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일 금속노조 인천지부 만도헬라지회 조합원들이 일터로 돌아갔다. 사내하청업체가 아니라 진짜 사용자인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주식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던 날 조합원들의 집에 대표이사 명의의 난 화분이 배달됐다. 화분에 ‘입사를 축하드립니다’라는 리본이 달렸다. 난 화분을 보며 9개월 전 지회를 설립했을 때 노조사무실로 배달했다면 조합원들이 더 기뻐했을 것이다.

만도헬라에게 노동조합이 문제였다. 2017년 2월 12일 지회가 설립총회를 열자, 만도헬라는 곧바로 지회의 핵심 임원과 간부들의 인적사항과 성향을 보고받았다. 메일을 보낸 사람은 사내하청업체 현장관리자였다. 메일은 만도헬라 인사팀 직원을 거쳐 주식회사 만도의 인사관리자에게 전달됐다. 노조가 본격 활동을 시작할 무렵 만도의 인사관리자는 해결사가 등장하듯 만도헬라 총무팀으로 옮겨 노무관리를 담당했다.

만도헬라지회가 설립되자 한 사내하청업체 사장은 갑자기 건강상의 사유로 회사 운영이 어렵다며 한 달 뒤 만도헬라와의 생산도급업무를 중단하고 고용관계도 종료한다고 공지했다. 공지 내용만 보면 몸이 아파 당분간 정상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그 사내하청업체 사장은 도급계약해지 며칠 뒤 만도헬라와 노무관리 개선 프로젝트 수행 계약을 체결했다. 구체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두 차례에 걸쳐 2억 원 가까이 비용이 드는 참으로 수상한 노무관리 프로젝트였다.

▲ 그냥 노동조합이 아니라 어떤 노동조합 활동을 할지 고민하던 조합원들에게 지지와 함께 격려를 보낸다. 10월 25일 노동적폐 청산, 무능 무성의 노동부 규탄대회에 참가한 만도헬라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아이레이버> 자료사진

신규 사내하청업체로부터 어렵게 고용승계를 받아낸 조합원들에게 도급계약 해지와 대규모 전환배치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 사내하청업체가 열 차례 이상 교섭을 진행하던 5월 중순 핵심 임원들과 간부들이 일하는 품질과 생산관리 부서의 도급계약이 해지됐다며 58명을 생산부서로 전환배치 했다. 다른 사내하청업체도 비슷한 시기에 32명을 전환배치하고 강등 조치했다. 독립 사용자라고 주장하던 사내하청업체들이 시기를 맞춰 전환배치를 할 수 있는지 의문일 따름이었다.

만도헬라에게 여전히 전면 도급계약해지와 직장폐쇄라는 카드가 남아있었다. 파업과 교섭을 진행하던 7월 9일, 만도헬라는 사내하청업체들과 도급계약을 해지했다며 공장 정문에 ‘무단침입 금지 공고문’을 붙였다. 사내하청업체들은 도급계약이 잠정 해지돼 휴업에 들어간다고 알렸고, 며칠 뒤 직장폐쇄를 한다고 통보했다. 모든 조합원을 일터에서 쫓아낸 뒤 만도헬라는 정규직 직원과 단기계약직을 대체 투입했다. 비조합원 일부는 만도헬라와 단기계약을 맺고 계속 일했다.

만도헬라의 행위마다 부당노동행위와 노조파괴를 의심했으나, 법적으로 문제 제기했다가 고약한 입증책임 문제에 부딪혀 만도헬라에 면죄부를 줄까 봐 우려가 컸다. 부당노동행위를 없애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있었지만, 현장에서 적극 수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았다.

파견법 위반 고소 사건에 관한 노동부의 심판결과 발표 시점이 다가오자 조합원들 사이에 만도헬라가 계약직으로 직접 채용한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9월 말 노동부가 불법파견 혐의를 인정해 만도헬라와 대표이사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고, 11월 7일까지 ‘직접 고용하라’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만도헬라는 10여 년 동안 아무 문제 없이 사내하도급을 운영했는데 갑자기 불법파견 판정을 내려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만도헬라의 당황한 표정이 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용득 의원실이 발표한 만도헬라 내부 자료에 따르면, 만도헬라는 최소 2012년부터 사내하도급이 불법파견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창조컨설팅 출신 노무사의 자문을 받아 작성한 보고서에 “정규직 전환 가정 시 금전 리스크는 크지 않으나, 노동조합 관련 이슈 가능성이 있음”이라고 적혀있었다.

만도헬라는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단결을 두려워했다. 만도헬라는 그냥 노동조합이 아니라 자주적이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노동조합을 진정 두려워했다.

만도헬라가 계약직으로 직접 채용한다는 소문은 고용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 이후 “금속노조에 남으면 계약직이고, 탈퇴하면 정규직이라는 풍문으로 바뀌어 돌기 시작했다. 급기야 추석 연휴가 끝난 다음 날 전 지회장과 일부 간부들이 모든 조합원을 불러놓고 ”시간이 없다. 금속노조 조끼를 벗으면 10월 말까지 책임지고 정규직을 가져 올 테니 같이 가자“라며, 당장 금속노조 탈퇴서를 써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들은 탈퇴서와 만도헬라노동조합이라는 단체의 가입원서를 동시에 받았다. 30분도 채 걸리지 않은 시간에 벌어진 일이다.

몇 시간 뒤 전 지회장은 단체 소통방에 단정하는 투로 “팩트만 가겠습니다. 금속노조를 끼면 전부 계약직이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냉정해진 조합원들이 다시 금속노조로 복귀해 전열을 정비하자, 만도헬라는 모든 진정, 고소 사건을 취하하고 불법파견과 관련해 앞으로 문제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부제소 합의’를 하면 정규직으로, 그렇지 않으면 1년 계약직으로 채용하겠다는 안을 제시했다. 구체 근로조건도 제시하지 않았지만, 전 지회장은 만도헬라 제시안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만도헬라지회 조합원들이 힘차고 힘든 투쟁을 경험하고 일터로 복귀했다. 모든 조합원에게 박수를 보낸다. 당당하게 싸웠다는 조합원의 말에서 희망을 품는다. 정규직 채용이 아니라 어떤 정규직인지, 그냥 노동조합이 아니라 어떤 노동조합 활동을 할지 고민하던 조합원들에게 지지와 함께 격려를 보낸다. 당장 일터에서 비인격 대우와 차별을 없애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없애야 하는 일이 남아 있으니. 만도헬라가 두려워하는 것은 정규직이 아니라 노동조합이고, 진정 두려워하는 조직은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탁선호 _ 금속법률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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