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엄미야의 여성노동자로 산다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돼”라는 교육 이제 그만[여성노동자로 산다 04] ‘노동’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조기교육이 필요하다
엄미야  |  edit@ilabor.org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4.3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어릴 적 세 들어 살던 주인집의 둘째 딸과 함께 과외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시험을 보면 그 친구와 늘 점수 차이가 크게 났다. 안 그래도 셋방살이에 주눅 들었던 나는 공부 실력이 크게 차이가 나니 더욱 주눅 들어 살았다. 무엇보다 엄마에게 미안했다. 외화벌이 노동자인 아빠 대신 홀로 우리 남매를 키우던 엄마 기를 살려드리게 보란 듯이 공부라도 잘했어야 하는데.

어느 날 주인집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가 일을 다녀서 미야가 공부를 못하는 것 같아.”

“그러게. 엄마가 있어야 하는데.”

나는 이상했다. 나는 엄마가 없는 아이가 아니었다. 엄마가 일하는 아이였지. 엄마가 학교에 자주 찾아오지 않고, 갑자기 비가 오는 날 우산을 들고 학교로 마중 나오는 엄마는 없었지만, 열심히 일하고 자식들을 잘 키우고 싶은 열심히 사는 엄마였다.

우리 엄마는 단 한 번도 자식들에게 자신이 일하는 사실을 미안해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일하는 엄마가 좋았다. 나 역시 지금 일하는 엄마로 살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일하는 엄마를 이해하고 좋아한다.

   
▲ 우리 아이들은 자라서 대부분 노동자가 된다. 서비스노동자, 돌봄노동자, 의료노동자, 공무직노동자, 교사노동자, 연구노동자, 경찰노동자 그리고 미래사회에 새로 생겨날 수많은 노동을 담당할 다양한 노동자가 된다. 지금부터 모든 노동이 소중하고, 모든 노동자는 가치 있다는 ‘조기교육’을 권한다. 가정에서 학교까지. <자료사진>

엄마가 노동자라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인식하게 하는 교육은 중요하다. 아빠의 노동 못지않게 엄마의 노동은 똑같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

얼마 전 지방으로 일주일 출장을 갔다. 둘째 날, 작은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갑자기 학부모 총회에 오라면서 울기 시작했다. 선생님께 불참한다는 의사를 전하지 못해 일어난 내 실수였다. 엄마 실수라고, 미안하다는 말에도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는 방법을 바꿨다.

“아가, 엄마는 일하는 엄마야. 알고 있지? 엄마는 엄마의 일이 있고, 그 일은 엄마한테 참 중요한 일이야. 우리 막내가 친구랑 약속이 있다고 하면 엄마가 존중해주지? 엄마의 일을 우리 막내가 존중해주면 좋겠어.” 그러자 당장 집으로 오라고 떼를 부리던 아이가 조용해졌다.

“그러면 내일 아침 일찍 선생님께 전화해 줘야 해.”

나는 덧붙여서 이야기해줬다. “선생님은 집에서 누군가의 엄마이고 아빠일 텐데 선생님 아이들이 엄마, 아빠가 일하는 현실을 이해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학교에 출근해 너희들을 가르칠 수 있겠니. 그렇게 모든 일하는 엄마, 아빠들은 집 바깥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란다.”

이 사회의 모든 사람의 노동이 똑같이 가치 있는 일임을 가르쳐야 한다. 청소노동자를 가리키며 “너는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돼”가 아닌, “청소하는 저분들과 다 같이 잘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부모가 돼야 한다. 한국 사회는 어릴 적부터 미디어와 교육을 통해 ‘노동’이라는 단어를 천시하고, 직업에 층위가 있다고 끊임없이 주입한다.

아이가 4학년 때 학교로 부모참여 수업을 간 적이 있다. ‘부모의 직업’을 소개하는 주제였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아이들에게 “노동자는 00이다”에 관해 발표를 시켰다.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고 “거지요”, 또 다른 아이가 손을 들고는 “불쌍한 사람이요”라고 해서 나도, 참관하던 선생님도 다 같이 놀랐던 일이 있었다.

그날 아빠가 왜 노동자인지, 아니면 왜 노동자가 아닌지를 묻는 말에 “아빠가 공장에 다녀서 노동자라”라고 신나서 대답한 아이는 우리 아이 딱 한 명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는 “우리 아빠는 회사에서 ‘중요한’ 일을 해서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답하거나, “돈을 많이 벌어서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설명을 했다.

수업이 끝나고 담임교사가 다가와서 “이런 수업이 더 많이 필요하겠어요”라고 이야기했다. “예, 선생님, 그렇지요. 그래야 부모의 직업이 무엇이든지 부모님을 존중하고, 노동의 가치를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 아이들은 자라서 대부분 노동자가 된다. 서비스노동자, 돌봄노동자, 의료노동자, 공무직노동자, 교사노동자, 연구노동자, 경찰노동자 그리고 미래사회에 새로 생겨날 수많은 노동을 담당할 다양한 노동자가 된다. 지금부터 모든 노동이 소중하고, 모든 노동자는 가치 있다는 ‘조기교육’을 권한다. 가정에서 학교까지.

엄미야 _ 금속노조 경기지부 조합원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금속노동자소개기사제보광고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서울시 중구 정동 22-2 경향신문 별관 6층 금속노조 | TEL : 02)2670-9507 | Fax : 02)2679-3714
발행처 : 전국금속노동조합 | 발행인 : 김호규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호규
대표이메일 : edit@ilabor.org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금속노동자 iLabor가 생산한 저작물은 정보공유라이선스2.0 : 영리금지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