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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는 재벌이데올로기를 깰 수 있을까[미디어 속내 45] 현실 재벌의 갑질과 드라마 속 재벌의 갑질
김세옥  |  edit@ilabo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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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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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드라마 <비밀의 숲>(tvN)에서 인상적으로 본 장면이 있다. 여성의 손목을 잡아끄는 남성을 향해 주인공 시목(조승우)이 “그건 폭력”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여성의 손목을 잡아끄는 남성의 모습은 오랫동안 로맨스 혹은 남성의 분노를 표현하는 장치로 문제의식 없이 등장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성 평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여성을 다루는 미디어의 모습을 둘러싼 토론이 이어지며, 그간 드라마에서 상투적으로 등장시킨 손목 잡아끌기에 불편함을 표시하는 목소리들이 늘었다.

이런 흐름에서 극 중 인물의 입으로 여성의 손목을 잡아끄는 행위에 대해 “폭력”이라고 지적하는 장면이 등장한 건 주목할 만하다. 손목 잡아끌기 정도는 괜찮다는 고정관념을 생산하는데 일조했던 드라마가 그건 폭력이라며 고정관념에 균열을 내는 주체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 채널을 돌리다 본 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SBS)의 또 다른 장면이 있다. 극의 배경이 되는 공룡그룹 루비화장품의 팀장인 양달희(다솜)의 뒤통수를 회장 어머니인 사군자(김수미)가 들고 있던 백으로 내리치는 장면이었다.

악인 캐릭터인 양달희의 무례한 태도를 여러 차례 목격한 사군자가 “넌 쓰리아웃”이라며 양달희를 혼내는 설정인데, 이를 본 많은 시청자는 “사이다 장면”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방송사로부터 받은 영상을 게시하는 포털사이트에서도 이 장면을 담은 영상에 ‘착한 갑질’이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장면을 그냥 ‘사이다’로 소비하며 즐기기만 하면 되는 걸까. 이 질문에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이유는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배경에 인물 각자의 지위가 있기 때문이다. 양달희가 업무공간에서 사군자에게 뒤통수를 여러 차례 맞아도 헤실헤실 웃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군자가 회장의 어머니, 즉 오너 일가이기 때문이다.

   
▲ 현실에서 재벌 오너, 일가의 노동자에 대한 폭언과 폭력은 큰 논란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 일례로 최태원 SK회장의 사촌동생 최철원 M&M 전 대표의 화물노동자 ‘매 값 폭행’(2010년)이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2014년) 등의 재벌 갑질 사건들은 주인공과 세부 모양새만 다를 뿐, 반복되고 있다.

현실에서 재벌 오너, 일가의 노동자에 대한 폭언과 폭력은 큰 논란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 일례로 최태원 SK회장의 사촌동생 최철원 M&M 전 대표의 화물노동자 ‘맷값 폭행’(2010년)이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2014년) 등의 재벌 갑질 사건들은 주인공과 세부 모양새만 다를 뿐, 반복되고 있다.

최근 불거진 이장한 종근당 회장의 운전기사 폭언․폭행 논란과 같은 ‘갑질’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많은 사례가 알려졌다. 노동자에 대한 ‘오너, 가족 갑질’을 개인의 일탈로 볼 수 없는 현실이다.

신분제는 오래전 철폐됐다. 하지만 재벌 등 한국 사회의 경제 강자들은 법률이 보장하는 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도 여전한 위세를 떨칠 수 있을 만큼 노동에 대한 ‘권리 보장이 없는(No guarantee of rights)’ 현실을 양껏 누리고 있다.

반면 많은 노동자는 법률이 보장한 노동권 보장은커녕, 두 명 중 한 명은 비정규직인 불안한 신분으로 재벌 등 경제 강자들의 갑질을 견딜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언니는 살아있다>의 한 장면에선 구필모(손창민) 회장이 자신이 좋아하는 민들레(장서희)가 돌보던 아이가 행방불명되자 그룹의 전 직원에게 아이를 찾으라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한다. 하지만 이런 장면은 오너의 사적인 일에 직원을 동원하는 ‘갑질’에 대한 비판이나 풍자가 아닌 로맨스의 장치로 활용될 뿐이다.

최근 장르의 다양화 속에서 변화가 있긴 하지만, 여전히 많은 한국 드라마들이 재벌을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설정한다. 현실의 재벌들이 2~3세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처럼, 드라마 속에서도 재벌 2~3세로 설정된 주인공들이 까칠하지만 연인에게만은 애틋한 로맨스를 펼치며 인기를 끈다.

하지만 왜 재벌들에게 대대손손 부의 상속과 소유가 당연시되는지에 대한 의문은 재벌 등 권력의 문제를 주제로 설정한 일부 드라마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그러나 현실에선 1%도 되지 않는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재벌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대통령과 주변 권력에 로비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혹자는 말한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재벌 등 경제 강자들의 노동자에 대한 잔혹한 형태의 갑질 행위나 불법 탈법의 경영권 승계 등의 문제는 현실 공론장에서 투명하게 공개돼 개선책을 찾아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드라마의 ‘사이다’ 전개나 로맨스를 위해 재벌의 갑질에 고민 없이 착하다는 형용사를 덧대거나 대대손손 이어지는 재벌의 부를 당연시 설정하는 일이 계속될 때, 재벌 등 경제 강자들이 만드는 현실의 문제들은 그만큼 둔감하게 수용될 수 있다.

문재인 새 정부가 재벌개혁을 화두로 내세운 지금 한국의 드라마는 재벌 이데올로기의 공고화와 균열 중 어느 쪽으로 움직일까.

김세옥 미디어 관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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