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에서 지난 5월 1일 노동계가 빠진 가운데 노조전임자관련 시행안이 통과되면서 한편의 블랙코미디가 연출되었다. 한국노총은 당장이라도 한라당과의 정책연대를 파기할 듯한 태도를 취하더니 5월 11일 근심위의 타임오프(time-off) 한도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게다가 한국노총 소속 금융노조도 한국노총을 탈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다가 이제는 꼬랑지를 내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기까지가 근심위 결정을 둘러싸고 언론이 보도한 내용의 전부다.

노동계 대표로 근심위에 참여한 민주노총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고, 민주노총 소속 금속노조는 어떠한 결정이나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를 도대체 알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물론 금속노조 노조활동가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평범한 조합원 입장에서 보면 이 사건의 진행과정조차 알기 어려운 일이 어떻게 해서 벌어지고 있는지는 반드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다시 뒤통수 맞은 민주노총

▲ 금속노조의 무기력은 노조활동가의 게으름과 무능의 산물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산별노조라고 하면서도 기업별 교섭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현실, 지역적 차원에서 사업을 펼치면서 집단행동을 조직해 들어가는 실천행위의 부족으로 빚어진 결과다. 5월19일 열린 '외국투기자본 문제해결과 투쟁사업장 승리를 위한 금속노동자 결의대회'를 마친 조합원들이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신동준
한국노총의 배신행위는 어제 오늘의 일이 결코 아니다. 배신의 역사로 가득 찬 한국노총의 행위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오히려 입만 아픈 소모적 행위다. 오히려 금속노조의 경우 노조전임자의 수가 약 1/3 가량 줄어드는 일대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응하는 목소리마저 들리지 않거나 사라져버리는 현실이 문제의 핵심이다.

물론 노조전임자 임금지급문제를 다루는 타임오프제도는 처음부터 평범한 조합원들에겐 관심 밖의 문제였다고 볼 수도 있지만, 노조활동가들에겐 조직의 명운이 걸린 사안이었다. 금속노조에서 최대기업인 현대자동차에서 전임자 20여명으로 노조활동을 하라고 누군가 주장한다면 과연 말이 될 수 있나 싶지만, 근심위에선 이렇게 하라고 결정했다.

현실에서 지나치게 황당한 일이 벌어지면 대개 '설마 그런 일이'라는 반응이 나오거나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라는 지극히 숙명론적인 태도를 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을 바꾸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현실을 회피하려는 태도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또한 엄청나게 많은 문제를 가진 제도의 도입으로 노조의 활동 폭이 축소되는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는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마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바로 이런 일이 현재 금속노조에서 벌어지고 있다.

기로에 선 금속노조

근심위의 결정에 대해 금속노조가 당장 행동을 조직하지 못하는 이유는 타임오프제도가 기본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조조직의 이해관계를 갈라 치고 있는 현실, 노조활동이 합법적 행위에 익숙해져서 더 이상 법을 무시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기 어려운 현실, 조합원 고령화로 인하여 동원전술의 적용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현실, 노조활동가와 조합원들의 관심사가 동일하지 못한 현실 등등이다. 게다가 조합원 관심사가 촉발되는 임단협에 이 사안을 결합하려는 집행부의 의지는 충분히 납득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 때문에 민주노조운동 진영이 정부의 막가파식 결정에 대해서 이렇게 무력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지는 불분명하다. 어쩌면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잘못 보기 때문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왜냐면 금속노조 조합원들에게 노조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의식이 지배적인 현실에서 노조활동을 곤란하게 만드는 제도의 도입에 무기력하게 대응하는 문제는 노조외부적인 도발 때문이 아니라 노조내부적으로 안고 있는 고질병 때문이라는 점이다.

개인이 아닌 구조의 문제

금속노조의 무기력은 노조활동가의 게으름과 무능의 산물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산별노조라고 하면서도 기업별 교섭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현실, 지역적 차원에서 사업을 펼치면서 집단행동을 조직해 들어가는 실천행위의 부족으로 빚어진 결과다. 기업단위에서 항상적인 구조조정 압박에 시달리면서 자신들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조직은 하나 둘이 아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자신들만의 노력이나 실천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다는 현실인식을 하면서도 기업 안으로 돌아가는 경향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시간이 가면서 강화되고 있다.

이 흐름을 차단할 수 있는 실천적 모형은 여전히 불충분하다 보니 '산별노조 무용론'과 같이 자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말이 노조내부에서 튀어 나오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이 고질병을 하루아침에 고치기가 어렵다고 한다면, 최소한 고치려는 행동을 이제부터라도 해야 않을까 싶다. 고질병 환자가 자신이 해 온 잘못된 생활습관을 전혀 고치지 않으면서 ‘어떻게 되겠지’라고 착각 하는 행동을 이제는 반복하지 않는 게 최소한의 생활의 지혜이듯이 말이다.

이종래 / 한국노동운동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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