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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만이 GM의 횡포를 끝낼 수 있다[해설] GM의 글로벌 전략과 한국지엠 사태, 그리고 노동자
황현일 객원연구원  |  edit@ilabo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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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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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예상은 했다. GM이 언젠가 떠나거나, 공장 한두 개 정도 폐쇄할 것이라는 예상. 한국 정부, 한국인 경영진, 그리고 노조는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GM이 이 중대한 결정을 할 때 이들 가운데 어떤 이들도 사전에 영향을 줄 수 없었다. 수많은 노동자의 생계가 달린 이 결정에 관여한 유일한 집단은 GM의 경영진들뿐이었다.

GM이 먹고 튈 수 있다는 조짐은 대략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목격할 수 있었다. GM이 대우를 인수한 이후 10여 년간 한국지엠이 만들어낸 자동차는 꾸준히 증가하였다. 한국지엠은 2012년 완성차 80만 대, KD 생산 120만 대라는 기록적인 생산을 했다. 당연히 매출은 증가했다. 이상하게도 수익은 줄어들어 적자가 났다. 이러한 현상은 몇 해간 반복됐다.

이 사안에 관해 가장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던 이들은 노동조합이었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는 단체교섭과 자체 회계 분석을 통해 의혹을 제기하고 해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매번 ‘GM은 정당한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의혹 사항은 기밀이라서 말해줄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관리․감독 역할을 하는 산업은행, 세무 당국, 회계 기관 등은 GM의 경영에 간섭에 소극적이고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보였다. 노조의 의혹 제기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렇게 5~6년이 흐른 뒤 GM은 경영 불가침 권한을 발동해 한국 정부와 노동자에게 선전포고했다. 2018년 2월 13일, GM은 설 연휴를 코앞에 두고 정부 보조금과 구조조정이 없으면 신차를 주지 않겠다는 화살을 쏘아 올렸다. GMI(GM 총괄 해외사업본부) 사장 배리 앵글은 말끔한 정장을 빼입고 온화한 미소를 비추며 정중한 태도로 이러한 요구를 한국에 전했다. GM의 요구 내용과 방식을 보면 조폭이 총을 내밀면서 “돈 주면 팔 하나만 자르고 끝내줄게”라는 협박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한국지엠 사태의 원인

한국지엠 사태 원인에 관한 여러 진단이 관련 기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상황에 이르도록 별다른 대책이 없던 정부를 탓하는 진단이 있고, 한국지엠 고비용 구조의 원인을 노조탓으로 돌리는 진단이 있고, 한국지엠을 현금 인출기 정도로 생각하는 본사의 탓이라는 기사도 있다. 여러 주장에 일면의 진실이 있지만, 많은 과장을 섞어 현재의 사태를 이해하는데 혼란을 주는 주장도 있다.

현재 벌어지는 한국지엠 사태의 근본 원인은 ▲GM이 오랫동안 벌이고 있는 글로벌 전략 변화 ▲이 변화에 거의 개입할 수 없는 한국지엠의 상황이다.

   
▲ 현재 벌어지는 한국지엠 사태의 근본 원인은 ▲GM이 오랫동안 벌이고 있는 글로벌 전략 변화 ▲이 변화에 거의 개입할 수 없는 한국지엠의 상황이다. 2014년 메리 바라 회장 취임 이후 글로벌 GM이 노골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수익성’이다. 자동차 제작, 판매고 뭐고 간에 돈 되는 사업 중심으로 운영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자동차는 이윤이 높은 고급차, SUV, 픽업트럭 중심으로 생산한다. GM 차가 많이 팔리는 미국과 중국에 집중한다. 이에 따라 GM은 글로벌 조직을 축소, 재편해 왔다. 사진=신동준

2014년 메리 바라 회장 취임 이후 글로벌 GM이 노골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수익성’이다. 자동차 제작, 판매고 뭐고 간에 돈 되는 사업 중심으로 운영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자동차는 이윤이 높은 고급차, SUV, 픽업트럭 중심으로 생산한다. GM 차가 많이 팔리는 미국과 중국에 집중한다. 이에 따라 GM은 글로벌 조직을 축소, 재편해 왔다.

기업이 돈 되는 사업 쫓아간다는데 뭐라 할 말은 없다. GM이 4차 산업혁명의 선두가 되고 싶다 한들 말릴 방도가 없다. 문제는 GM이 정하는 사업 방향에 따라 자회사의 노동자와 관련 노동자들의 생사여탈이 달려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한 노동자 수가 적게는 15만 명, 많게는 30만 명으로 보고 있다. 한국지엠 사태의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수십만 명의 일자리가 달린 한국지엠이 GM의 글로벌 전장에서는 그저 장기판 위에 장기알 하나 정도로 취급받는다는 점이다. GM의 사업 결정 과정에서 한국지엠 관련 노동자는 자신의 운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에 관해 어떠한 개입도 불가능하다.

 

한국지엠은 어디로 갈까

GM이 정부를 들쑤셔놓는 바람에 한국지엠 문제는 세간의 관심사가 되면서 보다 복잡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각자 이해관계가 다른 정부, GM, 노조라는 주요 행위자를 중심으로 각종 쟁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주로 남미에서 활동해서 한국은커녕 아시아와 조그만 인연도 없었던 배리 앵글이라는 한 사람의 말에 한국에서 초국적 기업의 이전가격 문제, 모기업-자회사 간 불공정 거래, 산업은행의 역할, 일자리 문제, 탈산업화와 지역 경제 문제, 대기업 노조 문제, 하청과 비정규직 문제, 미래 자동차 전환 문제 등 굵직한 사안이 도마 위에 올랐다.

쟁점을 풀 때 정부-노조 관계의 변수가 크지만, 우선 정부-GM 관계와 GM-노조 관계가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GM 관계에 있어 쟁점은 GM의 보조금 요청에 따른 정부의 경영실사이다. 정부는 GM의 요구에 대해 ▲대주주의 책임 ▲이해관계자들의 고통 분담 ▲지속가능한 경영 정상화라는 3대 원칙을 설정했다. 이를 위한 첫 번째 작업이 한국지엠 경영실사이다.

이는 분명 의미 있고 필요한 조치이다. 일각에서 기대하는 것처럼 이번 경영실사를 통해 GM의 민낯이 드러나고, 이를 통해 GM과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것이라는 기대는 들지 않는다.

이번 실사의 주체가 특정 회계법인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회계법인과 기업 사이 모종의 유착 관계가 의심돼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번 실사는 현 정세상 어떤 회계법인이 맡아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본다. 이들은 회계의 세계 안에서 자기 일을 할 것이고, 회계의 세계는 현실 세계보다 기업의 이익을 감추는 데보다 관대해 보인다. 따라서 정부-GM 관계에서 경영 실사 결과보다 경영 실사 결과를 활용해 GM과 협상하는 정부의 정치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경영 실사 결과가 나오고 정부의 방침이 나오면 사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신차 배치와 구조조정의 교환이라는 문제는 GM과 노조가 끝까지 풀어야 하는 문제가 될 것이다.

두 가지 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교환의 대가이다. GM이 말한 신차 두 차종 배치는 한국지엠의 장기 지속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신차를 배정한들 차가 팔리지 않으면 장기지속은 보장되지 않는다. 출시 1년 만에 단종되는 군산공장의 올뉴크루즈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설령 10년 기한으로 생산보장을 합의해도, 이 약속은 철수하면 손쉽게 파기된다. 스페인 사라고사 공장이 그랬다.

   
▲ 이제 노동자들이 나서서 맞서야 할 때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한국지엠 노동자들에 관한 악의적인 기사가 많지만, 글로벌 GM의 악행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여론을 만들어낸 원동력은 GM의 경영에 지속해서 문제를 제기한 금속노조와 한국지엠지부이다. 노조의 연구 성과와 의혹 제기가 없었다면 정부의 GM에 대한 대응은 미지근했을 것이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만큼 GM을 잘 알고 대응할 수 있는 집단은 없다. 이번 기회에 공장 폐쇄를 볼모로 나랏돈, 쌈짓돈 모두 빼내려는 GM의 횡포를 끝장내야 한다. 사진=신동준

반면 신차 배치의 교환 조건들은 꽤 크다. 군산공장 폐쇄, 부평공장 통합, 정비 업무 외주화 등 고용과 직결되는 문제들이고, 임금 문제도 포함돼 있다. 불확실한 미래 전망을 보장하는 신차 배정을 대가로 노조가 양보해야 할 것들이 너무 커서 대등한 협상이라고 부르긴 어렵다.

둘째는 교환의 성격이다. GM과 노조의 이번 협상 결과로 물량을 보장받고 일정 정도의 고통 분담이 이루어지면서 해결된다면 추후 교섭도 이러한 양상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물량 배정을 대가로 노조가 끊임없는 고통 분담 요구를 받게 되는 방식의 교섭이 일반화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지엠 노사교섭에서 신차 배치 문제는 중요한 협상 안건이긴 했지만, 이제까지 이를 임금이나 고용 문제와 연계해 다루지는 않았다. 처음으로 이 두 사안이 연계한 사례는 2012~13년 군산공장이었으나, 비정규직에게 고통을 넘기는 방식으로 미봉됐다. 물량 배치를 무기로 노조에 양보를 요구하는 교섭이 한국에서 본격화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노동조합의 미래는

GM은 지난 30~40년 동안 이런 방식으로 노조를 압박해 양보를 구하는 데 능숙하다. GM 산하 노조에서 이 굴레를 끊은 사례를 찾기 어렵다. GM 자회사에서 벌어진 사례를 보면 크게 두 가지 대응 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방식은, GM 안에서 문제를 푸는 방식이다. GM이 만든 게임의 규칙을 인정하고, GM과 함께 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방식이다. 유럽의 노조들은 이 길을 선택했다. 이 방식에서 노사 교섭의 쟁점은 회사의 이익을 어떻게 배분할 것이냐가 아니라 고통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부담할 것인가이다. 지난 20년 동안 GM의 유럽 노조들은 이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당하면서 버텼다. GM의 매각으로 새로운 기업 PSA를 만나 악연을 끊을 수 있었다.

둘째 방식은 GM 밖에서 문제를 푸는 방식이다. GM과 결별하고 독자 생존 방안을 모색하는 방식이다. 이 방안은 노조 홀로 풀 수 없다. 정부나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독일 보훔공장 폐쇄가 이미 정해진 일이 되자 주 정부는 지역 경제를 살리는 동시에 보훔공장을 유지하기 위해 ‘보훔 희망 2022’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주 정부 장관, 경영진, 노조, 대학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로 작업팀을 구성해 지역의 미래 경제를 위해 전기차 생산, 산업 클러스터 형성 방안을 모색했다. 현재 한국지엠과 관련해 정부와 노조 주도 아래 독자 생존 방안을 모색하는 몇몇 대안이 나오고 있다. 이 길은 만만하지 않다. 자동차 기업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독자 자동차 기업을 육성하는 길은 다분히 이상적일 수 있다.

어떤 경로로 들어서든지 한국지엠의 노동자가 마주한 미래의 길은 험난하다. 묵묵히 현장에서 일하면서 가족과 일자리를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한 노동자들로서는 갑자기 불어 닥친 이 변화의 태풍이 버거울 수 있다. 어차피 더는 피해갈 수 없다.

이제 노동자들이 나서서 맞서야 할 때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한국지엠 노동자들에 관한 악의적인 기사가 많지만, 글로벌 GM의 악행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여론을 만들어낸 원동력은 GM의 경영에 지속해서 문제를 제기한 금속노조와 한국지엠지부이다.

노조의 연구 성과와 의혹 제기가 없었다면 정부의 GM에 대한 대응은 미지근했을 것이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만큼 GM을 잘 알고 대응할 수 있는 집단은 없다. 이번 기회에 공장 폐쇄를 볼모로 나랏돈, 쌈짓돈 모두 빼내려는 GM의 횡포를 끝장내야 한다.

황현일 _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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