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경주 발레오만도노조 금속노조 탈퇴” 조선일보, “발레오 노조원들의 쿠데타” 한국경제 “투쟁으로부터의 해방”
지난 19일 열린 경주 발레오만도의 조합원 총회에서 지회의 조직형태를 기업별 노조로 전환해 민주노총-금속노조를 탈퇴하기로 결정되자 보수적 일간지와 경제지들은 선정적인 표현들을 써가며 특집으로 다뤘다. 조선일보는 소위 기업별 노조 위원장 당선자 인터뷰까지 실었다. 기사 제목은 당선자의 말을 인용해 “민주노총 믿고 투쟁하다간 다 망할 지경이었죠”다.

19일 열린 총회는 절차를 지키지 않아 결국 효과를 인정받지 못했다. 총회를 소집했던 당선자도 이를 깨달았는지 24일 대구지방노동청포항지청에 다시 ‘총회 소집권자 지명요구서’를 제출했다. 지회 입장에서 당장의 위기는 넘긴 셈이다. 하지만 조합원 절대 다수가 지회의 통제를 벋어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발레오만도지회 조합원 수는 약 620명이다. 이 가운데 이미 5백여명은 직장폐쇄 기간 회사에 복귀했으며 일부는 집에서 대기 중이다.

▲ 발레오만도 사측은 직장폐쇄 효력정지 결정이 났음에도 조합원들을 공장에 드나들지 못하게 할 뿐더러 법으로 보장돼 있는 지회사무실 출입조차 막고 있다.

이들 중에는 기업별 노조 건설을 주도한 사람들처럼 현 지회를 아예 부정하려는 조합원들도 일부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생계문제를 견뎌내지 못해 억지로 회사의 회유를 받아들인 경우다. 그렇다 보니 공장 밖 천막에서 1백여일간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조합원들과 소통이 단절되진 않는다. 물론 회사가 가두리양식장 운영하듯 조합원들을 공장에서 합숙시키며 일을 시키는 바람에 이따금 전화통화 정도밖에 할 수 없다.

“행님, 고마하고 집에서 대기하소. 그라면 조만간 회사가 불러줄낀데…”
복귀한 조합원이 이영철 대의원에게 전화해 걱정하듯 말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대의원은 오히려 그들이 안쓰럽다. “싸우면 무조건 이긴다. 왜 싸우지도 않고 포기하는데?” 그는 “발가락 끝만 보고 걸어가면 앞이 깜깜할 수밖에 없다”며 “멀리 보고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당장은 회사의 공격에 위축되기도 하지만 일시적인 후퇴일 뿐, 길게 보고 싸우면 이긴다는 얘기다.

발레오만도지회 2구역 대의원인 이영철 씨. 25일 천막농성장을 찾았을 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그를 모범적인 천막지킴이라고 소개했다. 농성 천막이고 식사고 그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런 그도 어려움이 없지 않다. 이 씨는 초등학교 5학년짜리 큰 딸과 6살짜리 작은 딸을 둔 아빠다. 만만찮은 생활비 때문에 적금과 보험을 원금도 다 챙기지 못한 채 해약했다. 아내가 “딴 사람들은 다 회사 들어갔는데 왜 당신은 안 들어가냐”고 따지기도 한다. 그런 아내에게 그는 “조합원 620명 전부 회사 넣어 준 후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 경주 발레오만도지회 이영철 대의원이 26일 포항에서 열린 금속노조 결의대회에 참가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최민석

근속 19년차인 그는 이전에 조합 간부를 해본 경험이 없다. 대의원도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이 씨는 노조 간부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는 “간부라면 어떤 직책이든 자기 모가지가 날아가더라도 물러서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 간부들에 대한 쓴 소리도 덧붙였다. 그는 “간부들이 ‘돌격 앞으로’를 외치고선 뒤로 빠지는 모습을 보곤 했다”며 “지금 조합원들이 투쟁에서 대거 이탈한 것도 간부들이 간부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금속노조 탈퇴 총회를 주도한 이들 중에는 전직 지회간부들이 포함돼 있다.

“결국 강기봉이 백기 들 겁니다”
그는 공장 안에 있는 조합원들도 지회가 잘 싸워주길 바라는 이들이 많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 씨는 “간부가 나 혼자 남더라도 싸우려는 조합원이 있다면 끝까지 자리를 지키겠다”는 결의다. 그의 눈빛엔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승리할 것이라는 ‘낙관’이 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금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 노동자에 대한 정권과 자본의 공세가 날로 심해지고 있는 지금, 6월 한판싸움을 앞둔 금속노조에게 있어 이영철 대의원이 가진 ‘승리에 대한 철저한 낙관’이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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