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6일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에서 전시작전통제권(약칭 전작권) 환수시기를 2015년 12월로 3년 7개월 연기하기로 한미 정상이 합의했다. 그러나 ‘합의’라기보다는 한국이 일방적으로 부탁하고 미국이 이를 수락하는 형태로 되었다. 굴욕적인 과정을 확인해준 당사자는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은 “한국의 요청을 수락해 준 오바마 대통령에게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피력했다. 이렇게 이명박 정권은 군사주권의 핵심인 전작권 환수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침으로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박정희 정권 시절로 되돌려놓고 만 것이다.

전작권은 군사주권의 핵심으로 외국 군대가 60년 동안이나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국가적 수치다. 2012년 전작권 환수시기도 많이 늦었지만 환수 내용도 빈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그동안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이 빈껍데기에 불과한 전작권 환수마저 연기한 것은 민족자주의식의 부재를 드러낸 것이다. 세계 어떤 나라도 자국 군대의 통수권을 60년 이상 타국에 위임한 사례가 없다. 오직 이라크와 같은 피점령국만이 작전통제권을 미국에게 내주고 있을 뿐이다.

전작권 환수는 60년간 상실된 군사주권 회복에 관한 문제다. 또 전작권 환수는 작전통제권 상실로 인한 한국군의 사대 매국성, 기형성, 무능과 비효율성을 극복하는 국방개혁의 출발점이다. 또한 전작권 환수는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와 평화체제 구축 및 통일과정을 우리 국익에 맞게 이끌어나가기 위한 기본 전제다.

이처럼 중요한 군사 주권의 핵심 사안을 이전 정권의 합의도 무시하고 최소한의 절차마저 생략한 채 일방적으로 연기 결정한 이명박 정권의 배짱은 가히 금메달감이다. 미국이 못이기는 체하며 전작권 환수연기를 해주었으니 우리 국민이 감당해야 할 반대급부가 만만치 않게 되었다. 아프간 증파, 미국 주도의 지역 MD(미사일 방어) 참가, 평택 미군기지 이전비용 한국 부담 증액, FTA와의 빅딜설 의혹 등 우리 국민이 짊어져야 할 ‘동맹유지 비용’이 엄청 늘어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결정으로 군사주권 회복에 대한 국민적 여망과 자존심을 짓뭉개고, 군 통수권자로서의 기본적인 자격을 상실한 것은 물론 스스로 국민적 의혹과 불신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이쯤 되면 이판사판 막가자는 것 아닌가. 이제 이명박 정권이 국가주권 회복과 민족의 운명을 책임질 의지도 능력도 없음이 명확히 입증된 마당에 전작권 환수 문제는 우리 국민들이 직접 나서서 쟁취해야 할 역사적 과제가 되었다.
이제 우리 민중들이 나서서 작전통제권을 온전히 환수하여 군사주권을 회복하고 평화협정 체결의 당사자로 당당히 나서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투쟁에 나서야 한다.

보수진영은 전작권 환수 결정이 노무현 정부의 ‘반미자주’란 좌파이념과 민족주의에 기댄 인기영합주의에서 비롯됐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작전통제권 환수문제를 처음 거론한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이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특수부대의 청와대 습격사건과, 같은 해 1월23일 북한의 미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의 대처를 놓고 당시 한미정부는 충돌했다. 미국이 청와대 습격엔 아무 대응도 않다가 푸에블로호 사건이 터지자 전쟁 직전단계인 데프콘2를 발령한 탓이다. 이에 격분한 박 대통령은 미국에 작전통제권 환수를 요구했다.

작전통제권 환수는 1987년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의 대선 공약으로 다시 공식 제기됐다. 이후 한미 군사당국간 작전통제권 환수 논의를 거쳐 1994년 12월 1일 김영삼 정부 때 평시작전통제권이 환수됐다. 심지어 1995년도에 국방부는 2000년 전후해서 전작권 환수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보수진영에서는 전작권이 전환되면 주한미군이 감축, 철수하거나 유사시 미군증원전력 지원이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주한미군 주둔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를 두고 있으므로 전작권 환수와 직접 관계가 없다. 전작권 환수 시기가 다소 늦춰지더라도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서 주한미군의 병력감축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다수 군사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국방비와 세계 6위권의 병력을 갖춘 군사강국이다. 세계적인 군사전문가인 미국의 제임스 더니건은 1995년 기준으로 북한의 전투력이 한국의 약 40% 수준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실제 지난해 8월 국가정보원은 주한미군이나 전시증원 병력을 배제해도 한국군이 북한군보다 우세하다는 남북한 군사력 비교 연구 결과를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말이 있다. 언제까지 미국에게 우리 민족의 생사여탈권을 맡기고 살아야 하는가. 현대 정치학에서는 한 나라의 자주권은 군사주권의 행사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는 전작권 하나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열등한 민족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온전히 전작권 환수를 실현하고 당당한 민족으로 살아갈 것인가 역사적 기로에 서 있다.

김종일 /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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