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시합에서 지능적인 파울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경기의 맥을 끊는 반칙을 의미한다. 물론 규칙을 위반하는 반칙은 애초부터 저질러서는 되지도 않고 심지어 부도덕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경기만 이기면 그만이라는 신자유주의적인 성과지상주의가 축구경기에 마저 옮겨간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상대방이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반칙으로 저지하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부당하다는 사회적 관념 때문 인지는 몰라도, 지금의 한국사회는 반칙을 반칙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오히려 반칙을 권하는 사회로 바뀌어버린 듯한 착각마저 들만큼 반칙을 저지르지 못하는 사람은 지극히도 비정상이거나 못난 사람 취급을 당하는 기이한 일들이 횡행하고 있다.

공권력이 반칙을 하면...

국무총리실의 공직윤리지원관실이라는 곳에서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사찰한 사건이 터지면서 ‘영포회’라는 조직의 실체까지 수면위로 서서히 나오고 있다. 같은 지역 출신의 인물들이 이른바 놀고먹는다는 좋은 자리에 자기네 사람을 앉히려고 권력을 행사한 것도 모자랐던지, 민간인마저 불법적으로 사찰하고 힘없는 개인의 생계수단마저도 빼앗아버린 희대의 사건은 우리시대의 또 다른 자화상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누구 편을 들기보다는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도모하는데 기여하여야 하는 공공기관이 사적인 이해관계만 도모하는 집단으로 전락을 한다면, 그것은 지배체제의 위기를 스스로 만드는 징후에 불과하다.

▲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이제 공정위가 얼마나 얕보이는지 현대기아차그룹은 물량 몰아주기와 같은 계열사 간의 내부거래를 오히려 늘리고 있다.
과거 민초로 불리던 이름 없는 민중봉기는 하나같이 부도덕한 권력의 패악질과 탐욕에서 비롯되었다. 개인들의 지극히도 사적인 이해관계 충돌을 조정하고 조율하여야 하는 임무를 스스로 팽개치는 행위는 말 그대로 자신들의 무덤을 스스로 파는 뻘짓과 다를 바가 없고, 자신들의 무지와 무식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용감무쌍한 행위임에는 분명하다. 이런 행위가 경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시장경제를 정책적으로 지휘하고 운용하는 지배세력들에게 자본주의라는 사회경제체제는 자신들이 목숨 바쳐 지켜야 할 체제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기업간 원하청 관계를 보면 그들 스스로가 자본주의의 기본규칙을 갉아먹는 행위를 하고 있을 뿐이다.

시장경제의 적들

시장경제의 적들이라는 섬뜩한 용어로 한 때 누군가 노조를 공격하려고 든 적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잘 보아 주려고 애를 써도 시장경제의 적들은 노조가 아니라 정부와 재벌들이라고 보는 게 정상이다. 자본주의 꽃이라는 시장경쟁체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기업들은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목을 매어야 한다. 만약 자신들의 게으름을 다른 이들의 노력으로 갈취하려고 든다면, 이런 체제는 더 이상 시장경제가 아니라 협박과 공갈로 대신하는 공포정치일 뿐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라는 원청회사가 납품단가의 5.5%를 일률적으로 인하하라고 압력을 행사하여 8개의 하청회사 중에서 7개 업체는 목표치를 상회하였지만, 나머지 한 곳만 목표보다 낮은 3.0% 인하율을 보인 사건을 두고 공정거래위원회는 무혐의를 결정한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공정위의 결정이유를 보면 우선 삼성전자가 납품단가 인하율 목표를 설정했지만 실제 실행했다는 증거가 없으며, 8개 업체 가운데 동일하게 5.5%의 인하율이 적용된 기업은 3곳일 뿐이고 다른 업체들은 인하율이 다르다는 점 때문이란다. 말 그대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해괴망측한 말들을 하고 있을 뿐이다.

공정위가 이런 말을 해대어서 그런지 이제는 공정위를 얕보는 행위마저 벌어지고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의 경우 공정위에 법적으로 공시하여야 하는 의무마저 지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내부거래비중이 공정거래위에 공시된 수치와 달리 기아차는 42.3%, 현대차는 32.9%, 현대모비스는 78.3%, 글로비스는 84.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량 몰아주기와 같은 계열사 간의 내부거래는 기업간 경쟁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반사회적 혹은 반자본주의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정상적인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체제붕괴의 의도를 가진 반체제범죄로 엄단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지극히도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자행되고 있을 뿐이다.

정부와 자본이 이런 몰지각한 행동을 해대면서도 노조는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반대세력이라고 주장한다면, 과연 체제위협이라는 말이 지닌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기나 한지 되묻고 싶을 뿐이다.

이종래 / 한국노동운동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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