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감정(모순 감정) : 어떤 대상, 사람 생각 따위에 대하여 동시에 대조적인 감정을 지니거나 감정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따위를 말함

어느 순간 서로 경멸하고 미워하던 형제가 잠시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이좋게 놀거나 농담을 하는 것을 보면 부모는 아이들이 서로에 대해 품고 있는 모순된 감정들에 놀랍니다. 아마도 아이들이 큰소리로 말하거나 밀치기 때문에 싸우는 것은 확연히 인지하게 되지만 아이들이 소곤소곤 이야기하며 놀면서 서로에게 깊은 애정을 보여주는 모습은 종종 놓치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듯 다행스럽게도(?) 미움이 사랑의 감정을 없애지는 못합니다.

부모는 서로 사랑하길 바라는 아이들이 서로 고함치고 싸우는 것을 보는 순간에는 부모로서 무능력감을 느끼거나 다른 사람들과는 잘 어울려 지낼지 걱정이 앞 설 것입니다. 하지만 안정된 가정에서 형제끼리 서로 싸우는 일은 아이들에게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법, 갈등을 협상하는 법, 어려움을 해결하는 법, 다른 사람과 함께 잘 지내는 법, 그리고 삶이란 언제나 공평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배움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들이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아이 스스로 해결책을 제안하며 형제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게 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격려함으로써 아이들에게 미래의 인간관계를 준비하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겁니다.

격려하기, 극복하기, 스스로 해결하기, 부모가 도와줘야

아이들이 형제를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미워하는 양가감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며 그 관계는 시시각각 변한다는 것을 부모가 이해했다면 그 싸움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먼저 부모는 형제 사이의 긍정적인 감정은 격려하고 부정적인 감정은 극복하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즉 싸울 때의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려 하기 보다는 형제끼리 애정과 관심을 나타낼 때 격려해 주는 것입니다. 동생이 투정을 부리자 언니가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인형을 가져다 주었을 때 바로 긍정적인 감정을 격려해주는 것입니다.
영희 : 영미야, 울지 마. 언니가 인형 갖다 줄게.엄마 : 영희야, 어쩜 동생을 달래는 방법을 알고 있구나. 동생이 걱정하는 언니가 있어 엄마가 든든하구나.

다음으로 형제간의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을 때 부모는 아이들을 꾸짖지 않고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이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서도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며 다시 형제간의 다정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길을 가다 자기도 엄마 손을 잡겠다며 동생을 밀어 넘어뜨린 영희에게 엄마는 “영희야, 너도 엄마 손을 잡고 가고 싶었구나! 그런데 영희야, 동생은 아직 너무 작아서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넌 힘도 세고 크니까 앞으로는 네가 동생을 잘 보살펴 주어야 할 것 같아. 엄마는 네가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라는 말로 영희의 질투심을 인정함으로써 동생을 때린 영희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하고, 동시에 영희에게 긍정적인 사랑의 감정을 갖도록 해 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영희가 갑자기 영미의 인형을 갖고 놀고 싶다며 달라고 하자 영미는 자기 것이라고 양보하지 않습니다. 영희가 힘으로 뺏으려 합니다.
아빠 : 영희야, 영미가 안 된다고 하잖니. 너희 둘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겠니?
영희 : 영미야, 네 인형 내가 좀 갖고 놀면 안 될까?
영미 : 안 돼 , 이건 내 거야.
엄마 ; 영희야, 영미가 마음이 바뀌면 만지게 할 거야.
이럴 때 “언니가 잠깐만 놀고 싶다고 하니 좀 양보하렴. 착하지”라고 하기보다는 어른들도 힘든 ‘공유의 어려움’을 강조하는 것이 아이의 마음을 여는 데 보다 효과적일 것입니다. “네가 좋아하는 인형을 함께 가지고 논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아빠도 알아. 그러나 네가 인형을 다 가지고 논 다음에는 언니에게 가지고 놀도록 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말은 스스로 그 문제에 대한 선택을 했다는 감정을 갖게 해줄 뿐 아니라 공유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할 수 있을 겁니다.

부모들이여 중재자 역할은 그만

그리고 싸움이 격한 상황에서는 감정을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사촌 형제들이 놀러오자 거실에서 놀던 철수가 영희만 남겨둔 채 자기 또래인 사촌과 방으로 들어가더니 방문을 잠가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은 스스로 해결책을 찾도록 하는 것보다는 아이의 감정을 돌보아 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만약 엄마가 집안의 평화를 위해 아이들의 싸움을 중재하려한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형제에 대한 아이들의 감정을 부인하게 되어 본의 아니게 싸움을 가중시킬 수도 있습니다. 엄마가 “동생하고 잘 놀아야지 동생을 따돌리면 어떡하니?” 혹은 “누가 먼저 그랬니?” 라고 묻는 것은 엄마로서는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고 시작한 말이지만 마치 잘잘못을 따져 한 아이가 옳고 다른 아이가 그르다는 듯이 싸움에서 승자와 패자를 가려내는 의도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잘못한 쪽을 가려내려는 부모의 개입은 싸움을 멈추게 하기보다 서로를 방어하게 되고 자기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더욱 격해지면서 오히려 싸움을 지속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빠가 되어서 좀더 의젓하게 양보하고 잘 할 수 없니?” 또는 “동생이 되어서 오빠한테 덤비는 것은 옳지 않아”라고 두 아이 중 한 아이를 패배자로 만들어 야단치는 것은 엄마나 다른 형제를 원망하며 분노와 적개심을 품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많은 형제의 싸움에서 부모가 중재자의 역할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오히려 두 형제의 사이를 갈라놓았을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대부분의 부모는 언제나 오빠를 동생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야단을 치며 오빠보다 약하고 순진한 어린 동생의 편을 들어주게 됩니다. 동생은 그런 엄마의 마음을 이용하면 오빠를 야단맞게 한다는 것을 터득하게 되어 자기 뜻을 관철시키고자 결국 오빠를 자극해 꾸지람을 듣게 하고 오빠는 승리(?)한 동생에 대해 더욱 화가 난 결과 싸움은 더욱 격렬해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부모가 중재자를 포기하면 놀라울 정도로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다시는 다투지 않게는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횟수가 줄거나 싸움의 강도가 약해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과 타협하고 인정하며 살아가는 인간관계를 연습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부모의 중재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격렬한 몸싸움으로 다치게 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피해자의 안전과, 가해자가 형제를 다치게 한 것 때문에 죄의식을 느끼고 스스로를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막는 등 둘 모두를 위해 즉각 중재를 해야만 합니다. 부모는 아이들의 감정에 대해 관대할 수는 있지만 허용될 수 있는 행동이 어떤 것인지에 관해서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이들을 서로 떨어져 있게 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일 수 있습니다.

아이들 다툼은 또 하나의 소통

어느 한 아이의 편을 들어 적개심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중재할 수 있는 방법은 또 있습니다. 첫째 감정을 인정하는 방법과 둘째 명확한 한계를 설정하는 방법입니다.
아빠 : 싸우다 보면 화가 나서 서로 때리게 되는데 아빠는 너희들을 모두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 때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그러니까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철수 : 모르겠어요.
아빠 : 그럼 때리는 대신에 할 수 있는 다른 것은 없을까?
철수 : 말로 하는 거예요.
아빠 :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을까?
철수 : 베개를 칠게요.
아빠 : 좋은 생각이구나! 그럼 화가 나더라도 때리지 않고 말로 하는 것에 모두 찬성하니? 아니면 베개를 칠까? 자, 무엇으로 할까?
철수와 영희가 모두 동의하는 것으로 결정을 합니다.

아버지는 굳이 잘잘못을 가리지 않고서도 아이들이 서로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들이고 문제 해결을 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결코 다시는 때리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대안을 마련하고 정하도록 해주면 아이들에게 부모가 일방적으로 싸우지 말라고 명령할 때보다도 더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여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영희 : 저도 안아 주세요.아빠 : 아빠가 영희도 안아주기 바라는구나!
영희 : 네. 난 영미가 미워요. 영미가 없으면 좋겠어요.
아빠 : 영미하고 아빠를 나누어 가지는 게 싫구나!
영희 : 네. 영미가 없으면 아빠가 나를 안아줄 거니까요. 다리 아파요.
아빠 : 그렇구나. 영미를 안아주고 있어도 영희야 분명히 넌 아빠의 사랑스러운 딸이야.

아버지는 영희에게 동생이 아직 어리다는 사실을 설명하기보다는 영희의 질투심을 인정하고 영희가 바라는 관심과 사랑하는 딸임을 알려주어 영희를 안심시키고 동생과의 관계가 이어지도록 만들었습니다. 부모의 관심을 공유하는 것을 좋아할 아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강제로 어떤 것을 공유하게 하면 오히려 더 저항하게 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다투는 상황이 되면 걱정에 휩싸여 때론 아이들이 싸움을 즐길 수도 있음을 생각지 못합니다. 아이들에게 싸움은 지루한 일상에서 신나는 일일 수 있습니다. 깊은 애정이 그 이면에 자리할 수도 있고, 서로를 모욕하는 것이 아이들의 독특한 의사소통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비록 아이들 말이 거칠고 흉하게 들릴지라도 아이들은 부모가 받아들이는 것처럼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형제간의 사랑을 표현하는 독특한 언어일지 모릅니다.

형이 동생보다 감정을 더 잘 통제하고 의젓하게 행동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형에게 부담이 되거나 자신이 희생되었다고 부당하게 느낄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이 습관적으로 작은 아이를 두둔하고 큰 아이를 야단칠 것이 아니라 위에 말한 여러 방법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데 전념하는 것이 보다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들을 동등하게 다루고 아이들이 부모가 공평하다고 알게 할 수 있다면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놓고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아무리 공평하게 한다 해도 결코 아이들은 그렇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공평하게 할 수 없다면 가장 바람직한 일은 그것을 그만 두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들을 똑같이 대우하려고 하는 한 아이들은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점수를 따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싸우는 것은 똑같은 대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동등하게 대하기보다는 각각의 아이들을 독특하게 대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아이 : 엄마는 누구를 제일 사랑해?
엄마 : 너희들은 엄마의 열 손가락과 같아. 너희들은 모두 달라서 엄만 너희들이 모두 필 요하고 또 하나라도 없으면 살 수 없어.

아이가 사랑을 확인하고 행복해지면 가족의 평화가 저절로 올 것입니다. 그리고 일생동안 가장 오랜 동안 지속될 형제 사이는 부모의 도움으로 사랑과 미움의 양가감정이 통합되어 아이들 모두 성숙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명남 / 서울 영림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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