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27도~30도를 웃도는 한여름 더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3일 경남 창원에서 시작한 ‘발레오자본 규탄, 공장정상화 및 노동자생존권 보장을 위한 1400리 전국 도보투쟁순회단(이하 도보순례단)’의 도보순례가 뜨거운 태양과 아스팔트의 열기 속에서 한창 진행 중이다. 7일 아침, 경주 발레오만도 천막농성장에서 시작한 5일차 도보순례를 함께했다.

경주 발레오만도, 노조 없애려는 악랄한 탄압

6일 저녁 경주에 도착한 도보순례단은 아침 7시 발레오만도 천막농성장에서 아침식사를 마쳤다. 북어국에 밥을 말아 간단한 밑반찬과 함께한 식사. “오늘 하루 걸으려면 아침 든든히 먹어야 합니다” 모두들 밥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5일차 도보순례 일정은 발레오만도지회의 출근투쟁을 함께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발레오만도 소속 ‘조합원을 위한 조합원모임’에서는 오전 9시 조직형태 변경을 위한 임시총회를 소집해놓은 상태. 도보순례단은 정문과 북문으로 흩어져 발레오만도지회, 경주지부 조합원들과 선전전을 진행했다.

▲ 원정투쟁 5일차, 경주지부 발레오만도지회 출투를 함께했다. 도보순례단

지회 정연재 지회장과 미복귀 조합원들이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공장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사측에서는 문을 걸어잠그고 출입을 막았다. 조합원들의 항의 끝에 8시 50분 경 사측은 출입을 허용하겠다고 밝혔지만, ‘회의가 끝나는 대로 퇴거할 것, 회의진행 중 소란을 피우는 등 출입허가 취지에 반한 행동을 하여 회사로부터 퇴거요구를 받는 경우 즉시 퇴거할 것’ 등의 내용이 담긴 서약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했다. 서명을 하지 않으면 총회 참석이 불가능하다는 것.

도보순례단은 경주에서도 악랄하게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는 발레오자본의 행태에 또 한 번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9시 30분, 아쉽지만 도보순례단은 행진 일정을 진행하기 위해 발레오만도 정문 앞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찌는 듯한 더위에 연일 40km 도보행진

운동화끈을 조여매고, 뭉친 근육의 통증을 줄여주는 크림도 바르고, 팔토시와 모자 등으로 뜨거운 햇빛을 가리기 위한 준비도 철저히 한다. 이 날 행진은 지회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충남지부 동희지회와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도 함께했다. 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발레오 자본을 규탄하는 구호로 5일차 도보순례를 힘차게 시작했다.

▲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 조합원들과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동희지회 조합원들이 모여 인사를 나누고 힘찬 구호로 행진을 시작했다. 도보순례단

여전히 뜨거운 햇빛과 더위에 행진 시작부터 쉽지가 않다. 하지만 여러 날 행진을 한 조합원들은 전날은 계란을 바닥을 깨뜨리면 계란프라이가 될 것 같았다며 “바람도 조금씩 부는 이런 날씨면 하루 종일도 걷겠다”고 말한다. 도보순례단은 하루 평균 40km를 행진한다. 한 시간에 약 4km씩 걸어 하루 10시간의 강행군을 진행하고 있다. 오늘도 다음 날 대구에 도착하기 위해 40km가 넘는 거리를 걸어야 하는 빡빡한 일정. 평소보다 조금 늦게 시작한 행진에 도보순례단은 발걸음을 재촉한다.

도보순례를 진행 중인 한 조합원은 올 해로 입사한 지 19년째다. 스무살부터 지금까지 청년시절을 모두 바쳐 일했던 일터였고, 그 사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을 낳았다. 그런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회사가 문을 닫으니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내 의지가 아닌데 회사 말대로 내쫓기는 것이 너무나 억울해 투쟁을 시작했다. 그렇게 8개월동안 이런 저런 투쟁들을 진행해왔고 이제는 1400리 도보행진까지 하게 됐다.

“처음에는 왜 도보행진을 하냐는 의견도 있었고 불만도 있었죠. 하지만 우리 조합원들은 하기로 결정되면 다들 열심히 하거든요. 그리고 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해보고 싶어요” 프랑스 원정투쟁과 전국 곳곳에서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지만 풀리지 않는 답답한 상황에서 도보행진은 조합원들의 절박한 선택이었다.

발에는 물집 잡히고 피부 화상까지

이번 도보순례가 결코 만만치 않다. 연일 뜨거운 햇빛 때문에 반바지를 입고 걸었던 조합원들은 다리에 화상을 입기도 하고, 발에 물집이 잡히는 것은 기본이다. 제대로 피로를 풀지 못한 채로 연일 행진을 하다보니 다리에 무리가 가서 압박붕대를 감은 조합원도 있다.

하루 종일 거리에 있다보니 갖가지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루는 저녁을 먹기 위해 야외에서 밥을 하는데 찌개도 다 끓이고 식사 준비를 마쳤는데 전력이 부족해 전기밥솥에 밥이 생쌀 그대로였던 것. 결국 찌개만으로 식사를 했다. 실내에 잘 곳을 마련하지 못한 날은 노숙도 다반사다. 지난 토요일에는 공원에 천막을 치고 노숙을 했는데 얇은 돗자리를 하나 깔고 자다보니 돌멩이에 등이 배기고 밤 새 모기밥이 되어야 했다.

▲ 무더운 날씨지만 '공장정상화, 노동자 생존권 사수'를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도보순례단

처음에는 걸을만하다고 생각했지만 행진 3시간째로 접어드니 조금씩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평일 낮이다보니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다. 2줄로 서서 길을 걸을 때는 좀 더 나은데 인도가 좁은 길에서 한 줄로 걸을 때는 서로 얘기를 하기도 어렵다보니 우리를 길거리로 내쫓은 발레오 자본도 생각하고, 왜 우리가 이렇게 걸어야 하는지, 오늘 도착지까지는 또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행진을 이어간다.

전국에서 같이 걷고 있는 동지들이 있다

도보순례단이 전국을 걷고 있는 지금, 도보순례에 함께하지 못한 조합원들도 쉬지 않고 투쟁을 진행 중이다. 천안역 천막 농성에 결합하기도 하고 경주 발레오만도 천막에도 결합하고 있다. 발레오 투자회사에서 1인시위도 하고 집회 신고를 하기 위해 창원, 부산, 대구에도 지회 조합원들이 연일 투쟁 중이다. 일부는 공장을 지키고 있고 발레오 본사와의 직접교섭 물꼬를 트기 위해 프랑스 원정투쟁도 한 달여에 걸쳐 진행하고 있다.

“이제는 눈빛만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어요. 조금은 화낼 수 있는 상황이어도 저 사람 성격이 어떤지 아니까 싸울 일도 없구요” 10여년을 넘게 일하면서도 많은 얘기를 나눠보지 못했던 동료들과도 8개월동안 숙식을 같이하고 전국 곳곳을 누비는 동안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고 서로를 이해하게 됐다. 조합원들과의 정 때문에라도 투쟁 못 그만둔다는 얘기에 진심이 묻어난다.

▲ 도보순례 6일차, 대구 평화발레오 앞에서 도보순례단과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 조합원들이 모여 서로를 격려하고있다. 도보순례단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조합원은 오히려 다른 동지들을 더 걱정했다. “우리야 우리 일 해결하려고 걷는 거지만 우리 때문에 같이 걷고 있는 다른 지회 동지들에게 더 많이 미안하고 고맙죠” 조합원들이 힘든 길을 참아내고 갈 수 있는 것은 동지들의 연대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도보순례에 함께한 지부 동희지회 조합원은 발레오공조 동지들을 보며 자신들의 부족함을 더 많이 느낀다고 전한다. “한 달에 한 번 공장 농성에도 결합하고 오늘도 함께 걷고 있지만 우리는 하루, 한 번 인건데 매일 같이 농성을 하고 15일을 행진해야하는 발레오공조 동지들이 힘들까 걱정이예요” 도보순례는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들을 향한 연대를 확인하고 더 끈끈하게 이어주는 장이 되어 있었다.

점심의 달콤한 휴식, 그리고 이어지는 오후 행진

행진을 시작한 지 3시간이 지나 점심 먹을 장소에 도착했다. 차를 타고 먼저 이동한 조합원들이 다른 도보순례단이 편히 밥을 먹을 수 있는 그늘을 찾아 자리를 펴고 반찬도 꺼내놨다. 오늘의 메뉴는 컵라면과 밥, 조합원의 집에서 챙겨온 김치다. 다들 배가 많이 고팠는지 서둘러 라면과 밥을 모두 깨끗이 비우고 자리에 눕는다. 오후 행진을 대비해 휴식을 취하는데 어느새 곳곳에서 잠이 든 조합원들이 보인다.

▲ 오전 3시간 행진 후에 달콤한 점심시간. 도보순례단은 그늘 밑에서 식사를 마치고 휴식을 취했다. 도보순례단

20분 동안의 휴식을 마치고 다시 행진 시작이다. 이번에는 경주시 건천읍 시골길을 걷는다. 경주를 걷다보니 길 중간에 문화재로 지정된 금척리고군분도 보인다. 점심 먹고나면 더 힘들어질 거라는 조합원들의 말처럼 주변의 멋진 풍경에도 다리는 점점 아파오고 조금씩 뒤쳐지는 조합원들도 생긴다.

오후 3시, 1시간여를 걸은 끝에 건천역에 도착했다. 도보순례단과 인사를 나누고 4시간의 짧은 행진을 마무리했다. 도보순례단은 17일 서울 여의도에 도착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여의도 63빌딩에 위치한 발레오 한국지사 앞에서 그간의 고통과 분노를 모두 쏟아낼 것이다. 마지막까지 아무런 사고 없이, 건강한 모습으로 서울에서 만나자는 인사를 전했다.


“몸도 힘들지만 더운 날 이렇게 해야만 하는 우리의 상황 때문에 마음이 더 아픕니다” 1400리, 걷는다고 감히 상상하기도 힘든 긴 거리를 찌는 듯한 더위와 싸워가며 물집이 터진 발로 걷고 있는 발레오공조코리아노동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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