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18일. 대구에서 노조 탈퇴 공작에 이용당한 한 노동자가 분신했다. ESC코리아 노동자 박해덕, 39세. 그에게 10살 아들과 6살 딸이 있었다.

2006년 12월 ESC코리아 노동자들은 회사 임원들의 비리 사건이 터지자 투명 경영을 요구하며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회사는 현장 관리자인 직·반장을 앞세워 노조 탈퇴를 강요했다. 상당수 조합원이 노조를 탈퇴했다.

회사는 한국노총 소속인 노조를 인정하고 화해 분위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노조는 박해덕 씨를 징계하라고 요구했다. 회사는 노조파괴에 앞세웠던 박해덕 씨를 버렸다. 박해덕 씨는 몸에 아세톤을 뿌리고 불을 붙였다. 박해덕 씨는 분신 닷새째인 5월 23일 동료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으로 ESC코리아 대표이사는 구속됐다. 부사장이던 주삼탁은 공석이 된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현재 AVO카본코리아 대표이사다.

두 번의 구조조정과 단협 개악 … “금속노조로 가자”

AVO카본그룹이 2009년 ESC코리아를 인수해 AVO카본코리아로 이름을 바꿨다. 2008년과 2009년 두 번의 구조조정을 겪으며 100여 명의 노동자가 회사를 떠났다. 노조 단체협약은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게 개악됐다. 한때 230여 명이 일하던 공장에서 지금 80여 명이 일한다.

▲ 회사는 당시 이명박 정권의 노조 혐오와 탄압 정책을 등에 업고 노조 무력화를 계속 시도했다. 작은 사업장 노조는 홀로 버티기가 힘들었다. 한국노총 조직관리의 한계를 절감한 노조는 2010년 7월 조직 형태 변경을 위한 임시 총회를 열었다. 조합원 92%의 찬성으로 금속노조 가입을 결정했다. AVO카본코리아지회 조합원과 간부들이 <금속노동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대구=변백선

회사는 당시 이명박 정권의 노조 혐오와 탄압 정책을 등에 업고 노조 무력화를 계속 시도했다. 작은 사업장 노조는 홀로 버티기가 힘들었다. 한국노총 조직관리의 한계를 절감한 노조는 2010년 7월 조직 형태 변경을 위한 임시 총회를 열었다. 조합원 92%의 찬성으로 금속노조 가입을 결정했다.

회사는 금속노조 대구지부 AVO카본코리아지회에 중앙교섭과 지부 집단교섭에 참여하겠다고 약속했다. 뒤로는 “금속노조를 포기하면 기업노조를 만들지 않겠다”라고 회유했다. 지회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회사는 부당노동행위 범죄자인 현장 관리자를 중심으로 기업노조를 만들었다. 2011년 7월 1일 복수노조 교섭 창구단일화제도 시행 이틀 뒤 기업노조가 들어섰다. AVO카본코리아는 대구 최초로 복수노조 사업장이 됐다. 회사는 사무직 노동자를 기업노조에 가입시켰다. 2013년 3월 다수 노조가 돼 교섭권을 확보한 기업노조는 28일 만에 단체협약 전면 개악에 합의했다.

노동권 없는 노조, 소수노조

단협 개악으로 지회 활동이 어려워졌다. 회사와 기업노조는 단협에 있던 중앙교섭 참가 약속과 전임자 인정, 지회 활동 시간을 삭제했다. 기업노조는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제외하기로 사측과 합의했다. 기업노조 남성 조합원은 대부분 승진했다. 현장 관리자 17명 가운데 14명이 기업노조 조합원이었다. 입사 연도가 비슷해도 기업노조 조합원은 임금을 더 받았다.

회사는 지회를 상대로 거침없이 노조탄압을 자행했다. 회사는 기업노조 조합원이 원하는 부서에 배치했지만, 금속노조 조합원은 일방적으로 전환 배치했다.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을 요구하며 주삼탁 대표이사 집 근처에서 항의 시위를 벌인 조합원들은 모두 징계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매년 해온 노조 행사에 조퇴하고 참여했다는 이유로 전 조합원이 징계를 받은 사례가 있다. 단협 개악에 항의하며 지회가 천막농성을 벌이자 회사는 업무방해와 건조물 침입으로 고소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징계위원회 도중에 주삼탁 대표이사가 징계 사유 상황을 재현한다며 지회 간부의 멱살을 잡아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히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 박주현 AVO카본코리아지회장은 “소수노조는 버티지 못하면 무너진다는 절박함을 안고 투쟁하고 있다. 복수노조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 폐기를 촉구하는 금속노조의 목소리는 소수노조의 희망이다”라며 강한 목소리로 ‘금속노조 전체의 총력투쟁’을 강조했다. 대구=변백선

지회는 소수노조지만 민주노조라는 자부심으로 끊임없이 투쟁했다. 지회는 금속노조 와해 공작을 폭로하고 기업노조의 무책임한 교섭을 비판했다. 교섭권도 없는 소수노조지만 회사와 어용노조를 물고 늘어지며 7년 동안 싸웠다.

기업노조는 2019년 사측 임단협 제시안을 무조건 수용하는 잠정합의안을 찬반투표에 붙였다. 어용노조 안에서도 두 번이나 부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회의 끊임없는 투쟁과 교육, 설득에 기업노조의 무책임한 교섭행태가 더해져 기업노조 조합원 13명이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금속노조 38명, 기업노조 24명. 2020년 1월 10일 AVO카본코리아지회는 8년 만에 다수 노조가 돼 교섭권을 획득했다.

주삼탁은 노조가 싫었다. 주삼탁은 ‘밥 공양’을 받았다. 총무과 여성 직원들은 무거운 사기그릇에 담긴 식사를 1층 식당에서 3층까지 계단을 통해 날라야 했다. 회사 주차장은 대표이사와 허락받은 한 두 명만 주차할 수 있었다. 노동자들은 공장 밖에 주차해야 했다. 주삼탁은 지난 7월 24일 지회가 ‘밥 공양 갑질’을 폭로하자 식사 배달을 중단시켰다.

주삼탁은 사장의 권위를 침해하는 민주노조를 참을 수 없었다. 노조 와해에 이용당한 노동자가 억울함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와중에 차지한 대표이사 자리였다. 그러나 어용노조는 자신의 갑질에 도움이 됐다. 어용노조의 동조 아래 합법으로 임금을 깎고 해고하고 마음대로 갑질을 할 수 있었다.

대표이사가 직접 건넨 정리해고통지서

다수 노조가 된 지회는 지난 1년 동안 기업노조가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창구 단일화 절차를 밟아 교섭을 요구했다. 주삼탁 대표이사는 당황했다. 회사는 알아보겠다는 대답만 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회사는 지난 2월 28일 느닷없이 희망퇴직을 공고했다. 지회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정리해고 대상자 선정기준을 발표하더니 정리해고 대상자 13명을 일방 발표했다.

▲ 신근창 AVO카본코리아지회 부지회장이 인터뷰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대구=변백선

박주현 지회장과 신창근 부지회장, 함형국 조직부장 등 지회 간부와 조합원, 최근 기업노조에서 금속노조로 가입한 조합원 등 모두 금속노조 조합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8월 1일 자로 최종 해고됐다. 누가 봐도 명백한 표적 해고다. 정리해고 대상에 지난해 가을 폭발사고로 화상을 입고 겨우 산재처리를 받은 조합원도 포함됐다. 산재로 인정 받았지만, 해당 조합원은 회사와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 중이었다.

지난 6월 23일 주삼탁이 지회 사무실에 와서 정리해고 예고 통보서를 건넸다. 지회는 대표이사가 직접 노조 분위기를 살펴보려고 했을 거로 추측한다. 자신이 고소한 명예훼손 사건을 경찰이 제대로 조사하는지 살펴보려고 경찰서 창문에서 기웃거리다 쫓겨난 일도 있다고 한다. 관계기관 공무원들도 주삼탁은 대화가 안 된다며 고개를 흔든다고 한다.

정리해고 사유는 전가의 보도인 ‘경영상 이유’였다. 주삼탁은 “내연기관 자동차 업계의 위기와 최저임금 상승”으로 경영상 어려움에 부닥쳤다고 주장했다. 코로나 19로 경제가 나아질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고도 했다.

지회는 강하게 반박했다. 회사는 최근 5년 동안 순이익을 냈다. 특히 최근 3년은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이 16~17%로 자동차부품업계에서 높은 이익률을 내고 있다. 올해 5월 기준 기업평가등급은 A-로 양호한 등급을 받았다. 한마디로 재무제표 등 공식 자료상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는 존재하지 않는다.

회사는 경영이 어렵다면서도 고용유지원금을 신청하지 않았다. 달성공단에 있는 회사 대부분이 지원금을 신청했다. AVO카본코리아는 5~6월 부분 휴업에도 불구하고 고용유지지원금조차 신청하지 않고, 해고 회피 노력을 다했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지회는 정리해고 대상자 선정기준이 금속노조를 죽이기 위한 기준이라며 의심한다. 대상자를 선정하고 사람에 맞춰 선정기준을 잡았다는 것이다. 근태기록은 2015년부터 적용하는 반면 징계 전력은 2010년부터 적용했다. 지회는 징계와 근태 시점을 2015년으로 맞추면, 지회 조합원들이 대거 징계당한 2014년 건이 빠지면서 지회 간부들은 낮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회사는 징계 가운데 ‘정직’은 건당 점수가 아니라 1일에 5점을 부과했다. 10일 이상 정직을 받았던 지회 간부들은 높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 회사는 기업노조보다 상대적으로 젊은 지회 조합원이 근속 기간과 부양가족 수에서 불리한 점수를 받도록 설계했다.

▲ 노조 AVO카본코리아지회는 복수노조와 노조파괴, 정리해고에 맞서 여섯 달째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정리해고로 인한 생계 문제 등으로 불안하지 않으냐고 묻자 해고 조합원 모두가 “소수노조로 7년 동안 사측과 기업노조와 싸우다 보니 맷집이 생겼다. 생활비를 아껴 버티며 끝까지 싸울 각오를 했다”라며 웃었다. 대구=변백선

지회가 노사협의회에서 경영 위기의 근거가 없다고 반박하자, 회계사 출신인 주삼탁은 “보이지 않는 마이너스 요소가 있다”라며 재무제표에 근거 없는 적자 요인을 추가했다. 지회는 주삼탁이 코로나 19로 인한 부분 물량 감소를 과장하며 이대로 가면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는 주장으로 거짓 위기를 부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소수노조는 버티지 못하면 무너진다는 절박함

해고 상태인 박주현 지회장은 “사측은 지회 간부를 포함해 금속노조 조합원을 해고하며 지회를 흔들고 있다. 금속노조를 현장에서 분리해 조합원들이 동요하게 만들어 어용노조에 다시 교섭권을 주려는 의도다”라고 꼬집었다.

박주현 지회장은 “해고 노동자 13명 모두 결의 상태가 높다. 누가 봐도 명백한 부당해고다. 복싱에 비교하면 12라운드 끝까지 뛸 각오를 했지만, 그렇다고 무한정 오래 끌 싸움이 아니다”라며 승리를 낙관했다.

박주현 지회장은 “소수노조는 버티지 못하면 무너진다는 절박함을 안고 투쟁하고 있다. 복수노조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 폐기를 촉구하는 금속노조의 목소리는 소수노조의 희망이다”라며 강한 목소리로 ‘금속노조 전체의 총력투쟁’을 강조했다.

노조 AVO카본코리아지회는 복수노조와 노조파괴, 정리해고에 맞서 여섯 달째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정리해고로 인한 생계 문제 등으로 불안하지 않으냐고 묻자 해고 조합원 모두가 “소수노조로 7년 동안 사측과 기업노조와 싸우다 보니 맷집이 생겼다. 생활비를 아껴 버티며 끝까지 싸울 각오를 했다”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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