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군포시에 위치한 케피코 정문 앞에 “고소 고발 취하하라”는 현수막이 붙은 천막이 하나 서있다.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라면 케피코 지회에서 친 천막이라고 생각할테지만 아니다. 천막과 플랜카드에는 ‘금속노조 경기지부 두원정공지회’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아니 두원정공지회가 케피코 앞에서 천막농성을? 20일 케피코 앞 천막을 지키고 있는 두원정공지회 권영국 수석부지회장을 만나 경기지부의 색다른 연대투쟁 사연을 들었다.

케피코 소환장 남발, 그리고 시작된 투쟁

6월 9일. 경기지부 파업출정식이 예정되어 있던 날이다. 이 날 파업출정식이 계양전기에서 진행된다고 알고 있던 경찰들은 계양전기 앞에 전경 버스를 10대나 세워두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경찰과 회사의 예상과 달리 경기지부 1천 1백 여명 조합원들은 케피코로 향했다. 워낙에 극심한 탄압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현대기아차 계열사인 케피코로 모이기 위한 지부 조합원들의 007작전에 경찰과 회사가 깜빡 넘어간 셈. 집회 직전에야 케피코에서 출정식이 진행된다는 것을 안 회사는 버스와 트럭, 관리직 1백 여명을 동원해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지부 조합원들은 정문을 가로막은 관리자들을 뚫고 케피코 안에 모여 힘차게 파업 출정식을 진행했다. 경찰은 모든 조합원들이 케피코 안으로 모인 뒤에야 도착했다.

“이렇게 철저하게 보안이 지켜진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경기지부 조합원들의 단결력이 확인된 거죠” 조합원들은 승리했고 경기지역 사용자들은 흔들렸다. 회사의 정보력이 무너진 것이 여실히 드러나자 탄탄한 결속력을 자랑하던 사용자들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이 날 결의대회는 별다른 마찰 없이 진행됐다. 하지만 케피코 사측은 지부 임원과 케피코지회 지회장과 부지회장 등 4명을 고소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9일 결의대회와 관련해 두원정공지회 임원 4명을 비롯해 경기지부 지회장들에게 소환장이 발부됐다. 지회에 각종 탄압을 일삼았던 케피코 사측이 이제 경기지부 전체 노동자를 탄압하고 나선 것이다. 케피코지회 장명권 지회장에 따르면 ‘한 번 더 뚫리면 옷 벗긴다’는 그룹의 통보가 있었다는 말도 전해진다.

“두원정공은 절대 못 들어온다”

그리고 두원정공지회는 지난 14일부터 케피코 정문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14일 두원정공지회 조합원들이 케피코지회 간부들을 만나고 케피코 사측에 항의방문을 하기위해 찾아왔지만 정문을 가로막는 관리자들 때문에 회사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정문 앞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두원정공지회는 케피코 앞에 천막을 쳤다. 매일 오전 11시부터 저녁 6시까지 지회의 농성이 계속되고 있다.  

▲ 두원정공지회는 지난 15일부터 케피코 정문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 중이다.
케피코 사측의 대응은 역시 가관이다. 9일 정문을 뚫고 들어가는데 두원정공지회 조합원들이 앞장섰다는 이유로 “두원정공 사람들은 절대로 출입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는 것. 다른 지회 조합원들은 케피코지회 방문이나 회의를 위해 출입을 하고 있지만 유독 두원정공 조합원들은 출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회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하자 정문 앞에 CCTV를 설치하고, 용역 18명을 새로 배치하기도 했다. 회사에서 발행하는 소식지에도 연일 “두원정공이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악선전이 넘쳐나고 있다.  

“케피코지회 외롭게 두지 않겠다”

두원정공지회는 이미 올 해 임단협을 타결했다. 자기 사업장의 임단협이 타결되면 투쟁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투쟁 동력이 떨어진다고들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회가 케피코 앞 천막농성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임단협이 타결된 사업장들이 있는 상황에서 타결되지 않은 곳의 조합원들은 ‘우리만 남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케피코 조합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케피코 조합원들에게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 경기지부가 함께하는 투쟁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역의 연대투쟁, 공동투쟁 그 자체를 실천하고 있는 것.

권 수석부지회장은 경기지부의 단결과 연대투쟁은 이미 훈련되어 왔다고 전했다. 지난 4월부터 경기지부 교섭단은 경기 지역의 장기투쟁사업장인 파카한일유압분회 투쟁에 결합해왔다. 매 주 1회 파카한일유압 앞에서 전체 교섭단이 모여 난장투쟁을 벌여왔다. 그 투쟁은 교섭단에서 확대간부로 확대됐다. 권 수석부지회장은 “그런 투쟁을 계기로 동지애가 더 돈독해졌다. 그리고 같이 인식하고 함께 투쟁한다는 것이 그때부터 훈련되어 온 것 같다”고 말한다.

경기지부는 사업장마다 돌아가면서 파업출정식을 진행해왔다. 케피코에서 파업출정식을 진행한 것이 특별할 것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 소환장의 명목은 ‘업무방해’다. 케피코 사측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도 “이 곳은 우리 회사다. 우리 회사 직원도 아닌 사람들이 왜 들어오느냐”는 것. 권 수석부지회장은 “오히려 업무방해를 받은 것은 우리”라고 주장한다. 노조의 정당한 파업 행위를 사측이 방해했다는 것. 회사는 사업장별로 나눠진다고 하지만 노동자는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 하나라는 것을 회사가 알 턱이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두원정공 투쟁은 현재 진행형

두원정공지회가 농성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아직 투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 수석부지회장은 “케피코지회의 투쟁은 케피코만이 아닌 경기지부 전체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경기지역의 투쟁을 주도해 온 케피코가 무너지면 두원정공을 비롯해 타결을 한 다른 사업장들도 탄압의 공세가 시작될 거라는 것.

현대기아그룹 계열사인 케피코는 노조 무력화를 위한 탄압의 선두에 서있는 상황이다. 케피코 사측의 탄압은 올 해 1월 1일 새로운 사장이 부임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케피코지회 장 지회장은 “사장이 취임하자마자 직원과의 대화, 비전 선포식, 각종 교육 등에 돈을 뿌리며 자신의 이미지를 만드는 한편 지회에는 끝없이 비협조와 시비, 도발로 일관했다”고 전했다. 7차례나 지속된 교섭요청을 거부해왔고, 현재 전임자를 무급 휴직 처리하겠다고 통보하기도 했다. 지회에서 파업을 하면 조합원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생산라인 문 곳곳에 잠금장치를 만들어 문을 잠근 채로 관리직을 대거 동원해 비상 생산을 한다. 회사의 탄압이 이렇다보니 지회는 투쟁 3분 전에 문자메세지로 지침을 내려 기습적으로 현장 점거 투쟁을 진행하기도 했다. 심지어 케피코 투쟁을 지지하며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에서 부착한 현수막을 인사노무팀 담당자가 야간에 몰래 철거하다가 걸리는 등 치졸한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  

▲ 케피코는 건물 외벽에 철조망을 설치하고 회사 곳곳에 CCTV를 설치했다. 회사가 아닌 수용소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이 뿐만이 아니다. 회사의 탄압은 회사 건물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사장은 부임 이후 회사의 모든 외벽에 철조망을 설치했다. 철조망 설치하는 비용으로만 1억원이 들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조합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기 CCTV도 11개나 설치했다. 케피코 맞은편에는 소년원이 있지만 어디에도 철조망은 보이지 않는다. 권 수석부지회장은 “케피코 모습은 소년원보다도 심각하다. 온갖 곳에 철조망에 CCTV까지 이것이 수용소와 뭐가 다르냐”며 케피코 사측의 행태를 비난했다.  

지부와 지역 조합원들은 이런 회사의 탄압은 케피코 한 사업장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 싸움을 제대로 매듭짓고 자본에 확실한 경고를 하지 않는다면 어떤 지회도 안전할 수 없다는 것. 권 수석부지회장을 비롯한 두원정공지회 간부들과 교섭위원들은 끊임없이 조합원들에게 케피코 투쟁에 함께해야 한다는 내용을 알리고 있다. 지역의 미타결 사업장, 그리고 전국 투쟁에 함께하고 승리하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안전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우리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두원정공 지지방문은 케피코 앞으로 오세요

농성장에 앉아있다 보면 출퇴근 시간, 점심시간 오가는 케피코지회 조합원들을 만날 수 있다. 케피코지회 조합원들이 본인들의 회사 정문으로 지지방문을 오는 재미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더운 날씨에 고생한다며 아이스크림을 사오거나 간식거리들을 챙겨 온다. 케피코지회 간부들도 농성장을 함께 지키면서 현장의 분위기도 전하고 두원정공지회 조합원들과 이후 투쟁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한다.  

▲ 두원정공지회 천막은 연대의 장이다. 천막에서 두원정공지회 권영국 수석부지회장(오른쪽)과 케피코지회 오병철 복지실장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케피코지회 장 지회장은 “두원정공이 판을 깔았으니 우리가 더 해야 할 몫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장 지회장에 따르면 처음에는 두원정공지회의 농성장을 그냥 지켜보기만 하던 조합원들도 변해가고 있다고 한다. 케피코지회 조합원들은 이미 협상을 타결한 지회가 자신의 사업장도 아닌 곳에서 농성을 하면서 함께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힘을 얻고 투쟁의 의지를 모아가고 있다.  

두원정공 농성장은 자연스럽게 경기 지역 투쟁의 거점이 되고 있다. 오후에는 정당, 사회단체 등 많은 곳에서 농성장을 찾아와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지난 주말에는 비가 오는데도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농성장을 찾아왔다. 권 수석부지회장은 “앞으로 이 곳을 두원정공만의 농성장이 아니라 지부를 중심으로 투쟁의 거점으로 만들고 케피코 자본을 상대로 한 투쟁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원정공이 시작했지만 진정한 경기지부 연대의 장은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특별한 농성장, 그 곳에는 뜨거운 연대의 기운과 “절대지지 않겠다”는 투쟁의 열기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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