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보면 촛불 항쟁은 거대한 가능성이었지만, 동시에 한국사회의 한계이기도 했다. 연인원 1천만 명의 시민이 거리에 나온 저항이라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되짚어보면 촛불은 한국사회구조가 대단히 공고한 체계로 자리 잡았음을 알려주는 증거이다.

시민의 힘으로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린 촛불이라는 의미를 뒤집어보면 한국사회에서 이런 비정상적이고 몰상식한 정권을 퇴진하게 만드는데 필요한 힘은 연인원 1천만 명 정도의 시민이 한 달 넘게 거리에 나와야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만약 박근혜 정권만큼은 아니나 시민사회가 용납하기 힘든 부패한 권력이라면 이보다도 더 많은 시민이 싸워야 물러나게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촛불은 한국이 여전히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가능한 역동적인 사회임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한국이라는 국가체계가 감당할 수 있는 저항의 규모를 보여준다. 그 임계치는 대단히 높은 수준이다. 더군다나 촛불은 그 자체로 저항을 완수하지 못했다. 정권의 퇴진은 결국 거리의 힘이 아니라 헌법재판소라는 국가기구를 통해서 결정됐다. 한국사회는 1천만 명의 저항도 체제 안으로 흡수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고 안정적이다. 촛불 항쟁은 1987년과 마찬가지로 또 한 번의 ‘수동혁명’에 그쳤고, 많은 이들이 한계에 달했다고 한 87년 체제는 위기는커녕 아주 잘 작동하고 있다. 한국의 국가구조는 1천만 명의 저항을 견디고 흡수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이는 민주변혁의 시대가 저물고 구조개혁이 필요한 시대임을 의미한다.

 

개혁 공약 포기한 대통령

7월 16일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이 실현 불가능하다고 선언했다. 정권의 공약 포기 선언은 이 나라에서 익숙한 광경이기는 하나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복잡한 의미가 있다.

문재인 정권의 임기 중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은 단순히 최저임금을 크게 올린다는 포퓰리즘성 공약은 아니다. 최저임금인상을 둘러싼 공방에서 이미 드러났듯이 낮은 최저임금은 재벌 중심의 한국경제구조와 직결한다. 경제 비중과 비교하면 고용을 책임지지 않으며 중소기업의 영역을 잠식한 재벌체제는 다수의 경제인구를 자영업자와 이에 고용된 알바, 비정규직 등 불안정노동자로 내몰았다. 중심부의 재벌은 로열티, 프랜차이즈, 카드수수료, 임대료로 하청업체와 자영업자를 수탈하고, 수탈당한 자들은 저임금 노동으로 더 아래를 수탈하는 것이 재벌이 강요하는 경제구조다.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은 재벌이라는 대기업집단을 개혁해 경제의 순환구조를 만들겠다는 의미였다. 이 순환구조는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문재인 정권의 핵심 사회경제전략과 맥이 닿아있다. 최저임금 1만 원 포기는 공약 하나의 실종이 아니라, 문재인 정권의 재벌개혁 포기 선언이며 나아가 소득주도 성장이 동력을 잃었음을 고백하는 선언이다. 이를 입증하듯 7월 9일 대통령은 저 멀리 인도까지 날아가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을 만났다. 일종의 경제적 사면이었다. 왜 이 정권은 1년 만에 구조개혁을 포기했을까.

▲ 촛불 항쟁은 1987년과 마찬가지로 또 한 번의 ‘수동혁명’에 그쳤고, 많은 이들이 한계에 달했다고 한 87년 체제는 위기는커녕 아주 잘 작동하고 있다. 한국의 국가구조는 1천만 명의 저항을 견디고 흡수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이는 민주변혁의 시대가 저물고 구조개혁이 필요한 시대임을 의미한다. 사진=신동준

 

산업정책 없는 성장전략

첫 번째 답은 거시 정책의 부재에 있다. 안타깝게도 문재인 대통령은 준비된 상태였는지 몰라도 정권은 준비된 정권이 아니었다. 예상하지 못한 박근혜 정권의 퇴진과 예상하지 못한 대선과 예상하지 못한 집권에도 불구하고 여당과 새 정부는 능력 있는 집단으로 보였다. 그러나 대중의 심금을 울렸던 선거구호와 후보의 세심함은 모두 윤리 차원의 가치와 지향이었을 뿐이었다. 그나마 준비된 정책이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낡은 케인스주의 전략의 재탕이었다.

과거 정권의 주먹구구보다는 진일보한 정책임은 사실이다. 소득주도 성장을 실현하기 위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접근은 올바른 정책이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났다는 점이다. 일자리, 즉 고용을 늘리는 정책은 맞는 방향이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설계할 수 있는 이들이 정권에 없었다.

우선 정권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했다. 이 정책의 핵심은 고용형태를 바꾸는 게 아니라 다수의 불안정노동을 양질의 일자리로 전환한다는 데 있다. 언론은 이 정권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이 무늬만 전환에 그칠 우려를 제기하고 있고, 노동조합은 우려를 넘어 저항에 나서고 있다.

민간부문은 더 끔찍하다. 정권출범 1년의 성적표가 최악이다. 광역자치단체의 산업거점 도시 가운데 하나인 군산시가 폐업상태로 내몰렸다. 대통령이 회생을 약속한 조선산업은 정작 정부가 나서서 산소호흡기를 떼고 있다. 거대 외국투자기업의 횡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최저임금 개악으로 민간서비스 영역의 일자리는 양과 질 모두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

7월에 귀국한 장하준 교수는 이런 결과가 나온 원인을 정권 차원의 산업정책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날카로운 지적이다. 지식인들은 세계금융위기 이후 지속하는 구조적 저성장시대를 ‘뉴노멀’이라 부른다. 한국사회가 처한 저성장구조와 고용의 증대는 그 자체로 모순이다. 따라서 이를 실현하려면 사회복지 정책으로 공공부문의 고용을 확보하고, 산업정책을 통해 제조산업의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특히 대규모 고용창출이 가능한 ‘굴뚝 산업’의 보호와 혁신이 핵심이다. 이것이 장하준 교수의 충고다. 반대편에는 저성장 속에서 고용 확대는 불가능하다는 재벌과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 있다. 정작 문재인 정권은 재벌의 주장에 귀를 돌리고 있다.

 

변화보다 안전을 택한 정권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빨리 한반도 정세와 북미 관계가 개선되리라 예측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문재인 정권은 임기 내내 한반도 평화를 추구했을 것이다. 지난 1년간, 사실은 지난 몇 개월간 이룬 진전은 취임 당시라면 임기 안에 달성 불가능하다 여겼을 수준이다.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평화체제는 그 자체로 환영할 일이다.

예상 밖의 급전개는 다른 부작용을 낳았다. 정치학자들이 지적하듯이 단임제 대통령제는 보장된 임기 안에서 이룰 수 있는 최적의 결과에 집중하는 성향이 있다. 임기가 보장되지 않는 내각제는 정권의 지속을 위해 모든 부분의 균형을 추구한다. 정권 재창출이라는 측면에서 단임제는 권력의 승계가 전임 정권의 인기가 아니라 후임자의 능력에 달려있다. 내각제는 정당이 중심이므로 정권의 재창출은 인물보다 정책의 연속성에 좌우한다. 만약 문재인 정권 임기 동안 남북관계의 진전이 ‘상식적인’ 속도로 진전했다면 정부 정책도 경제민주화를 비롯한 사회경제정책의 개혁에 무게 중심이 쏠렸을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정세의 급진전은 임기 5년의 성과를 1년 만에 달성하는 수준이다. 아직 여러 변수가 있기는 하나 지금의 방향과 속도로 전진한다면 확실히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의 빌리 브란트로 기억될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현 정권의 임기 동안 경제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위기 수준으로 하락하지만 않는다면 문재인 정부는 성공한 정권으로 끝맺음을 할 수 있다. 이 조건에서 성공 가능성이 보장되지 않은 경제개혁에 착수하는 정치는 누가 보아도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앞에서 확인했듯이 이 정권은 구조개혁의 확고한 신념을 갖고 집권한 세력이 아니다.

결국, 지금 정권에 필요한 것은 남은 임기 동안 경제를 안정적으로,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는 집단이다. 한국의 경제지표를 최소한 마이너스로 만들지 않고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 줄 자원과 경험을 가진 집단. 그 집단은 개혁정책론자들과 노동조합은 아니다. 관료와 재벌이다. 대통령과 이재용의 악수는 해외 순방 중에 생긴 해프닝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과 재벌이 맺은 새로운 계약이다. 평화체제는 정권이 맡고, 시장은 재벌이 관장한다는 빅딜이 성립했다. 이 결과는 언론이 문재인 정권에서 내각도 제친 권력의 중추 기관이라 지목한 청와대 비서진의 교체로 이어졌다. 시장 친화적인 인물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 개혁을 포기한 정권은 조직노동운동과 노동의 가치에 작별을 고했다. 민주노조운동이 앞으로 어떤 길을 택할지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정치적 독자성을 포기하고 개혁정당과 거래 관계 속에서 생존만을 유지하는 일본·미국의 길과 계급성·변혁성을 포기하지 않고 구조개혁과 사회 대안을 추구하는 노동운동으로 혁신하는 길. 이 사이에서 민주노조운동은 지금 흔들리고 있다. 노조 조합원들이 7월 13일 ‘적폐 청산, 산별교섭 쟁취 금속노조 7.13 총파업대회’에서 앞서 3불 가이드라인을 내세우는 현대차 자본에 항의하기 위해 현대차 본사로 행진하다 경찰을 대오 밖으로 쫓아내고 있다. 사진=신동준

 

만들기도 전에 해체한 개혁 동맹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또 하나의 변수가 문재인 정권을 개혁의 길에서 벗어나 노동을 멀리하게 했다. 바로 수구 보수정당의 몰락이다. 우리 모두 알듯이 새누리당은 탄핵국면에서 살아남았다. 반성이 됐든 자중지란이 됐든 내부에서 붕괴하거나 이합집산을 통해 재편되지 않았다. 오히려 바른정당의 실패를 통해 보수혁신이 이 집단의 의제가 아님을 입증했다. 위기는 있었지만 대선 시점까지 자유한국당은 박근혜의 실패가 보수의 실패는 아니라는 듯 행동했다. 이는 당시까지 이 집단이 ‘국회 지분, 지역 지분, 지지율 지분’이라는 세 가지 영역의 힘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으되 앞날이 쉽지만은 않으리라는 사실을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현 정권 임기 대부분이 제1야당에 의해 발목이 잡힐 것으로 보였다. 제도적으로 봉쇄된 국회해산이 아니고서는 이를 뒤집을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여당과 청와대도 당연히 이를 예상했고 따라서 권력 수준에서는 협치니 공동내각이니 하는 기획이 나왔다. 사회적으로는 여당을 중심으로 더 넓은 동맹의 구축을 추구했다. 그러나 끈질기게 버틸 듯 보였던 수구 보수세력은 올해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급속하게 붕괴했다. 제도 덕에 여전히 다수의 국회 지분을 확보하고 있으나 지역 지분과 지지율 지분은 모두 상실했다. 이제는 1야당 자리를 놓고 정의당과 겨루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당과 청와대는 상대방이 사라진 링 위에서 혼자 독주하는 모양새다. 권력을 나눌 필요성이 사라졌다. 선거 때야 누구나 그렇듯이 표를 위해 조직노동을 포섭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제 문재인 정권에 노동은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됐다. 다른 요인이 더해졌다. 이번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민주당과 보수정당 양쪽에 발을 걸치던 한국노총이 민주당 지지로 내부가 완전히 정리됐다. 조직노동의 거의 절반을 집권 동맹 안으로 확실하게 포섭한 여당 처지에서 민주노총은 더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다. 민주당은 2018년 들어 이런 태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노동운동은 어느 길로 가야 하나

문재인 정권은 집권의 제도적 정당성은 선거로 확보했다 하더라도 내용적 정당성은 개혁을 통해 입증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권에게 개혁은 애초부터 목표가 아니라 전임 정권과 확실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후보와 당선자는 시대정신을 계속 이야기했지만 정작 우리 시대의 정신이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어떻게 달성할지 제시하지 않았다.

취임 직후부터 시작된 지지율의 고공행진은 굳이 어려운 길을 통해 집권의 정당성을 입증할 필요를 지워버렸다. 대북·대미 관계 개선 등 정권 초반에 초과 달성한 업적은 개혁의 동기를 무너트렸다. 자유당 등 반대파의 급격한 몰락은 개혁 동맹의 필요성도 제거했다. 이 모든 요인이 문재인 정권의 개혁 동력을 급격하게 떨어트렸다.

개혁을 포기한 정권은 조직노동운동과 노동의 가치에 작별을 고했다. 민주노조운동이 앞으로 어떤 길을 택할지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정치적 독자성을 포기하고 개혁정당과 거래 관계 속에서 생존만을 유지하는 일본·미국의 길과 계급성·변혁성을 포기하지 않고 구조개혁과 사회 대안을 추구하는 노동운동으로 혁신하는 길. 이 사이에서 민주노조운동은 지금 흔들리고 있다.

장석원 _ 노조 대외협력부장·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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