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과 자본의 공격으로 최저임금제도가 위태롭다.” “중소영세사업장에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시 노동자 과반수 동의는 지키지 않는다.” “개별조합원 가입제도와 개별조합원 관리를 위한 노조 차원의 정비가 필요하다.”

민주노총은 11월 8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공단 노동자 최저임금 실태와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서 신상길 민주노총 부산본부 서부산상담소 상담실장과 유월 반월 시화공단 노동자권리 찾기 모임 <월담> 활동가가 녹산공단과 반월 시화공단의 노동자 임금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토론에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 방안으로 개별조합원 제도를 활용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 민주노총이 11월 8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공단 노동자 최저임금 실태와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열고 있다. 신동준

이날 토론에서 법정 최저임금은 대폭 올랐지만, 현장에서 임금인상을 체감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공단 노동자들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과 상여금 쪼개기 등으로 불이익을 받는 상황이다. 노동자들의 불만이 조직화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에 대한 분석과 대안 제시가 이어졌다.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 확인, 공단 노동자는 대응 못 해

토론자들은 최저임금이 대폭 올랐지만, 정부·정치권과 자본의 대응으로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가 무력화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영세중소사업장 노동자 상여금 삭감, 노동시간 단축, 수당 삭감 등으로 나타나는 사업주의 최저임금 무력화 시도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녹산공단의 노동자 115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53%의 노동자가 예년과 비슷한 임금을 받는다고 응답했다. 38%의 노동자가 인상됐다고 응답했다. 줄어들었다는 대답이 9%나 나왔다. 녹산공단의 106개 사업장 가운데 26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하는 꼼수나 편법이 있었다.

조사결과 상여금 일부 삭감 뒤 기본급으로 전환하는 방식이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 사례의 절반을 차지했다. 노동시간을 줄여 임금총액을 줄이는 방식은 24%를 차지했다. 각종 수당과 인력감축, 상여금 매월 지급으로 전환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녹산공단에 상여금 자체가 없는 사업장이 다수 존재하지만, 이번 설문에서 현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신상길 실장은 “노동시간 단축의 경우 일감부족을 이유라고 응답한 예도 있기에 조사결과에서 제외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며 “녹산공단의 경우 자동차산업과 조선업 사업장과 밀접해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 신상길 민주노총 부산본부 서부산상담소 상담실장이 11월 8일 ‘공단 노동자 최저임금 실태와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녹산공단 노동자 임금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신동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는다는 응답이 많았다. 사업주 마음대로 시행하지만, 대부분 노동자가 위법인지 모른 채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불이익 변경 절차를 겪었다고 응답한 노동자는 개인 면담 뒤 서명하거나(10개 사업장) 조회시간에 서명(3개 사업장), 강압적인 말이나 행동으로 서명을 요구(1개 사업장)했다고 응답했다.

노동자 동의를 받지 않고 일방 시행했다는 응답이 네 건 나왔다. 아예 근로계약서를 다시 썼다는 응답(1개 사업장)도 있었다. 불이익 변경이 있지만, 변경 절차에 대해 응답하지 않은 사업장도 10여 곳 있었다.

회사의 일방 노동조건 저하 움직임에 영세중소사업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수동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27%가 어쩔 수 없이 참고 일한다고 답했고, 동료들과 의논해서 결정한다는 응답은 23%, 재직 중에 대응할 수 없다는 응답도 10%가 나왔다. 이직하겠다는 응답은 2%를 차지했다. 사업주의 노동조건 저하에 수동적으로 대응한다는 응답이 39%를 차지한 셈이다.

신상길 실장은 “동료들과 의논해서 결정하겠다고 하는 경우도 분위기를 봐서 대세에 따르겠다는 소극적 입장이 포함된 예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반월 시화공단 실태조사 결과도 녹산공단과 비슷했다.

유월 활동가는 “취업규칙 변경을 위해 노동자 과반이 동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의미가 없다”라며 “행정관서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과정을 확인하기 어렵고, 노동자는 해고 등 불이익 때문에 사업주의 제시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꼬집었다.

 

개별조합원 제도 활용,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해야

이날 토론회에서 현장 조직사업 담당 활동가들이 올해 민주노총의 최저임금 투쟁에 대해 평가했다. 정현철 금속노조 경기지역금속지회 수석부지회장은 “민주노총이 최저임금 싸움에서 실패했다”라고 쓴소리를 했다.

▲ 유월 반월 시화공단 노동자권리 찾기 모임 <월담> 활동가가 11월 8일 ‘공단 노동자 최저임금 실태와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취업규칙 변경을 위해 노동자 과반이 동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의미가 없다. 행정관서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과정을 확인하기 어렵고, 노동자는 해고 등 불이익 때문에 사업주의 제시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신동준

정현철 수석부지회장은 “민주노총이 복잡한 임금체계를 단순화하자는 논리를 펴다가, 상여금을 지키자는 주장을 하며 자기모순에 빠졌다”라고 지적했다. 정 수석은 “최저임금 싸움 국면에서 명분을 잃고 실리를 찾지 못했다. 최소한 상여금을 통상임금화 하는 의제라도 챙겼어야 했다”라고 꼬집었다.

박준도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은 “2018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16.4%이다. 이런 인상률은 노동자 대투쟁 시기 같은 혁명 상황에서 나올 법한 인상률이다”라고 전제했다. 박준도 연구원은 “사업주들의 반격은 당연할 수밖에 없는데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은 노동조합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박준도 연구원과 정현철 수석부지회장은 공단 중세영세사업장 노동자를 개별조합원 제도로 노동조합 주변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준도 연구원은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는 이직이 잦고, 사업장 단위 집단 가입이 어렵다”라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개별조합원으로서 노동조합을 경험한 노동자는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알고, 주변에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개별가입제도와 개별조합원 관리를 위한 노조 차원의 정비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2019년 최저임금 투쟁에서 새 판을 짜고, 다양한 시도를 통해 효과적으로 싸우겠다고 밝혔다. 최정우 민주노총 미조직전략조직사업 국장은 “최저임금 정착에 지자체가 적극 나서라고 요구하고, 민주노총의 공단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략 수립에 오늘 토론한 내용을 반영하겠다”라고 약속했다.

최정우 국장은 “프랜차이즈 업체 영세상인들이 최근 민주노총 가입을 문의하고 있다. 재벌기업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피해 보는 하청노동자들이 공단 노동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재벌 문제를 부각하는 투쟁을 준비하겠다”라고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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