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하는 말이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 안에서 국민은 딱 하루, 투표일에만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보통 선거 당일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하는 말이다. 하지만 투표를 한다 해도 그게 과연 ‘제대로’ 주권을 행사한 행위였다고 볼 수 있을까.

생각해보자. 제대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선, 다시 말해 유권자 스스로 아깝지 않은 한 표를 던졌다 자신하기 위해선,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그 안에서 최선의 선택지를 골랐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한 명의 후보를 선택하는 대선이나 국회의원 선거에선 유권자들도 어느 정도 스스로 확신하며 선택했다 믿는 게 한결 수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6.13 지방선거 1인 7표제처럼 한 번에 여러 표를 행사해야 하는 선거에선, 특히 기초단위 선거에선 후보에 대한 판단보단 ‘정당번호’나 상대적으로 단위가 큰 시·도지사 후보에 유력인물을 내보낸 정당에 대한 선호에 따라 투표하는, 이른바 ‘줄투표 현상’이 여전히 존재한다.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약한 기초단체장이나 기초의원 후보들이 유세 과정에서 번호를 앞세우고 유력 시·도지사 후보와 자신을 함께 홍보하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절대 불리한 사람은 소수정당의 후보들이다. 인지도가 약한 소수정당의 후보들은 거대정당들과 차이점을 부각하고 자신이 대안이라는 이유를 홍보하며 유권자에게 다가가야 하는데, 존재를 알릴 채널 자체가 막혀있기 때문이다.

▲ 문제는 현행 공직선거법이 선거방송토론회 참석 기준을 ▲국회의원 5인 이상 정당 ▲전국 득표율 3% 이상 득표 정당 ▲최근 4년 이내 해당 지역구 선거 후보자로 10% 이상 득표한 자 ▲여론조사 평균지지율 5% 이상 후보자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상파 방송 들은 이 기준에 맞춰 후보 초청 토론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소수정당, 특히 원외 소수정당의 경우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배제되고 있고, 이로 인해 방송토론의 참여 기회까지 사실상 차단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 19대 대선 때 한 지역의 선거관리 업무 공무원들이 선거벽보를 붙이고 있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정보도서관 제공

일례로 원외 소수정당인 녹색당의 서울시장 후보는 6․13 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등록 첫 날이던 2월 13일 후보 등록을 했다. 하지만 4월 17일까지 두 달 동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 등록된 열 개의 서울시장 관련 여론조사 중 이름이 포함된 건 단 한 건에 그쳤다. 이런 ‘소외’는 원외 소수정당만 겪는 일이 아니다. 같은 기간 원내 소수정당인 정의당 후보를 포함한 여론조사는 2회에 그쳤으며, 또 다른 원내 소수정당인 민중당 역시 여론조사에 등장하지 못했다.

문제는 현행 공직선거법이 선거방송토론회 참석 기준을 ▲국회의원 5인 이상 정당 ▲전국 득표율 3% 이상 득표 정당 ▲최근 4년 이내 해당 지역구 선거 후보자로 10% 이상 득표한 자 ▲여론조사 평균지지율 5% 이상 후보자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상파 방송 들은 이 기준에 맞춰 후보 초청 토론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소수정당, 특히 원외 소수정당의 경우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배제되고 있고, 이로 인해 방송토론의 참여 기회까지 사실상 차단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지적이 나올 때마다 방송사들은 일정한 기준 없이 모든 정당의, 출마한 모든 후보를 출연시킬 순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기준 없이 너무 많은 후보가 등장할 경우 제대로 토론하기 어렵고, 이로 인해 유권자인 시청자들에게 판단의 기회를 제대로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일견, 일리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이유를 대려면 방송의 선거 보도가 충분히 공정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18년 전국 지방선거 미디어감시연대가 4월 18일 발표한 지방선거 보도의 양적 분석 보고서를 보자. 4월 8~13일 사이 메인뉴스에서 선거보도를 한 지상파 방송(KBS·MBC)과 종합편성채널(TV조선·채널A·JTBC·MBN) 리포트 본문에 등장한 정당은 더불어민주당(42.6%)과 자유한국당(34%), 바른미래당(23.4%) 등 원내 여섯 정당 중 세 곳뿐이었다. 보도 주제를 보면 모두 25회의 보도 중 14회(28.6%)가 공천 관련 소식이었으며, 출정식과 경선토론회 같은 후보동정․선거이벤트 내용이 11회(22.4%)로 뒤를 이었다.

어떤 후보들이 출마했는지, 이 후보들이 유권자들에게 무슨 약속을 하고 있는지, 이 약속은 충분히 실현 가능한지 등 기본 정보를 전달하지도,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검증도 하지 않고 있다. 방송토론 시점이 오면 짐짓 공정하고 엄격한 심판인양 후보 난립을 우려한다. 말 그대로 위선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대부분 소수정당들은 기존의 거대정당들이 충분히 대변하지 못한다고 판단하는 가치에 관해 새로운 대안 모델을 제시하겠다며 등장했다. 일례로 녹색당과 민중당에서 지방선거 출마자의 절반 이상을 여성으로 채운 것도 인구의 절반인 다양한 여성을 대변하기 위함으로, 이 자체가 새로운 정치에 대한 고민일 수 있다.

이런 만큼 최소한 방송은 다양한 계층과 성별, 연령 등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 세력들이 드러날 수 있게 함으로써, 유권자인 시민이 충분한 정보 속에 스스로 최선이라 믿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선거를 통해 더 다양한 의견들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진보시키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선거방송심의규정 6조 1항에서 ‘후보자와 정당에 대해 실질적 형평의 원칙에 따라 공평한 관심과 처우를 제공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선거에서 방송은 민주주의의 제자리걸음을, 아니 어쩌면 후퇴를 돕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김세옥 _ 미디어관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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