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현장에서 일하다 다치고 병든 노동자는 누구나 완전히 치료받고, 재활을 거쳐 원활하게 직장에 복귀하고 싶다는 염원을 품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산재로 치료받는 동안에 많은 노동자가 직장 복귀나 생계문제에 봉착한다. 충분한 재활과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산재노동자가 온전하게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은 때론 극단적인 사태를 낳는다.

1999년 6월 22일, 대우중공업 국민차 사업부에서 일하던 산재노동자 이상관이 치료를 받다가 근로복지공단의 횡포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1994년 창원 대우중공업 국민차 사업부에 입사한 이상관 열사는 1999년 2월 약 35kg의 장비를 옮기다 허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했지만, 다 낫기도 전에 사측과 공단으로부터 퇴원을 강요받았다. 이상관 열사 아버지가 근로복지공단을 찾아가 ‘걸음도 못 걷는데 두 달 정도 입원치료를 받게 해 달라’라고 호소했으나 거절당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창원지회 조합원들이 지난 6월 21일 공장 안에서 이상관 열사 18주기 추모제 치르고 있다. 지회 제공

이상관 열사는 힘겹게 통원치료를 받던 중 ‘예전의 저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중략)… 몸이 아프다는 게 이렇게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인 줄 비로소 알 것 같습니다. …(중략)… 다시는 나 같은 노동자가 없기를 바랍니다’라는 유서를 남겼다. 이상관 열사는 육체의 고통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유서로 전하고 1999년 6월 22일 세상을 등졌다.

대우중공업노동조합과 노동안전보건단체, 학생운동 조직은 즉시 ‘이상관 열사 자살 책임자 처벌과 근로복지공단 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를 꾸리고 서울 영등포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유가족인 아버님과 농성을 전개했다.

공대위는 “근로복지공단이 자살을 방조한 책임이 있으므로 산재로 인정하고 유족연금을 지급하라”라고 요구했다. 공대위는 이상관 열사 자살과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근로복지공단을 노동자 중심의 복지공단으로 개혁하라”라고 촉구하며 투쟁했다.

보험료 줄이기에 급급한 관료주의 업무처리와 형식뿐인 자문의 제도 때문에 이상관 열사가 끝내 목숨을 끊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1999년 7월 7일, ‘산재추방과 노동자 건강권 사수를 위한 마창지역 공대위’는 근로복지공단 창원지사 항의집회를 시작으로 투쟁에 돌입했다.

이상관 열사 투쟁은 단순 산재인정 투쟁이 아니었다. 치료 중이나 업무 중 자살을 폭넓게 산재로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투쟁이었다. 공단의 무리한 불승인 남발에 대해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투쟁이었다. 공대위는 1999년 하반기 끊임없이 집회와 투쟁을 벌였다. 7월 27일부터 노동안전보건운동 진영이 155일의 철야농성, 노숙 단식 투쟁을 전개했다. 마침내 12월 말 온갖 비바람과 추위를 겪은 후에야 155일 투쟁의 마침표를 찍었다.

18년이 지난 지금, 이상관 열사 투쟁의 성과로 산재 인정 범위가 약간 넓어지고 있다. 여전히 현장에서는 새로운 질병을 산재로 인정하지 않고, 치료를 제한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매년 흑자를 유지하면서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기준을 정해 적용한다. 공단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치료받을 권리를 제한하고, 심사를 까다롭게 해서 산재보험 인정에 진입장벽을 만든다.

아직 비정규직, 영세노동자의 치료받을 권리, 산재노동자의 재활과 현장복귀는 18년 전 투쟁 때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리는 저임금, 알바노동자는 치료보다 생계문제가 우선일 수밖에 없다. 치료를 받고 싶어도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묵묵히 일만 하다 과로로 쓰러지거나 골병들어간다.

특히 노동자성을 부정당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늘어나는 상황에 맞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신속하게 개정해야 한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산재보험을 즉각 적용받고, 건강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

요즘 모든 사람이 노동시간을 줄이고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자고 한다. 이렇게 살기 위해 노동자들의 노력과 현장투쟁이 더 필요하다. 이제 더는 노동자들이 아프고 병들어 힘들지 않은 노동현장, 사망이 없는 노동현장을 만들어야 한다. 모든 노동자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날을 위해 오늘도 힘차게 투쟁의 한길에 나서자.

김재천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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