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솔직히 말해서 이번 사고가 나서야 내가 일하는 작업공정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컨베이어 벨트 아래에서 장갑을 낀 채 헤라를 들고 긁어내는 청소작업을 하거나 기름을 주입할 때 빠르게 흘러가는 컨베이어 벨트에 손이 말려 들어갈 수도 있고…….”

노동자 신재성 씨는 “그동안 참 바보 같았다”라고 덧붙였다. 신재성 씨는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다.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인 마스타씨스템에서 노동자대표를 맡고 있다.

마스타씨스템 소속 50대 하청노동자가 1월 3일 현대자동차 1공장에서 산업재해 사고를 당했다. 신재성 조합원은 같은 시각 1공장 다른 공정에서 일하고 있었다. 신 대표는 사고가 났다는 말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협착사고였다. 금속 찌꺼기(스크랩)를 압축하는 베일러머신에 상반신이 끼었다. 사고당한 노동자는 병원 이송 중에 사망했다. 새해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서서히 망가지는 중이었다.

▲ 신재성 마스타씨스템 노동자대표는 이번 사고가 보전 하청노동자들이 그동안 얼마나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는지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김규백

업무지시를 받은 건 1월 3일 12시 40분쯤이었다. 마스타씨스템 관리자에게 전화가 왔다. 오후 2시쯤 현대차 중역이 시설을 방문한다고 했다. 그 전에 스크랩 청소를 서둘러 끝마치라는 지시였다. 해당 구역은 전날 이미 청소를 마친 상태였지만, 노동자들은 다시 작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작업을 시작한 지 20분 만에 사고가 발생했다.

신재성 대표는 경찰서까지 동행했다. 노동자대표로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청인 현대자동차와 업체 마스타씨스템 관계자들이 사고경위서를 작성하고 당일 근무 조장에게 서명을 요구했다.

사측이 작성한 사고경위서에 현대자동차 중역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다는 내용도, 그 때문에 사측 관리자가 급히 청소를 지시했다는 내용도 없었다. 그저 조장이 전체 업무를 지시, 감독했다고만 적혀 있었다.

조장이었던 노동자가 아무것도 모르고 서명했다면 취업규칙에 따라 억울하게 해고될 수 있었다. 원청인 현대자동차와 하청인 마스타씨스템이 작업자 개인 과실로 몰아가고 있었다. “원·하청 업체의 행태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죠. ‘현대자동차가 은폐하는구나’라고요.” 신재성 대표와 마스타씨스템 노동자들은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하청노동자, 노조를 만들다

2018년 창진에프티에서 마스타씨스템으로 소속 업체가 바뀌었다. 업체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었다. 공장 안에 있던 사무실이 공장 밖으로 나갔다. 관리자 수가 배로 늘었다. 출입증만 제시하면 되던 울산공장 출입 절차가 복잡해졌다. 원청 노동자와 같던 출근 시간도 달라졌다. 임금은 줄고 처우는 나빠졌다.

▲ 원청인 현대자동차도, 하청인 마스타씨스템도 당사자인 현장 노동자들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신재성 대표는 “현대차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다”라면서 “계속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규백

이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맡은 업무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른바 ‘진성도급화’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공정을 분리함으로써 불법파견 문제를 은폐하려는 조치였다. “어떻게든 다르게 보이려고 한 거죠.” 신재성 대표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달라진 점 하나하나가 탄압으로 느껴졌다. “도저히 못 참겠다. 이건 아니다. 그게 노동조합 가입의 계기가 된 거 같아요.”

금속노조 가입과 함께 투쟁을 시작했다. 같은 보전 하청업체인 성진의 노동자들과 함께 이중출입시스템인 ‘알밤’ 폐지를 걸고 보전 하청 조합원 공동투쟁에 나섰다. 사측은 경고장과 정직 처분으로 대응했다. 결국, 이중출입시스템은 지노위, 중노위를 거쳐 폐지했다. 첫 성과였다. 신재성 대표는 그때 “뭉치면 강하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고

“이번 사고는 2인 1조 작업 준수, 위험공정 설비 정지 후 작업 같은 원칙을 다 무시해서 일어난 겁니다.”

사고가 난 울산 1공장 프레스 공정은 무인 공정이다. 작동 시 굉음이 발생하기 때문에 2인 1조, 작업 전 설비 정지가 필수다. 작업 전에 제출해야 하는 안전작업허가서와 위험성 평가표에 명시돼 있다. 신재성 대표는 “평상시에 계속 가동 중인 상태에서 작업했다”라고 증언했다.

현대자동차의 해명에 따르면 사고가 난 작업장은 정상 출입할 경우 안전플러그에 의해 설비가 자동으로 중단된다고 한다. 신재성 대표는 “애초에 그런 정상 작업 요건을 갖출 수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안전작업허가서는 작업자가 직접 작성하는데, 이때 설비를 정지했다고 표기하지 않고 원청에 제출하면 반려 당해왔다고 한다. “하청 노동자인 우리 처지에서는 그런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2인 1조 작업원칙 역시 지키기 어려웠다. 업체가 공정마다 인원을 최소로 배정하니, 한 명이라도 빠지면 2인 1조 작업이 불가능했다. “원래 투입하는 인원이 네 명밖에 없으니까 네 명 안에서 어떻게든 조절을 하는 거죠. 누군가 휴무하면 작업 인원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거고…. 안전수칙을 지키지 못할 수밖에 없는 거죠.” 사고 이후 마스타씨스템 노동자들이 인원충원을 요구하는 이유다.

▲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원청과 하청 노동자들이 공장 안에서 공동 중식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신재성 대표 제공

“이번에 프레스에서 사고가 났지만, 컨베이어가 돌아가는 공정 어디서든 똑같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신재성 대표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하청노동자 현장 위험사례를 수집하면서 본인과 동료들이 얼마나 많은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 깨달았다고 한다.

베일러머신 청소 중 컨베이어 벨트에서 이탈한 스크랩이 안전모를 때리는 일은 일상다반사다. 라인 가동 중 컨베이어 벨트 체인의 이물질을 닦기 위해 붓이나 기름걸레를 직접 가져다 대기도 했다. 차 한 대가 지나가고 다음 차가 들어오기 전 90초 사이에 컨베이어 벨트 밑에서 위로 머리만 내밀고 일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보전 하청노동자는 일상업무에서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는데 업무 인수인계 과정은 일주일에 불과했다. 업무 매뉴얼이 없어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인지, 안 해도 되는 일인지 모르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했다고 한다. “그게 몸에 배어있었죠. 완전 위험의 외주화죠.”

변했다지만 변한 게 없다

“사고 이후 특별 안전교육을 한다길래 가보니 사고 당시 작업지시를 한 관리자가 교육하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어이가 없어서 ‘당신의 지시로 사망사고가 난 건데 어떻게 당신이 교육을 할 수 있느냐’라고 따졌죠.” 노동자들이 반박하자 사측은 부랴부랴 외부 인사를 불러와 교육했다.

사고 다음 날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열었다. 노조 현대자동차지부와 사측은 사고목격자 트라우마 치료와 위험공정 특별안전점검, 사내 도급업체 안전확보를 위한 개선 계획 수립을 포함한 몇몇 후속 조치에 합의했다.

신재성 대표는 “현장에서 보기에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라고 털어놨다. 2인 1조 작업투입을 위한 인력 충원 요구에 업체는 묵묵부답이다. 설비를 개선했다지만 여전히 하청노동자가 활용하기는 어렵다. 모든 설비를 개선한 것도 아니다. 설비 개선 진행이 공정마다 달라 여전히 공사 중인 곳도 있다.

마스타씨스템이 작업중지 해제를 위해 작업 인원이 충분하다는 점을 소명하려고 제출한 자료에 퇴직자, 횡령으로 해고당한 사람까지 집어넣었다. 명백한 허위자료인데 고용노동부는 이 자료를 인정했다. 마스타씨스템 노동자들의 문제 제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동부는 1월 21일 현대자동차에 대한 부분작업중지를 해제했다.

신재성 대표는 “사고 이후 후속 조치를 논의하는 자리에 당사자인 마스타씨스템 노동자가 참가하지 못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현대자동차 공장 안에서 현대자동차의 설비를 마스타씨스템의 노동자들이 관리한다. 신재성 대표는 “현대자동차는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하청노동자와 직접 교섭해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원청 현대자동차는 하청업체의 일에 개입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면서 논의를 거부하고 있다. 마스타씨스템은 하청업체라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바쁜 원청과 하청업체 사이에서 노동자들은 오늘도 목숨을 걸고 일터로 향한다.

▲ 신재성 대표는 ▲설비 정지 후 작업원칙(예외허용 금지) ▲위험공정 2인 1조 작업 준수 ▲인원충원, 안전관리자 별도 배치 등 요구 쟁취를 위해 동료들을 믿고 함께 투쟁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김규백

더 큰 연대를 꿈꾼다

“조합원, 비조합원이 많이 모일 때는 마흔 명 가까이 모입니다. 회의하면 세 시간, 네 시간 합니다. 저녁 식사 시간인데도 배고프다는 말도 안 합니다.” 동료들에 관해 묻자 신재성 대표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렇게 하니까 더 가슴이 아파요.”

마스타씨스템 노동자들은 사고 이후 ▲설비 정지 후 작업원칙(예외허용 금지) ▲위험공정 2인 1조 작업 준수 ▲인원충원, 안전관리자 별도 배치 등을 요구하며 투쟁 중이다. 마스타씨스템 노동자들은 조합원과 비조합원 가리지 않고 함께 투쟁에 나섰다. 신재성 대표는 “동료들 모두 원·하청 업체에 대한 분노가 크다”라고 전했다.

노조 현대자동차지부는 사고 이후에 대자보를 통해 사측을 비판했다. 현대차지부 조합원들이 마스타씨스템 노동자들이 벌이는 중식 선전전에 연대하고 있다. 사고가 난 1공장뿐 아니라 2, 3, 5공장에서 매일 같이 원·하청 노동자 연대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신재성 대표는 “동료들과 도와주는 분들을 생각하면 더 높은 수준의 투쟁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아 아쉽다”라면서 “결국 원청인 현대차가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지 않으면 사고는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신재성 대표에게 인터뷰를 마치며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묻자 대뜸 “부끄럽다”라고 말했다. “저는 사실 활동하는 동지들에 비하면 너무나…. 다른 사업장에 연대해야 하는데, 저 역시 그런 점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라면서 “바라는 건 우리가 노동조합으로서 모이는 노동자들인 만큼 더 단단하게 연대해 산적한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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