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현재 법정 최저임금과 함께 노동시간 주 52시간 상한제가 사회 쟁점이 되고 있다. 주 52시간 상한제는 2월 28일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올해 7월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확대 시행하기로 돼 있다.

 

쟁점이 되는 주 52시간 상한제의 배경

주 52시간 상한제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 지금까지 노동부는 근로기준법상 1주 12시간의 연장 노동 한도를 휴일 노동에 적용하지 않는다고 행정해석을 해왔다. 이로 인해 1주 기준노동시간 40시간과 연장 노동 12시간 외에 별도의 휴일 노동이 가능해서 최장 68시간까지 근무를 시킬 수 있도록 해왔다.

둘째, 노동부가 제멋대로 해석해온 노동시간을 2월 28일 근기법 개정으로 바로잡은 것에 불과한데, 사용자들은 기준노동시간인 주 40시간을 지키기는커녕 주 52시간의 연장 노동 한도를 피해가거나 노동자들 임금을 줄이려고 각종 편법과 꼼수를 동원할 움직임이 나타내고 있다.

 

주 52시간 관련 금속노조 실태

근로기준법 개정 관련해 올해 상반기에 금속노조 사업장 실태조사를 해본 결과, 조합원들은 총액임금 감소와 임금체계 개편을 가장 우려(19.4%)하고 있다. 노동강도 강화(18.1%), 인력충원 대신 물량 외주화 시도(17.5%), 교대제 개편에 대한 우려(16.9%)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경기 대창·대한솔루션·인지컨트롤스 등 소수노조 사업장에서 휴식시간과 노동시간 통제 등을 통해 실제 생산량을 높이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광주전남의 현대삼호중공업 사측은 변형근로제·간주근로제 등을 제안하고, 계양전기 등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려는 사업장이 여러 군데 나타나고 있다.

시노펙스에서 탄력적 근무형태로 변경하거나 부분 외주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나스테크·시노펙스·이래오토모티브·현대제철당진하이스코 등 다수 사업장에서 교대제 개편이 예상된다. 동희 사측은 사무직 14명을 다른 법인으로 소속을 바꿔서 300인 미만 사업장으로 변경했고, 현대모비스 평택 등은 사업장 쪼개기 방식의 편법을 얘기하고 있다.

삼경오토텍의 경우 모든 생산업무를 주중에 끝내고 특근을 없앨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이 계획은 노동강도를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현대필터는 잔업시간이 줄어 노동강도 강화와 함께 임금총액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많은 중소·영세 사업장에서 비슷한 양상이 벌어지거나 예상되고 있다.

 

사측 꼼수에 대한 대응

노조는 주 52시간 상한제를 둘러싼 사측의 각종 편법·꼼수에 조직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우선 노동시간을 연장하려는 꼼수를 막아야 한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재량 간주근무제, 근로 시간 계산 특례, 보상휴가제, 휴일·휴가 대체, 포괄임금제 등 노동시간 유연화를 위한 유연근무제 거부, 폐지를 요구해야 한다. 노동시간 외의 업무인수인계·작업준비 등을 활용한 실노동시간 확대나 실휴게시간 축소와 명목휴게시간 확대를 금지하고, 이를 노동시간으로 활용할 경우 유급으로 처리하라고 꼭 요구해야 한다. 또 노동시간인데도 노동시간으로 처리하지 않은 불합리한 사업장 관행을 조사해 조직적·법률적 대응을 해야 한다.

노동통제 강화를 금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화장실·커피·흡연 등 사측의 노동시간 통제 사례들을 노동조합으로 모으고, 노동시간 엄수, 작업장 안전규정 엄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감시 등 준법 운동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작업준비·작업정리 등 사측 통제에 속한 실질 노동시간을 임금 지급 대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노동 당국에 주4 0시간 근무제, 주 52시간 상한제, 휴일휴가 보장 등 근로감독 강화를 요구해야 한다.

현재의 노동강도를 유지·완화하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필요 인력을 정규직으로 충원하고, 비정규직 활용과 외주화·분사를 금지함으로써 적정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추가 정규조 편성과 인력 확대를 통한 교대제 개선을 해야 한다. 교대제를 개선할 때 정기휴일 보장, 유급 주휴일은 예측할 수 있도록 지정·부여하고, 규칙적인 근무시간과 휴식보장 근무 간격, 휴일·휴가의 실제 사용 가능성, 출퇴근 편의 보장, 노동자 건강 보장, 예비근무조 편성 여부, 야간노동 강도 완화 등 교대제 운영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특히 교대제를 도입·변경할 때 탄력적 근로 시간제를 유의해야 한다. 근로기준법상 탄력적 근로 시간제는 취업규칙으로는 2주 단위, 노동자대표와 서면 합의할 때 3개월 단위로 가능하다. 하지만 탄력적 근로 시간제를 이용해 원래 연장근무에 해당하는 시간을 하루 8시간을 초과해 소정 노동시간에 포함함으로써 결국 연장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총액임금을 저하하려는 꼼수를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임금을 보전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주 40시간 근무제로 생활 수준이 저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1935년 ILO 협약 47호의 취지다.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생산성 향상을 추진하면 임금을 더 지급해야 하므로 임금인상을 추가로 요구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총액임금 감소대책으로 정부는 고용보험기금을 재원 삼아 노동시간 단축 지원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 2018년 경제정책 방향으로 ▲노동자 임금감소분 보전 시 지급금액의 80% 지원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신규채용 인건비의 지원 기간 연장과 인원 한도 폐지 ▲중소기업 추가고용장려금 지원요건 대폭 개선 등을 내걸고 있다.

주 52시간 상한제를 둘러싼 사측의 각종 편법·꼼수에 대응할 때 무엇보다 노동조건 저하 금지와 추가 확보를 기본 원칙으로 세워야 한다. 근로기준법은 최저기준이며, 이보다 유리한 단체협약은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근로기준법 개정을 이유로 단협을 낮추자는 사측에 대해 단호히 대응하며, 초과노동이 많은 사업장은 기본급 인상 요구와 함께 할증률을 근기법보다 높이는 요구가 필요하다. 특히, 노동시간·휴게시간·노동강도·노동조건을 변경하려면 노사합의로 해야 한다. 노동조건 저하 등 불이익 변경은 과반수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과반수 노조가 없는 경우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함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사업장은 노동시간 단축, 적정인력 확보, 노동조건 변경은 단체교섭을 통해 노사합의로 시행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노조는 금속산업 차원에서 사회적 기준과 원칙을 세우고, 노사자율로 노동시간 단축을 선도적으로 쟁취하기 위한 산별교섭 추진을 중요한 사업 방향으로 잡아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의 방향

노동시간 주 52시간 상한제는 그야말로 노동부가 제멋대로 해석해온 사실을 2월 28일 근기법 개정으로 바로잡은 것에 불과하다. 잘못된 적폐를 조금 바로잡은 것일 뿐, 더 중요하게 추진해야 할 일은 ‘노동강도 강화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근무제’확립이다. 주 5일(40시간) 근무제를 기본으로 초과노동 축소, 교대제 개선, 휴일 확대 등을 추진해야 한다.

자본주의 이래 200년 이상 싸워 온 노동조합운동은 그야말로 노동시간 단축 운동의 역사였다. 자본가들은 노동력의 대가를 조금 주면서 노동력을 최대한 많이 가져가기 위해 노동시간을 늘리는 데 집중한다. 반면 노동자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 노동시간을 줄이고 생활임금을 확보하려 한다.

노동시간 단축은 일과 생활의 균형, 여가생활의 증가를 가져온다. 건강증진과 재해 예방, 노동조건 개선, 고용의 유지와 창출, 생산성 향상 등 우리 사회 발전과 노동자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를 최근 초청해 “노동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제한하는 게 문제 아니냐”라며 질문한 전국경제인연합회에,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52시간이나 일하냐”라며 되물었다고 한다. “52시간이요? 한국도 선진국인데 굉장히 많이 일하는 사실이 정말 놀랍다. 그렇게 많은 시간 일을 하다니.”

2015년 OECD 통계로 볼 때, 독일이 1,304시간으로 앞서 있고 OECD 평균이 1,677시간인 데 비해, 한국은 2,228시간으로 멕시코 2,346시간 다음으로 장시간 노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 40시간 근무제의 현실

주 40시간 근무제 시행 비율이 2005년 8월 30.2%, 2013년 8월 66.4%, 2015년 8월 65.7%로 나타나고, 실노동시간이 47.5시간, 41.7시간, 41.4시간으로 줄어들다가 2013~2015년부터 더는 감소하지 않고 정체되고 있다.

법정 초과노동의 한도(주 52시간)를 넘어서는 탈법적인 장시간 노동자가 345만 명(17.9%), 과로사 기준인 주 60시간을 초과하는 초장시간 노동자가 113만 명(5.9%), 주 15시간 미만인 초단시간 노동자가 61만 명(3.2%)에 이르는 현실이다. 주당 노동시간(중윗값)이 남성 25~54세 45시간, 여성 30~64세 40시간으로, 나이와 관계없이 노동시간이 같게 나타나는데 이 결과는 노동자 개인에게 노동시간 선택권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노동시간이 길다고 월 임금총액이 많아지지 않는 사실을 각종 통계가 보여주고 있다. 주 40시간 미만 시간제 노동자는 노동시간이 길면 월 임금총액이 많아지지만, 정규 노동자는 연장 노동시간이 짧든 길든 월 임금총액이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일반 제조업 노동자의 월 급여는 노동시간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기업은 정규 노동자에게 지급할 월 임금총액을 정한 뒤, 해당 기업의 작업 관행에 따라 필요한 시간만큼 일을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연장 노동시간 단축에 비례해서 임금총액이 줄어들면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연장 노동시간 단축으로 월 임금총액을 줄인 기업은 장기적으로 임금보전 방안을 마련할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과 월 임금총액 보전 동시 실현이 가장 기본적인 방향이다. 노사관계 때문에 실현이 어려울 경우 임금보전에 매몰되면 노동시간 단축이 막힐 수 있다. 우선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이후 임금인상 투쟁을 통해 보전해야 한다.

 

이제, 돈보다 시간이다

노동시간 단축 투쟁에서 중요한 것은, 각종 꼼수와 편법을 시도하는 사용자에 맞서 주 52시간 상한제를 지키는 것만이 아니다. 2016년 기준 65.5%에 그치는 현행 ‘주 5일(40시간) 근무제를 전면실시’하고 나아가 ‘연 노동시간 1,800시간 확립’을 위해 지속해서 요구, 쟁취해야 한다.

주 5일(40시간) 근무제는 금속노조 2003년 중앙교섭에서 확립했다. 우리 금속노조가 만든 제도이며, 한국 산별노조운동의 역사에서 유일하게 사회적 교섭(산별교섭)의 전형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성과다.

얼마 전 독일 금속노조는 주 35시간을 넘어 주 28시간 요구로 파업투쟁을 전개했다. 독일 금속노조가 쟁취한 ‘주 35시간 협약’의 중요한 사실은 이 협약이 상징적인 협약상 노동시간이 아니라 실노동시간을 단축한 점이다. 독일 금속노조가 노동시간 단축을 실제로 쟁취할 수 있었던 배경은 ‘초과노동이 일자리를 찾는 사람의 기회를 박탈하고 노동자를 돈의 노예로 만든다’라는 인식을 조합원들이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일부 _ 노조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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