귀를 권고했다.  


7월 24일 밤 공개된 의장성명은 천안함 사태와 관련하여, 남과 북 양측의 입장이 절충된 형태로 가시화되었다. 천안함 문제를 다룬 8항에서 ‘공격’(attack)이라는 표현은 들어갔지만, ‘규탄’(condemnation)이라는 표현이 제외되었다. 이는 지난 7월 9일 채택된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 기조에서 후퇴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9항에서 밝힌 이른바 천안함 사건의 출구전략으로 6자회담의 복귀를 권고한 내용이다. 이는 동해에서 한미연합훈련을 실시함으로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긴장을 조성하는 방식이 아니라 6자회담 내에서 대화를 통한 평화적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갈 것을 아세안 국가들이 원하고 있다는 뜻이다. 상대를 서로 존중하면서 6자회담 테이블에 앉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출구임을 또 다시 입증해준 것이다.

한미 당국이 한미 전략대화를 통해 전쟁동맹을 강화하는 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요원하다. ‘꿩 잡는 것이 매’라고 한미당국이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을 드리울 때 이를 제거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가는 것은 노동자 민중의 몫임을 분명히 자각해야 한다. 한반도 정세의 주체는 우리 자신임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종일 /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사무처장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