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노동법이 휴식권을 노동자의 권리로 보장하는 목적은 장시간 노동에서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다. 시간은 ‘인간 발전의 공간’이다. 충분한 휴식은 일과 가정, 일과 여가를 양립할 수 있게 하고 민주주의의 실현 토대를 만든다.

휴일에 쉴 권리는 적정한 휴식시간의 보장, 자유로운 휴가 사용의 권리 등과 함께 노동자 휴식권의 중요한 구성 요소다. 노동법상 휴일은 통상의 근로일과 구별해,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명령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날로서, 계약상 애초부터 근로의무가 없는 날”로 정의하고 있다.

과연 한국의 노동자 휴일 제도는 노동자의 보편 기본권으로서 모든 노동자에게 차별 없이 평등하게 적용되고 있을까? 2018년 공휴일 수는 모두 69일이다. 1990년대 이후 역대 최대라고 한다. 노동자들은 공휴일을 온전히 누리고 있을까? 현재 법이 정한 노동자 휴일은 「근로기준법」 55조의 주휴일과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에 따른 노동절, 딱 이틀뿐이다. 시민들이 보통 공휴일이라고 부르고, 한국의 모든 달력이 빨간 날로 표시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른 공휴일에 대해 노동법은 쉬라고 정하지 않았다.

 

빨간 날 휴식? 노동자들에게 그림의 떡

공휴일 규정이 문제의 핵심이다. 시민들은 달력의 빨간 날을 한국 사회의 역사와 관습에 의한 보편 휴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법상으로 휴일이 아니다. 설과 추석날도, 한글날 같은 국가 기념일도, 최근 시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아 운용하는 대체공휴일도 모두 통상의 근로일이 될 수 있다. 휴일이 아니므로 공휴일에 노동을 제공했지만, 근로기준법 56조에 따른 휴일 가산수당이 발생하지 않는다. 노동자는 휴일을 보편 기본권으로 누리고 있지 못하다.

공휴일을 꼭 유급휴일로 지정해야 할 노동법상 의무는 없다는 인식이 사용자 사이에서 퍼지고, 이를 통한 유급휴일 축소 시도가 시작된 시점은 2000년대 중후반부터 이다. 특히 공휴일을 유급휴일에서 제외하는 노무관리 방식이 급격히 퍼진 시점은 2008년 이후부터다. 이런 방식을 정부에서 조장했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 시기 노동부는 「표준 취업규칙」(2008년) 안을 내놨다. 공휴일을 사업장 유급휴일에서 제외했다. 이명박 정부는 명절 연휴와 같은 공휴일에 연차휴가를 사용하게 하라는 안내까지 했다. 노동부 표준 취업규칙이 공휴일 연차휴가 사전 대체 제도를 악용하는 데 크게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때부터 파견업체를 중심으로 공휴일을 유급휴일에서 삭제하는 노무관리 유행이 번져나갔다. 2010년에 이르면 여러 노무법인이 공휴일을 유급휴일에서 삭제하는 취업규칙 정비 작업을 경쟁하며 벌였다고 한다. 유급휴일에서 공휴일을 제외하는 노무관리는 대부분 편법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통해 시행했다. 노사 관행으로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보장했던 사업장은 취업규칙을 새롭게 제정하는 방식으로, 기존 취업규칙에서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명시한 사업장은 노동자 과반수의 형식 동의를 강제하는 방식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했다.

 

공휴일을 모든 노동자의 유급휴일로

19대 국회에서 20대 국회까지 잠자고 있었던 공휴일 유급휴일 법제화 법안이 드디어 햇빛을 보게 됐다. 2월 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아래 환노위)가 삼일절·광복절·명절연휴 등 연 15일가량의 관공서 휴일을 모든 민간 노동자가 ‘돈 받고 쉬는 날’로 바꾸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환노위가 ‘휴일근로 중복할증’을 인정하지 않는 대신 공휴일 법정 유급휴일을 강행했다. 무엇보다 사업장 규모에 따른 단계 시행을 합의했다. 금속노조는 이번 결정을 온전히 환영할 수 없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2020년 1월 1일부터 적용하며, 30~299인 사업장은 2021년 1월 1일, 5~30인 사업장은 2022년 1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벌써 반대와 논란이 거세다.

공휴일의 법정 유급휴일화는 모든 노동자에게 필요한 제도이다. 특히 절실히 필요한 노동자는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고, 노동조합이나 단체협약 혜택을 받기 어려운 중소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 절대다수는 노조 없는 노동자,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파견업체에 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가장 열악한 노동조건에 놓인 노동자에게 휴일에 쉴 권리조차 차별하고 있다. 이번 환노위 결정으로 휴가․휴식의 양극화가 더욱 가중될 것이다.

최근 ‘직장 갑질 119’라는 온라인 플랫폼이 노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직장 갑질 119’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이메일 등을 통해 직장인이 회사에서 겪는 부당한 대우를 고발하도록 하고 있다. 회사의 ‘갑질’ 가운데 빠지지 않는 제보가 공휴일에 제대로 쉬지 못하는 박탈감이다. “이번 임시공휴일에 쉬라고 하고 월급을 차감했어요”, “연차는 1년 후 열다섯 개가 나온다고 알고 있는데, 법정 휴일 12개를 제외하고 실제로 쓸 수 있는 연차는 1년에 두 개 내지 세 개밖에 안 돼요”, “공휴일을 연차대체로 합의서를 받고 있는데, 알고도 대응방법을 몰라 그냥 사인할 수밖에 없어요” 등등. 휴일에 쉬지 못하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직장 갑질 119에 노동현장에서 겪는 부당한 차별을 호소하는 이들은 대부분은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다.

한국에서 노동법의 혜택을 우선 받아야 할 노동자가 누구인가. 노사 양자가 대등한 당사자로서 교섭할 수 없는 사업장, 계약 자유의 허울 아래 불공정한 계약을 노동자들에게 강제하는 사업장이다. 남들 다 쉬는 휴일에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함께 쉬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 한국 사회가 이 절실한 바람을 외면하면 안 된다. 공휴일의 법정 유급휴일화를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단계로 시행하면, 휴식권의 차별이 더욱 커질 것이다. 모든 노동자의 보편 쉴 권리를 확립하기 위한 차별 없는 공휴일 유급휴일 법제화를 위해 노동법을 다시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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