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차’라 일컫는 최고(最古) 차나무 아래로 짙은 초록빛을 띤 야생 차밭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깎아질 듯 가파른 산비탈에 굽이굽이 유연한 곡선을 드러낸 차밭에 여성 농민들이 하나둘 들어선다. 작달막한 차나무 사이 좁다란 공간에 서자 “똑, 똑, 똑, 똑” 찻잎 따는 소리가 이내 정갈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 도심다원의 차밭에서 찻잎을 수확하는 여성 농민들의 손길이 이른 아침부터 바지런하다. 차밭을 오가며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초록 찻잎을 따 허리에 동여맨 앞주머니에 넣기를 반복하자 때아닌 오월 더위에 비지땀이 쏟아진다. 그런데도 손끝에 들인 정성만큼 차곡차곡 쌓인 찻잎에 앞주머니가 금세 두툼해진다.

이날 수확한 찻잎은 모두 발효차로 만들 예정이다. 발효 정도에 따라 녹차(불발효), 황차, 홍차, 보이차 등으로 나뉜다. 선조로부터 이어 내려와 배앓이 등에 사용했던 하동 지역만의 마실 거리인 ‘잭살’도 발효차의 하나다. 24절기 중 곡우를 전후로 딴 찻잎을 가마솥에서 덖어 만들어 맛과 향이 일품인 우전, 세작 등 고급 수제 차는 이미 작업을 마무리했다.

지리산의 맑은 공기와 섬진강의 깨끗한 물을 품은 화개면은 지리적 특성상 차나무가 생육하기 좋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약 1,200년 전 중국에서 가져온 차 씨앗을 심어 한반도 최초로 차 문화가 시작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초록빛이 형형한 차밭이 섬진강 변을 따라 지리산 줄기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너른 군락을 형성하고 이유다.

이에 2015년 국가중요농업유산 6호로 지정된 하동 전통차 농업은 지난해 12월 유엔식량농업기구에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공식 등재되며 생태·문화·환경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한승호 _ <한국농정신문>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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