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일입니다. 키가 작고 왜소해 입학할 때부터 마음 쓰이던 영희에게 남학생들이 짓궂게 장난을 합니다. 남을 괴롭히는 일만은 우리 반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하며 인권 교육을 시켜도 장난은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여학생들도 모둠활동에 껴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이유도 없이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고 당하는 영희는 얼마나 속상할까 안타까워 학급회의에 부쳤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알려주는 내용이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한 마디로 아이들의 질투심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쟤만 예뻐해”

초등학교부터 남달리 작아 선생님들께서 여러모로 편의를 봐준 모양입니다. 근데 사람 맘은 이상하게도 공평하지 못하게 특권을 주는 선생님을 미워하기보다 특혜 받는 아이를 미워하는 경향이 생깁니다. 자기가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게 저 아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아니면 자기가 못 받는 사랑을 받고 있는 아이를 시기해서 그런 걸까요? 중학교에 와서도 영희는 엄격한 생활지도부에서조차 열외가 되어 다른 아이들이 지각 때문에 혼날 때도 혼자 당당히 들어가고, 수업 시간에 똑같이 준비물을 안 가져와도 자기네와 달리 말로 타이르곤 하니 미운 마음을 괴롭히는 장난으로 풀어낸 것입니다. 때론 영희가 그런 특권을 이용해 늦게 와도 숙제를 안 해와도 모둠의 준비물을 안 가져와도 태연하게 지내는 부작용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약한 친구를 배려해야 한다고 어른들은 가르치고 아이들이 그렇게 선한 마음으로 천사같이 행동해주기 바라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른들의 섣부른 기대일 뿐입니다. 어린 아이가 동생이 생기면 자기 손톱을 물어뜯고 오줌을 싸는 등 퇴행 행동을 하며 짓궂은 장난으로 동생을 괴롭히는 것처럼, 중학교 아이들도 질투하고 경쟁하고 채워지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를 표현합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이해하나 그렇다고 괴롭히는 장난을 그저 넘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영희에게 그러면 되니. 선생님이 몇 번이나 얘기했니. 그렇게 하지 말라고. 절대 괴롭히지마”라고 무조건 혼을 내고 무엇이 바른 행동인지 가르치려하면 아이들의 적개심만 더 커집니다.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친구에게 친절해야하는 것을. 그러나 그렇게 못하는 건 아이들의 감정 때문입니다. 자기도 특별한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자기들도 특별한 사랑을 받고 싶어 그런 건데 그 마음은 몰라주고 도리어 벌을 받게 되니 자기들이 혼이 난 게 또 영희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너희들 영희가 선생님들께 특별히 사랑받는다고 생각해 화가 났구나”“그런데 화가 나면 선생님에게 와서 말해주렴.”
질투로 어긋난 행동을 할 때에는 이렇게 감정을 인정하는 말이 벌을 주거나 창피를 주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질투심과 직접 대면할 기회를 줍니다.
“영희가 밉지. 너무 화가 나서 괴롭혔지(의자에 물을 붓고, 뒤에 앉아 옷에 낙서하고 바보라는 종이 붙이고..). 하지만 나는 너희들이 친구를 괴롭히는 것을 절대 허락할 수 없어. 하지만 영희가 미워지면 선생님한테 와서 말해.”

그리고 영희가 받는 특혜를 질투하는 마음을 줄이기 위해 다른 아이들도 내게는 다 특별한 아이들이고 사랑한다고 느끼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또한 영희도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것도 배워갈 수 있도록 스스로 행동의 약속도 정했습니다.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이 그 특별함 때문에 피치 못하게 누리는 특권(?)을 기꺼이 허용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아이들이 되도록 수업이나 학급 행사에서 직간접으로 경험하게 했습니다. 지금 영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부모님을 도와 열심히 삽니다. 아이들은 그때 선생님이 영희를 감싸고 자기들을 혼냈다면 영희가 더 미웠을 텐데 자기들을 이해해주어서 더 이상 그런 행동을 할 수 없었다고들 합니다.

질투심 억누르지 말고 이해해줘야

가정에서도 이런 질투심으로 형제간에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여자 아이들은 집에서 자기는 학원에 갔다가 늦게 와도 밥 챙겨먹어라 하던 엄마가 오빠나 남동생은 늘 남자라고 밥도 채려주고, 심지어는 자기에게 오빠 밥을 채려주라고 한다고 툴툴거립니다. 남자아이들은 귀가 시간이 늦거나 밤늦게 와도 덜 혼납니다. 그래서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이 집에서 특별대우 받는다고 생각해 질투를 합니다. 즉 성별의 차이에서도 질투를 느끼는 것입다. 또 나이로도 질투를 느끼는데 세뱃돈도 고등학교 다닌다고 더 주고 옷도 동생은 물려 입고 위의 형제만 새 옷을 사준다고 툴툴거립니다. 또 능력의 차이로도 질투합니다. 특히 부모가 어느 한 아이의 능력을 추켜세우면 질투는 더 커져서 미워하는 마음이 극에 달하는 것 같습니다.

질투를 억누르면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여러 가지 증상이나 못된 행동으로 위장하여 표현합니다. 부모는 아이들의 감정을 증상이 아니라 말로 표현하게 해서 최소화시켜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맏이는 더 괴로울 것입니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에 설명하고 이해를 시켰어도 동생이 태어나면 질투심부터 일고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됩니다. 아이에게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아이의 사랑을 빼앗길까 봐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진정한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동생에게 향한 분노와 적대감을 드러내면 부모에게 꾸중을 듣게 될까봐 질투심을 억누르면서 무조건 동생을 사랑하고 양보하는 비현실적 기대를 하기보다는 걱정거리를 스스럼없이 털어놓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 책의 주인공 단비의 동생이 태어났습니다. 동생을 돌보느라 엄마는 너무 바쁩니다. 어느날 단비가 엄마에게 얘기합니다. "엄마, 단비를 조금만 안아주세요"라고.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맏이들은 동생이 태어나면서 사랑을 빼앗겼다고 질투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며 사랑과 관심을 쏟아줘야 합니다.

“엄마, 아빠는 널 무척 사랑해. 동생이 태어나면 넌 혼자가 아니라서 행복할 거야. 너도 동생을 사랑하게 될 거야.” 이처럼 아이의 감정을 무시한 설득보다는 “동생이 있으면 어떨 때는 재미있겠지만 어떨 때는 귀찮을 거야. 엄마는 동생을 씻기고 젖 먹이고 보살피는 시간이 많아질 거야. 그럼 너는 외톨이가 된 느낌이 들지 몰라. 그래서 동생이 미워지고 엄마아빠가 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슬픈 생각이 들지도 몰라. 그러면 꼭 엄마한테 와서 말해. 그럼 엄마가 동생을 돌보는 동안 주지 못한 사랑을 줄 테니까.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엄마 아빠는 언제까지나 널 사랑해!”
이런 말은 동생을 미워하는 죄책감을 씻어주고 두려움보다 친밀감이 생기게 해주며 부모와의 의사소통을 도와줄 것입니다.

이렇듯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 마음 속의 질투를 부정하기 보다는 당연하게 여겨 감정을 최소화하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독차지하던 부모의 사랑을 잃은 느낌이 해소되지 못한 경쟁의 쓰라림은 어른이 되어서도 나타나 해소되지 못한 질투심 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형제관계를 잃어버릴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질투하는 아이, 부모 태도에 달렸다

질투는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싶은 어린아이의 욕망에서 발생하는데 이것은 너무나 독점욕이 강해서 그 어떤 경쟁자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런 경쟁은 질투에 대한 부모의 태도에 따라 겉으로 드러날 수 도 있고 은폐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부모들은 형제간에 경쟁하는 것을 보면 크게 화를 내거나 그런 기미가 보이기만 해도 벌을 줍니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모두 다 공평하게 사랑을 받고 있으니 질투할 까닭이 없다는 생각을 심어주려고 안간힘을 다합니다. 선물, 칭찬, 노는 시간, 음식 등을 저울로 무게를 달 듯 달아 모든 아이들에게 공평하고 공정하게 나누어줍니다.

그러나 두 가지 방법 모두 질투심을 해소시켜주지는 못 합니다. 벌과 상을 공평하게 나누어준다고 해서 질투심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질투는 절대로 완벽하게 막을 수가 없습니다. 우선 아이들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나이에 따라 특권과 책임을 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나이가 많은 아이에게 밖에 나가 놀 시간을 많이 주는 특권을 공공연하게 허락하면 다른 아이들도 그 나이가 되면 자기도 그런 특권을 누릴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질투심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아이에게 다른 형제를 위해서 장난감, 옷, 음식 등을 양보하라고 요구해 질투심을 자극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은 아이가 물건뿐만 아니라 사랑까지도 동생에게 빼앗겼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므로 아이에게 그런 요구를 할 때는 ‘나-전달법’이나 공감하는 말로 애정과 칭찬의 보상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주 어린 아이들은 노골적인 질투심으로 동생을 버리라고 말하거나 무자비하게 괴롭히기도 하는데, 물리적이든 언어적이든 동생을 괴롭히는 행위는 제지해야 합니다. 괴롭히는 아이는 죄책감을 느끼고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는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피해가 생길 수 있으므로, 어린 아이가 동생을 괴롭히는 장면을 보았을 때 즉시 아이가 그렇게 행동하게 된 동기를 엄마가 솔직하게 말로 표현해줍니다.

아이에게 인형이나 종이 색연필 등을 주어 인형에게 말하거나 종이를 찢거나 낙서를 하면서 분노를 표현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때 아이의 감정 표현이 지나치다고 놀라거나 분노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감정은 정직한 것이며 오히려 그런 공격을 직접적으로 동생에게 하거나 자기 자신의 신체의 이상 증상으로 분노를 표출하기보다 상징적으로 분노를 표출하게 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부모는 단지 아이의 마음에 공감을 간단하게 표현해주면 됩니다.

공평한 사랑 NO, 특별한 사랑 해주기

마지막으로 모든 아이들에게 무게를 달아 사랑을 공평하게 나누어 주려는 시도는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더 강하게 욕구 표현을 하는 아이가 두려워 더 큰 사과를 주거나, 아이가 생각할 때 똑같이 놀아주는 시간이 아니라면 당장 불만을 터뜨릴 것이기에 가정생활은 늘 긴장되고 부담스러워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부모가 사랑에 차이를 두지 않으려고 신경 쓸수록 아이들은 혹시 사랑을 공평하지 않게 나눠주는 경우는 없나하고 더욱 경계하게 됩니다. 그래서 감정이든 물질이든 그 무게를 달아서 주려고 애쓰다 보면 지치고 힘이 들기에 화가 날 수 있습니다.

▲ 한 아이와 함께 있을 때는 그 시간만큼은 자기가 유일한 사랑이라는 기분이 들 정도로 해주어야 합니다. 사랑을 독차지 하고 싶다는 마음을 부모가 이해하고 인정해주면 아이는 안심하고 위안을 얻을 것입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공평하지 못해”라는 말에 변명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거나, 본래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고 주장하거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똑같은 무게로 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기도 특별한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고 싶을 뿐입니다. 공평한 사랑보다는 사랑의 질을 중시해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이 공평하니 아니니 하는 끝없는 말싸움에 끌려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에게 공평한 사랑을 주려고 애쓰지 말고 아이마다 그와 부모의 관계가 특별하다는 점을 각인시켜주는 것입니다.

한 아이와 함께 있을 때는 그 시간만큼은 자기가 유일한 사랑이라는 기분이 들 정도로 해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다른 형제와 친밀해지라고 의도적으로 다른 형제 이야기를 하거나 다른 형제를 배려하는 마음을 기르려고 선물도 사지 말고 그 순간만큼은 아이에게 사랑을 충분히 느끼도록 모든 관심을 쏟아주는 것입니다. 사랑을 독차지 하고 싶다는 마음을 부모가 이해하고 인정해주면 아이는 안심하고 위안을 얻을 것입니다. 다른 형제를 질투하는 마음과 행동만 보고 행여 나쁜(?)아이가 될까 봐 걱정하고 속상해하기 보다는 동생을 질투하는 것은 아이들이 부모의 특별한 사랑을 갈구한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하고 표현한다면 부모와의 관계가 좋아질 뿐만 아니라 질투심으로 형제간에 서로 미워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때때로 어머니는 한숨 지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 아이 때문에 내가 미쳐버릴 것만 같아.”
하지만 밤이 되어 두 살짜리 꼬마가 잠들고 나면 어머니는 살며시 아기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 아기가 잠든 침대 머리맡으로 다가갑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노래를 부릅니다.
너를 사랑해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어떤 일이 닥쳐도
내가 살아 있는 한
너는 늘 나의 귀여운 아기
로버트 먼치의 동화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Love You Forever)> 중에서
 

이명남 / 서울 영림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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