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금속노조 조합원 중에는 산별노조의 조직형식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아 보인다. 이 사람들의 입장은 대체로 이전의 기업별 노조 시절로 돌아가는 게 옳지 않느냐는 적극적 반대의 입장에서 산별노조가 도대체 뭘 하는 곳인지 모르겠다는 소극적 반대의 입장까지 다양해 보인다. 산별노조에 대한 이런 불만들을 간추리면 이른바 '산별노조 무용론'과 '산별노조 만능론'으로 대별될 수 있다.

산별노조: 무용론 vs. 만능론

신동준 편집부장
'산별노조 무용론'과 '산별노조 만능론'이란 주장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가 없으면 또 다른 하나는 존재하기가 어려운 주장이다. ‘산별노조가 필요 없다’와 ‘산별노조가 모든 걸 다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은 밖으로 드러나기엔 전혀 달라 보여도 그 뿌리는 동일한 문제에서 출발하였을 뿐이다. 이 주장들은 노조운동의 현실을 무시하면서 산별노조의 '원형적 의미'(prototype)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매우 닮아 있다. 즉, 우리 노조운동이 놓인 현실적 조건과 역사성에 대한 인식부족이 빚은 결과이다.

금속노조가 기업별 노조에서 산별노조로 조직을 재편한 이유는 기업규모별 임금과 노동조건의 격차문제, 늘어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문제, 중소사업장 노조 조직의 유지조차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이다. 게다가 거대기업 노조들에서 마저 고용안정의 문제를 기업단위에서 더 이상 안고 가기가 벅찬 실정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산별노조로 전환하였지만 막상 해결될 기미와 징후마저 잘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다 보니 산별노조에 대한 불만과 비난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산별노조에 대한 비판이 목욕물을 버릴 때 애도 같이 버리는 식으로 닮아선 곤란하다.

노조조직형태의 변화과정

지구상에서 노조가 기업별로 조직된 경우는 한국과 일본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처음부터 기업별 노조로만 조직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이다.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이후 우리 노조는 산별노조로 조직되었고, 1970년대 초반까지 산별노조로 조직되었다. 박정희 정권의 1972년 ‘유신헌법’ 공포이후 1973년 노동조합법을 개정하면서 기업별 노조로의 조직화가 가능하도록 법률을 개정하였다. 당시 노동관계법의 개정은 노조운동을 하는 주체인 당사자의 의지가 아니라 독재정권의 일방적 요구에 따른 결과였다. 이렇게 태동한 기업별노조라는 조직체계는 노조운동의 주체이자 당사자들인 노동자들의 의식과 행위선택에도 이후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 11월23일 열린 조합 25차 임시대의원대회에 참석한 대의원들이 대회에 앞서 '단결'투쟁가를 부르고 있다. 신동준 편집부장

1970년대 말에 등장한 민주노조운동이 어용노조인 산별중앙에 대한 부정에서 출발하였듯이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후 등장한 민주노조들에서 기업단위의 조직형태는 노조운동에서 어용관료들을 차단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이었다. 게다가 노조조직을 건설하는 행위마저 빨갱이로 몰리면서 이단시 되었던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에서 기업단위의 노조조직건설은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책이었다. 다시 말해 기업별 노조조직은 노동자들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보장하면서 매우 신속하게 조직을 건설할 수 있는 제도로 받아 들여 졌다. 이 과정에서 기업별 조직형태는 기업단위의 고용여부에 따라 조합원자격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는 사실은 노조건설의 시급성과 당위성에 밀려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기업의 종업원에게만 조합원의 자격이 부여되는 문제는 노조운동이 자본과 국가를 상대로 공세적 위치에 놓일 수가 없는 구조적 한계로까지 되었고, 현재는 노동자 내부의 격차문제와 더불어 전체 노동자계급의 요구보다 거대기업 노동자의 요구가 앞에 놓이는 기이한 현상마저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정상과 비정상의 판단근거

기업별 노조조직은 과연 정상적인 조직형태일까? 지금 당장 몸에 익숙하고 친밀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변화를 적게 가져가는 게 옳다고 누군가 주장하거나, 산별노조를 비정상적인 조직형태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면, 우리는 이걸 도대체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리 회사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에겐 노동자적인 인식과 세계관이 무엇이냐고 따져보아야 하듯이, 기업별 노조로 되돌아가려고 산별노조를 비난하는 이들에게 과연 노조를 무엇 때문에 만들었는지 물어 보아야 한다. 그러나 산별노조에게 많은 희망을 걸었지만 무기력한 현실에서 급격한 실망감을 느끼는 노동자들에겐 우리 노조운동이 거쳐 온 역사를 한번쯤 곱씹어 보면서 좀 더 긴 호흡을 가지길 권한다. 왜냐면 금속노조에서 기업지부의 조직전환문제가 이렇게 길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쩌면 상층 지도부 몇몇의 능력부족보다 우리 노조운동이 지닌 역사성과 현실적 조건에서 찾는 게 정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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