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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살려는 드릴게. 간판만 달고 있어”재벌·경총, ILO 핵심협약 비준 빌미 노조 무장해제 입법 요구…경사노위, “노동기본권 타협 불가피”
박재영 편집국장, 편집=신동준  |  edit@ilabo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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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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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 ILO 핵심협약 비준을 볼모로 노동조합을 완전히 무력화하겠다는 의도를 서슴없이 드러냈다.

지난해 11월 30일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사관계·제도개선위원회에 일련의 입법 요구안을 제출했다. ILO 핵심협약(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단체교섭권 보호에 관한 협약 87호, 98호)을 비준하려면 사용자 요구를 받아들여 노동법을 바꿔야 한다며 노동기본권을 부정하는 입법을 요구했다. 경총의 입법 요구안은 헌법과 ILO 기준을 위반한다. 한마디로 ‘단결권을 위해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포기하라’라는 날강도 같은 요구다.

문재인 정부와 경사노위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재계와 타협은 불가피하다며 경총 요구안에 대해 노사정 합의를 추진하고 있다. 한술 더 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인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산별노조를 부정하며 노동자의 단결권을 더욱 후퇴시킨 내용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노동법률단체 소속 변호사와 노무사, 법학 교수들은 2월 27일부터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 사무실 앞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일주일 넘게 단식 중인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21세기 노동자들을 19세기 단결 금지, 노동조합 혐오 법률로 묶어 놓고 이걸 얼마만큼 풀어줄지 재벌과 협상해 오라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분노했다.

   
▲ 문재인 정부와 경사노위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재계와 타협은 불가피하다며 경총 요구안에 대해 노사정 합의를 추진하고 있다. 한술 더 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인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산별노조를 부정하며 노동자의 단결권을 더욱 후퇴시킨 내용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0일 국회에서 취임선서를 마치고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사진=신동준

경총이 제출한 입법 요구안은 ▲파업 시 대체 근로 허용 ▲사용자 부당노동행위 폐지(또는 처벌규정 삭제, 노조의 부당노동행위 신설) ▲사업장 내 쟁의행위 전면 금지 ▲쟁의행위 찬반투표 절차 강화 ▲단체교섭 대상 제한 ▲직장폐쇄 요건 완화(예방 직장폐쇄 허용) 등이다.

파업 파괴와 부당노동행위로 자본 천국 만들려는 재벌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43조는 “쟁의행위 기간 중 그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해당 사업과 관계없는 자를 채용 또는 대체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ILO 역시 파업 중 대체 인력 투입은 87호 협약과 결사의 자유 원칙을 위반한다고 지적한다.

현행 노조법은 파업 중 사업과 ‘관계없는 자’만의 ‘대체 인력 투입 금지를 규정해 ‘사업과 관계있는 자’의 대체 근로를 허용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즉 사용자 측은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해당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파업으로 중단된 업무를 수행하게 함으로써 파업을 무력화할 수 있다.

필수 공익사업장의 경우 파업 참가자의 100분의 50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신규채용이나 도급, 하도급을 줄 수 있다. 파견·하청노동자가 파업하면 원청이나 사용사업주는 아예 새롭게 도급계약을 해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노조법이 사실상 대체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 길을 터줬음에도 경총은 파업 기간 중 대체인력 투입을 무제한 허용하라고 요구한다. 경총의 대체 근로 허용 요구는 사실상 파업권(단체행동권)을 무력화하겠다는 의도이다.

이와 함께 경총은 사업장 내 쟁의행위 전면 금지를 요구했다. ILO는 파업권의 본질을 “평화적 압력”으로 정의하고 평화로운 수단으로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조합원 권리를 보장하고, 사용자 출입을 허용한 쟁의행위는 정당하다고 해석했다. 대법원도 사업장 시설의 일부만 점거하고 사용자의 출입과 관리지배를 허용했다면 정당한 쟁의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런 판례도 단체행동권을 온전히 보장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 노조법이 사실상 대체인력 투입할 수 있는 길을 터줬음에도 경총은 파업 기간 중 대체 인력 투입을 무제한 허용하라고 요구한다. 경총의 대체 근로 허용 요구는 사실상 파업권(단체행동권)을 무력화하겠다는 의도이다. 노조 충남지부 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 간부 조합원들이 지난해 6월 16일 청와대 앞 ‘재벌총수 구속, 4대 갑질 철폐, 비정규직 없는 일터 만들기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마치며 ‘비정규직 철폐’를 피로 쓰는 결의의식을 벌이고 있다. 사진=신동준


대체인력 전면 허용, 공장 안 쟁의행위 금지 요구

현행 노조법은 이미 생산과 기타 주요업무 관련 시설, 이에 준하는 시설을 점거하는 쟁의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경총이 요구한 사업장 내 모든 쟁의행위 금지는 공장 점거뿐 아니라 선전전과 대체인력 투입 저지 등 그나마 현행법이 인정한 쟁의행위 보조 수단마저 불법으로 만들려는 목적이다.

경총은 파업을 사실상 부정하는 입법 요구도 모자라 부당노동행위 제도 폐지와 처벌규정 삭제를 요구하며 범죄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사용자가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러도 처벌하지 말라고 뻔뻔하게 요구한다.

노조법은 헌법이 명시한 근로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구체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유형화해 금지하고 있다. 노동권 침해가 발생하면 독립된 행정기관인 노동위원회를 통해 실질적으로 구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조법이 규정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금지와 처벌은 노동 3권을 보장하는 효과 있는 장치인 셈이다.

그러나 법은 현실은 넘지 못한다. 부당노동행위 당사자인 사용자 개념을 협소하게 해석해 누구를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해야 할지 모호하게 만들어 가해자를 숨겨준다. 피해자인 노동자가 부당노동행위를 입증해야 한다. 노동부와 검찰, 경찰, 법원은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른 사용자 처벌에 소극적이다. 반면 노조의 쟁의행위는 신속하게 수사하고 과도하게 처벌한다. 일반 형사사건 기소율이 45.7%지만 부당노동행위는 9.5%에 불과하다. 2000년 이후 부당노동행위로 구속된 사용자는 단 두 명뿐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경총은 부당노동행위 제도를 폐지하라고 요구한다. 마음껏 도둑질할 생각이니 절도죄를 없애라는 꼴이다.

파업 시작 전에 파업을 깨려는 자본

직장폐쇄는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응하기 위한 사용자 측 대항수단이다.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임금을 주지 않는 방식을 통해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수단이다. 노사관계에서 약자인 노동자에게 보장한 파업권과 달리 직장폐쇄는 사용자가 현저하게 불리할 때 제한적으로 엄격하게 허용해야 한다. 그러나 노조법은 직장폐쇄에 관해 “쟁의행위를 개시한 이후”에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별다른 규제가 없다.

사용자 측은 허술한 노조법 규정을 이용해 공격성 직장폐쇄를 남발하고 있다. 노조가 파업을 벌이기 전에 직장폐쇄를 자행한다. 파업이 끝나도 직장폐쇄를 유지해 노조 탈퇴를 협박하고, 노조 활동을 억압해 노조를 파괴하는 수단으로 악용한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발레오만도, KEC 등이 그렇게 공격성 직장폐쇄로 피해를 봤다.

경총이 요구한 예방 차원의 직장폐쇄 허용은 사용자에게 사업장에서 조합원을 내쫓고, 노조를 무력화할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라는 요구다.

이렇게 후안무치해도 되는 걸까?

경총은 이밖에 노조의 쟁의행위 찬반투표 요건을 강화, 단체협약 유효기간 4년 연장, 단협에 인사와 경영에 관한 사항, 정치 문제 등을 교섭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구했다.

현재 쟁의행위는 조합원이 직접·비밀·무기명 투표를 통해 과반수 찬성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ILO는 파업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전체 노동자의 과반수 찬성은 지나치고, 특히 대기업의 파업 가능성을 지나치게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ILO는 대기업 노조의 파업 결정 과반수 찬성 규정에 관한 법 규정을 수정하라고 해당 정부에 요청했다.

   
▲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ILO 기본협약 비준을 반대하는 사용자 측을 설득하기 위해 양보하고 타협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노동자의 목숨줄 같은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내주기 위한 타협을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10일 서울 태평로에서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2018년 전국노동자대회’를 마친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총파업 깃발을 앞세우고 총리 공관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사진=신동준

경총은 ILO의 파업에 대한 과도한 찬반 규정 수정 권고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의결 정족수 강화와 찬반투표 시 파업형태와 기간 명시, 부결 시 6개월 이내 재투표 금지, 가결 시 유효기간 60일 제한 등을 요구한다. 경총 요구대로 한다면 노조는 60일마다 파업에 관해 찬반투표를 해야 한다.

경총은 단체협약 유효기간도 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자고 요구한다. 현행 노조법이 복수노조 교섭 창구 단일화를 강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협 유효기간 연장은 단체교섭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 교섭 대표가 아닌 노조는 단체교섭을 체결하는 데 걸리는 시간 1년에 유효기간 4년이 더해져 최소 5년이 지나야 새롭게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사실상 단체교섭권을 강탈하겠다는 요구다.

노동자 목숨을 놓고 흥정하는 노동자 아닌 자들

한국 정부는 1996년 OECD에 가입하며 ILO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을 약속했다. 1998년 방한한 ILO 대표단에 조속한 비준을 약속했다. 역대 정부는 비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촛불 민심을 업은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2017년 대선에서 ILO 기본협약 비준을 약속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약속을 뒤집었다.

2017년 9월 정부 초청으로 방한한 가이 라이더 ILO 사무총장은 ILO 핵심협약 미 비준을 포함한 한국의 노동기본권 관련 사항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제노동기준에 맞게 국내 노동법을 정비하는 문제는 다양한 이견이 존재하는 만큼 사회적 대화를 통해 양보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2018년 7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출범하고 노사관계·제도개선위원회를 통해 “ILO 기본협약 비준에 필요한 법제도 점검”을 해나가기로 했다. 필요한 법제도 점검은 오로지 “재계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한” 법제도 점검으로 바뀌고 있다. 비준을 반대하는 사용자 측을 설득하기 위해 양보하고 타협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노동자의 목숨줄 같은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내주기 위한 타협을 시작했다. 물론 타협으로 포장한 과정에서 노동자는 배제하고 있다. 지금 노동자의 목숨을 놓고 노동자가 아닌 자들이 ‘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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