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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는 실천은 맹목이고 실천 없는 생각은 공허하다”[금속열사 열전] 배재형 열사 (전 경기지부 하이디스지회)
배재형 열사 추모사업회  |  edit@ilabo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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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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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불여일행(千思不如一行).’ 깊이 생각하고 여러 번 다짐하더라도 한 번 몸소 실천하는 것보다 못하다.

2015년 1월 7일 새해 벽두. 대만 자본인 하이디스는 흑자상태인 공장을 폐쇄하고, ‘희망퇴직을 거부하면 정리해고하겠다’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전 조합원에게 희망퇴직을 강요했다. 이에 따라 모든 생산 활동은 멈췄고 지회는 쟁의대책위원회로 전환하고 투쟁에 돌입했다.

하이디스지회는 두 차례의 대만 원정투쟁을 비롯해 구조조정 저지 투쟁을 힘있게 벌였다. 대만 E-INK 자본은 결국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해고된 지회 조합원들은 정리해고 분쇄 투쟁에 들어갔다. 회사는 생산시설 일부를 다른 회사에 임대했다. 임대한 시설을 관리할 시설관리 부서 조합원 30명을 제외한 나머지 조합원을 모두 해고했다. 배재형 열사도 그중 한 명이었다. 이른바 ‘산 자’였다. 당시 배재형 열사는 2013년 현장으로 복귀해서 3교대 근무 중이었다.

지회는 대주주인 대만 E-INK 자본을 타격하기 위해 희망퇴직 마감 시한인 3월 31일까지 두 차례 대만 원정투쟁을 전개했다. 지회장이었던 배재형 열사는 조합원 신분으로 두 차례 원정투쟁에 함께 했다. 대만 현지에서 삼보일배와 대만은행 지점 점거 등 실천 투쟁을 주도했다. 일주일씩 벌인 투쟁이었지만 열사는 원정투쟁 기간 대만 현지에서 연대해준 동지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들 가슴 속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열사가 보여준 헌신적인 투쟁은 이후 벌인 세 차례 원정투쟁에서 대만 동지들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연대투쟁을 끌어낸 원동력이 됐다.

   
▲ 배재형 열사는 2004년 민주노총으로 조직전환 할 때부터 노조 간부를 맡아 일했다. 경기지부 부지부장, 민주노총 이천·여주·양평지구협의회 의장 등을 맡으며 지역 조직사업에 몸 바쳐 활동했었다. 배재형 열사는 노조 경기지부 부지부장 임기를 마치고 지회로 복귀하고 4년 동안 하이디스 지회장을 맡아 투쟁했다. 2015년 7월3일 배재형 노동열사 민주노동자장 영결식을 마친 조합원들이 열사 영정과 만장을 들고 하이디스 현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사진=신동준

정리해고 투쟁을 시작한 지 한 달여가 지난 5월 6일부터 보이지 않던 배재형 열사는 ‘악질자본 없는 세상으로 갑니다.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꼭 이겨주세요. 천사불여일행 노동해방’이라는 유서와 함께 주검으로 닷새 만에 조합원 곁으로 돌아왔다.

정리해고 과정에서 벌어진 회사 측의 압박이 배재형 열사를 극단의 선택으로 내몰았다. 이후 하이디스지회 조합원들은 2018년 2월까지 3년에 걸쳐 구조조정 저지, 정리해고 철회 투쟁을 벌였다. 하지만 ‘원직복직과 공장 재가동’이라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투쟁을 마무리했다. 열사의 염원도 지키지 못했다.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에 걸쳐 많은 사업장이 외국자본으로 넘어갔다. 2004년 하이디스노조가 민주노총으로 전환할 당시 조합원 1,000명이 넘는 사업장이었다. 당시 비오이라는 중국 자본이 대주주였다. 헐값과 고부가가치 기술에 눈독 들이고 들어온 외투 자본들은 이윤과 기술탈취라는 목적을 달성한 후에 불법 구조조정 칼날을 노동자들에게 겨눴다. 국내 자본 상대 투쟁이 쉽지 않지만, 외투 자본 상대 싸움은 많은 어려움이 있다.

금속노조 사업장에도 많은 외투 자본들이 있다. 기술 먹튀나 분할매각을 통한 이익을 목적으로 기업을 넘겨받은 외투 자본들은 자본 철수를 협박하면서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자본의 탄압과 생계 문제 때문에 노동자들은 자본에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공장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하이디스도 1,000명이 넘던 조합원과 2,000명이 넘던 직원 수는 10년 동안 수차례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반의반 토막이 나버렸다. 정리해고라는 칼날이 떨어지기 전에 이미 지키는 싸움에서 밀려난 것이다. 막다른 길 끝에서 공장 밖으로 밀려 나와 다시 공장 안으로 돌아가지 못한 하이디스 노동자들의 교훈이 외투 자본을 상대로 싸우는 동지들에게 반면교사가 되기를 바란다.

3년 동안 싸웠던 하이디스 투쟁은 마무리했지만 배재형이란 이름 석 자만으로도 하이디스 조합원들은 여전히 무겁고 아프고 힘들다. 아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각자 길을 찾아 세상으로 들어가지만, 또 다른 배재형이 되어 ‘천사불여일행’의 가르침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배재형 열사는 삶으로 우리에게 말한다. “생각 없는 실천은 맹목이고 실천 없는 생각은 공허하다.”

많은 사람은 하이디스 대만 원정투쟁을 원정투쟁과 해외연대의 모범사례로 기억하고 있다. 매년 수차례 한국을 방문하는 대만 연대 동지들은 지금까지 배재형 열사를 잊지 않고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을 찾아 열사를 만나고 있다.

배재형 열사는 2004년 민주노총으로 조직전환 할 때부터 노조 간부를 맡아 일했다. 경기지부 부지부장, 민주노총 이천·여주·양평지구협의회 의장 등을 맡으며 지역 조직사업에 몸 바쳐 활동했었다. 배재형 열사는 노조 경기지부 부지부장 임기를 마치고 지회로 복귀하고 4년 동안 하이디스 지회장을 맡아 투쟁했다.

배재형 열사 추모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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