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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리라. 사번 23733 용접사 김진숙, 동지들 곁으로”[사람과 현장] 금속 여성노동자와 만난 김진숙 조합원 (2편)
박재영 편집국장, 사진=변백선, 편집=신동준  |  edit@ilabo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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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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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이어옴>

방은 사방이 온통 빨간색이었다. 군복으로 갈아입으라고 했다. 수사관들은 시신 밑에 까는 널빤지라며 김진숙 대의원을 칠성판에 묶었다. 몹시 맞았다. 거꾸로 매달리니 눈가로 피가 흘러내렸다. 수사관들은 김진숙 대의원에게 사표를 쓰라고 강요했다. 김 대의원은 “나를 대의원으로 뽑아준 사람들에게 내가 사표 써도 좋다는 서명을 받아와라. 그러면 사표를 쓰겠다”라며 버텼다. 그렇게 대공분실에 세 번 끌려갔다. 그때가 스물여섯 살이었다.

다행히 김 대의원은 대공분실에서 살아나왔다. 나와서 보니 서울대생 박종철은 죽어서 나왔다. 김진숙은 대공분실에 끌려갔다 온 일을 주변에 말하지 못했다. “죽은 사람도 있는데 내가 매 맞은 게 뭐라고.” 그 후 6월 항쟁이 일어났다.

대공분실, 고문과 해고

6월 항쟁 후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났다. 당시 김진숙 대의원은 부산대에서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 있었다. 7월 25일 새벽 대한조선공사 조선소 안으로 유인물을 들여왔다. 보너스 안 나오면 일하지 말자, 식당을 지어달라는 내용이었다. 해고자들과 함께 공장에 가보니 노동자들이 공장 안 도로에서 집회하고 있었다.

조선소 노동자들은 노동가요가 없어 멸공의 횃불, 팔도 사나이, 진짜 사나이는 물론 군대에서 배운 ‘인천 성냥공장 아가씨’라는 노래까지 불렀다. 이 노래는 여성을 심하게 모욕하는 외설적인 노래였다. 하지만 그때는 다들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그나마 있던 노동자의 노래는 ‘늙은 군인의 노래’를 개사한 ‘늙은 노동자의 노래’뿐이었다.

   
▲ 김진숙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이 금속노조 여성조합원들을 만나 노동자로 한평생 살아온 얘기를 나누고 있다. 부산=변백선

3천 명이 파업했다. 어용노조는 도망가고 없었다. 노동자들은 공장 건너편에 있던 어용노조 사무실로 향했다. 그야말로 노조 사무실을 가루로 만들었다. 다시 길 건너 공장으로 돌아오는데 누군가 차도를 막아야 신문에 난다고 하자, 3천 명이 도로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도로 점거 농성은 그렇게 시작됐다.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고, 노래 한 곡 제대로 몰라도 신나게 집회했다. 집회 신고도 쟁의 발생 신고도 없었다. 그냥 기계 끄고 나가면 집회고 파업이었다.

 

박창수 위원장의 죽음

1990년 박창수 위원장이 한진중공업 노조 위원장에 당선됐다. 첫 민주노조였다. 박창수 위원장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망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네 명의 후보 중 93%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김진숙 대의원은 위원장 선거 일주일을 앞두고 구속된 상황이었다. 노태우 정권은 한진중공업 해고자인 김진숙이 3년 전 대한조선공사 파업 집회에 참가해 해고자 복직의 정당성을 말한 일을 문제 삼아 3자 개입 금지법 위반이라며 구속했다.

노조 선거가 끝난 날 박창수 위원장이 면회 마감 시간이 다 되어 구치소로 면회를 왔다. 박창수 위원장이 김진숙에게 말했다. “김 동지 이제 고생 끝났습니다.”

김진숙 조합원은 “그때만 해도 순진했어요. 우리 손으로 위원장만 뽑으면 다 되는 줄 알았으니까요. 임금도 우리 손으로 올리고 작업복도 춘하추동으로 갈아입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덜 익은 밀가루빵이 아니라 밥을 먹을 수 있을 줄 알았지 뭡니까”라고 회상했다.

해고자 김진숙이 구치소에서 나오기도 전에 박창수 위원장이 구속됐다. 3자 개입 금지법 위반이었다. 대우조선 파업에 연대하기 위해 회의를 했다는 이유다.

박창수 위원장은 구치소 안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머리를 다쳤고, 안양병원에 입원했다. 5월 6일 새벽 교도관과 경찰관이 지키고 있는 병실에서 누군가가 박 위원장을 데리고 나갔다. 박창수 위원장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링거를 꽂은 채 병원 옥상에서 투신했다고 한다. 부검에 동의한 날 백골단이 대형 해머로 영안실 벽을 뚫고 들어와 유가족을 폭행하고 시신을 탈취해 갔다. 유족과 동료들은 뉴스를 통해 노동운동에 염증을 느낀 자살이라는 부검 결과를 들어야 했다.

“우리는 그렇게 박창수 위원장을 잃었습니다. 어제저녁까지 같이 밥을 먹은 사람을 땅에 묻으며 민주노조 운동은 여기까지 온 겁니다.” 김진숙 조합원의 목소리가 먹먹해졌다.

   
▲ 김진숙 지도위원은 “자본가들 말 한마디에 수천 명의 노동자 생존권이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지금 세상에서 여성 노동자는 가장 먼저 짤립니다. 하지만 남성들보다 원칙적인 여성조합원들이 세상을 바꾸는 노동운동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힘들지만 힘내고, 끝까지 함께 갑시다”라며 금속 여성노동자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마쳤다. 부산=변백선

김주익 지회장의 죽음


2003년 한진중공업은 필리핀 수비크에 영도조선소 규모의 10배가 넘는 조선소를 지었다. 노동자도 관리자도 모두 비정규직이었다. 임금은 영도조선소의 1/10이었다. 한진중공업은 영도조선소 노동자 650명을 해고하고 138명에게 교육 발령을 냈다. 지회가 반대하며 투쟁을 벌이자 7억 4천만 원의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자행했다. 지회 간부들의 임금과 조합비도 가압류됐고, 일곱 명은 집까지 압류당했다.

한진중공업은 2002년 239억 원의 흑자를 냈다. 조남호 회장 일가는 배당금 78억 원을 받았다. 사측은 2002년 임단협에서 임금 동결을 요구했다. 21년 동안 일한 김주익 지회장조차 기본급이 105만 원에 불과했다.

김주익 지회장은 2003년 6월 11일 21시 50분 컴컴한 어둠 속에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김주익 지회장은 129일 동안 싸웠다. 지회도 7월 22일 무기한 총파업 들어가며 투쟁을 뒷받침했다. 사측의 악랄한 탄압에 파업 대오는 흩어져 갔다. 10월 17일 김주익 지회장은 35m 크레인에서 목을 맸다.

“크레인 위에 올라가 보니 김주익 지회장이 유서를 세 번 썼더라고요. 유서마다 날짜가 달랐습니다. 얼마나 살고 싶었겠습니까.”

김주익 지회장 죽음의 충격을 견디지 못한 곽재규 열사가 10월 30일 4독 바닥에 투신했다. 김주익 지회장이 목을 맨 85호 크레인 바로 밑이었다.

김진숙과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의 복직을 희망한다

김주익 지회장의 죽음으로 한진중공업은 지회와 고용안정을 약속했지만, 2011년 다시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김주익 지회장이 올랐던 85호 크레인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올라갔다.

“조합원들을 지키겠다는 20년 지기 동지를 잃었는데, 저는 무엇을 해야 했겠습니까. 김주익 지회장이 목을 맸던 난간을 지나 김주익 지회장의 시신이 누워있던 공간에서 309일 동안 버텼습니다. 그런데 한진중공업은 다시 매각의 위협 앞에 놓여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자본가들 말 한마디에 수천 명의 노동자 생존권이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지금 세상에서 여성 노동자는 가장 먼저 짤립니다. 하지만 남성들보다 원칙적인 여성조합원들이 세상을 바꾸는 노동운동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힘들지만 힘내고, 끝까지 함께 갑시다”라며 금속 여성노동자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마쳤다.

오는 12월 31일 정년을 맞는 김진숙 지도위원은 매일 아침 영도조선소 앞에 선다. 손에 든 팻말에 박창수 위원장의 사진과 함께 ‘같이 정년퇴직하고 싶은 내 동기 박창수’라고 쓰여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은 단지 35년 해고 노동자, 사번 23733 김진숙 용접사의 복직만이 아닐 것이다. 박창수의 복직이고 김주익, 곽재규의 복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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