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망가지지 않은 언론이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그중에서도 심각하게 망가진 언론 중 한 곳은 바로 MBC였다.

MBC가 얼마나 망가졌는지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그리고 이들 정권에서 임명한 경영진이 생존했던 마지막 1년을 포함한 지난 10년 동안 두 번의 장기 파업에 나섰던 MBC 언론인들이 절절하게 고백한 잘못과 수치의 말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들은 시청자 국민에게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정상 방송의 모습을 찾겠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지난 연말, 이들은 전임 정권에서 임명한 경영진을 합법적으로 퇴출하고, 시민들의 참여 속에 새 경영진을 선임하며 비로소 정상화의 출발점에 섰다.

하지만 10년의 세월 동안 어느 쪽인지 선택을 강요받는 시간을 너무 오래 보낸 탓일까. 잘못을 저지른 후 책임을 누구에게 어떻게 물을지를 얘기해야 하는 순간에 피아부터 구분한 뒤, 잘못은 있었지만 나쁜 사람은 없다는 결론을 내리는 헛발질로, 시청자 국민이 과연 저런 구성원들이 MBC를 정상 방송으로 만들 수 있을지 총체적인 의문을 품게 했다.

그렇다. 어묵 먹방 장면에 세월호 참사 속보 영상을 삽입해 논란을 빚은 <전지적 참견 시점>(이하 <전참시>) 사태에 대한 MBC 진상조사위원회의 한심한 1차 조사 결과 발표에 관한 얘기다.

▲ 의도가 무엇이었든 부적절한 영상을 사용한 MBC 제작진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 걔가 일베는 아니라고,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우리 안에, 정상화 파업에 나섰던 정의로운 우리 안엔, 없다고 말하는 게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거악을 몰아내는 일에 동참한 우리 동료 가운데 나쁜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면, 대체 나쁜 건 누구란 말인가. MBC의 행태에 상처받은 세월호 유가족인가. MBC의 잘못된 행태를 알아차린 시청자인가. 말 같지 않은 말은 그만해야 한다. 그림= 갈무리

조사 결과를 간단하게 줄이면 이렇다. “잘못은 했지만, 고의는 아니었다.” 문제 영상이 방송에 나가기까지 해당 영상을 찾은 FD와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한 미술부, 총 제작과정에 관여한 조연출까지 무려 세 명의 제작진이 해당 영상이 세월호 참사 속보 영상이란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세월호 유가족을 모욕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진상조사위는 제작진 중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 회원이 있는지를 찾았으나 확인할 수 없었으며, 조연출은 일베 등에서 어묵을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모독하기 위한 상징으로 악용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강조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제작진이 일베여서 그런 영상을 사용했는지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공개적으로 일베 인증을 한 것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세월호 참사가 트라우마와 같은 상흔으로 남아있는, 여전히 침몰의 원인조차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탓에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부채감을 느끼고 있는 이들에게 중요한 건 제작진이 일베인지 아닌지가 아니다. 어떤 의도였든 세월호 희생자를 모독하고 유가족에게 다시금 충격을 안긴 영상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진상조사위는 조사 결과 발표 전 그 내용을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먼저 전달했는데, 그 과정에서 <전참시> 제작진들에 대해 “함께 파업에 참여했고, 촛불을 들었던”(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5월 15일 ‘세월호 참사를 통해 본 언론 보도의 문제점’ 토론회) 이들이라는 설명을 굳이 붙였다고 한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구악의 정권에서 임명한 경영진을 몰아내는 일에 함께했던 동료이니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이런 수준, 이런 정도의 인식으로 잘못을 수습하려 드는 MBC에 과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의도가 무엇이었든 부적절한 영상을 사용한 MBC 제작진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 걔가 일베는 아니라고,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우리 안에, 정상화 파업에 나섰던 정의로운 우리 안엔, 없다고 말하는 게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거악을 몰아내는 일에 동참한 우리 동료 가운데 나쁜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면, 대체 나쁜 건 누구란 말인가. MBC의 행태에 상처받은 세월호 유가족인가. MBC의 잘못된 행태를 알아차린 시청자인가. 말 같지 않은 말은 그만해야 한다.

부패한 정권을, 경영진을 몰아내는 일에 앞장서거나 동참했더라도 잘못을 했으면 잘못한 거다. 그 간단한 명제를 인정하지 못할 때, ‘정상 언론’은, ‘정상 사회’는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다. 문화라는 이름이 붙은 집단에서 상식의 문화를 찾을 수 없고, 민주라는 이름을 붙인 집단에서 비민주한 일상이 횡행하는 모습을 반복해 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런 모습을 정상화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면 지금 당장 MBC는 우리 안에 일베는 없다고 강변할 게 아니라, 어떻게 <전참시> 사태가 발생했는지 제작 시스템을 점검하고, 다시는 이런 참담한 상황을 재현하지 않을 개선책, 그리고 이 사태에 대해 어느 단위까지 어떻게 책임을 물을지 밝혀야 한다. 그게 정상화다.

김세옥 _ 미디어 관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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