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들에게 공장은 단순히 돈을 좀 더 많이 벌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아무 때나 공장 문을 닫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게 공장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공간이 아니다. 지난 해 쌍용차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일하고 싶다고 요구하며 77일 동안 공장을 지켰다. 경주 발레오만도 사측은 ‘직장폐쇄’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을 공장 밖으로 쫓아냈다. 그리고 서울 성수동, 공장을 폐업하고 도망간 사장 때문에 1년 넘게 공장을 지키고 있는 한국캅셀 노동자들이 있다. 6일 서울지부 동부지역지회 한국캅셀의 문화제가 열리던 날 동부지역지회 김태을 지회장을 만났다.

기업사냥꾼이 훔쳐간 노동자의 일터

▲ 6일 뚝섬역 앞에서 진행된 한국캅셀문화제에서 만난 김태을 지회장
한국캅셀공업(주)은 의약용 공캅셀을 만드는 회사다. 국내에서 공캅셀을 만드는 회사는 한국캅셀을 포함해 두 곳 뿐이다. 한국캅셀은 30년 된 회사로 노동자들도 대부분 10년~20년 넘게 일한 장기근속자들이다. 이 곳 노동자들이 금속노조에 가입한 것은 2007년, 주5일제를 시행한 뒤 최저임금도 되지 않던 임금이 더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노조를 만들고 1년 후인 2008년 7월 회사 사장이 바뀌었다. 김 지회장과 조합원들은 새롭게 온 이강찬 사장을 ‘기업사냥꾼’이라고 입 모아 말한다. 이강찬 사장은 ‘무자본 인수방식’을 통해 한국캅셀을 인수했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려 기업을 인수한 후 회사 돈으로 이를 되갚는 것이다. 실제 한국캅셀은 사장 변경 이전 부채 20억 정도의 우량기업이었다. 하지만 이강찬 사장은 공장 땅을 담보로 제2금융권과 개인사채업자들에게서 50억원의 돈을 빌렸다. 이 돈으로 사장은 공장 투자를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자기 명의의 회사 주식을 사들였던 것.

“회사를 인수하고나서 사장 얼굴 한 번 제대로 본 적이 없었어요. 심지어 마젤라컨설팅이라는 유령회사를 만들어서 회사 자산을 그쪽으로 빼돌렸어요. 유령회사의 대표이사도 이강찬이었구요” 김지회장은 사장이 공장 인수 직후부터 토지매각을 위해 부동산 업체와 협의하는 등 회사를 운영하기 위한 의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전한다.

사장은 2008년 10월부터 공장 전기세, 수도세 등 각종 공과금과 노동자들의 4대보험료도 납부하지 않았다. 2009년 3월부터는 노동자들의 임금도 지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그 해 4월 7일 전기가 끊기고 공장 가동이 중단됐다. 사장은 노동자들에게 사전에 한마디 말도 없이 4월 28일 폐업을 통보했고 한국캅셀 70명 노동자는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사장은 잠적해버렸고, 사장이 돈을 빌렸던 은행에서는 공장을 경매로 넘겼다. 그리고 2010년 1월 부동산개발업체인 로임(주)이 공장을 인수하고 그 자리에 아파트형 공장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1년 동안 공장과 기계를 지키고 있던 캅셀 노동자들은 올 4월 16일 200여 명의 용역깡패에게 떠밀려 공장 밖으로 밀려났다. 2년 동안 공장의 주인이 3번이나 바뀌었지만 그 누구도 노동자들의 삶을 책임지려고는 하지 않았다.

▲ 4월 16일 캅셀 조합원들을 공장 밖으로 몰아낸 용역깡패들은 여전히 공장 안에서 조합원들 감시하고 있다.

사장, 노동자 4대보험마저 미납

사장이 잠적하고 난 후 조합원들은 공장을 다시 돌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전기도 끊기고 물도 나오지 않았지만 누가 기계를 가져가기라도 할 새라 공장을 지키는 것도 노동자들의 몫이었다.

“노동부, 구청, 경찰서.. 안 가본 곳이 없어요. 회사 주주들까지 쫓아다녀봤어요. 그런데 가는 곳마다 ‘사장이 회사를 팔았으니 어쩔 수 없다, 여기랑은 상관없으니 다른 곳으로 가봐라’라는 말 뿐이었어요” 조합원들은 공장을 경매에 넘긴 은행도 찾아갔다. 기계도 있고 노동자들이 모두 있으니 은행에서 투자만 해준다면 노동자들이 공장을 돌리고 돈을 갚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결국 경매는 진행됐고 공장은 로임(주) 차지가 되었다. 이강찬 사장을 배임횡령죄로 고소했고 현재 중앙지검에서 이 사건에 대해 다시 수사하라는 재기수사명령이 나와있는 상태다. 결과가 어찌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강찬 사장 꼭 잡아서 벌 받게 해야해”라는 조합원들의 외침이 그간의 설움을 말해주는 것 같다.

돌아가지 않는 공장을 지키는 1년 동안 조합원들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이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였다. 김 지회장은 용역깡패가 들이닥쳐 공장에서 내쫓기던 순간 용역 뒤에 서있는 경찰들을 보며 마치 자신들이 범죄자가 된 것 같았다고 했다. 이성적으로 해결해보자고, 대화를 하자고 아무리 요청해도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었다.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자꾸만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결국 조합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투쟁밖에 없었다.

▲ 조합원들이 문화제에서 캅셀 투쟁을 담은 시 '우리는 껍데기를 만든다'를 읽고 있다.

“투쟁을 같이 하지 못하고 떠난 사람 중에서도 아직도 재취업을 못하고 공장 주변을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혹시라도 공장이 다시 돌아갈까봐...” 국내에 캅셀을 만드는 회사가 2곳 뿐이다보니 한국캅셀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이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10년 넘게 익힌 기술이지만 알아주는 곳은 없다. 내가 다니고 있는 이 회사가 전부라고 생각하고 일만 열심히 했던 사람들. 이들이 대접받지 못하고 오히려 범죄자처럼 내쫓기는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10년 넘은 기술, 알아주는 곳 없다

요즘 서울 성수동에는 이전 공장을 헐고 아파트형 공장을 세우는 곳이 많다. 캅셀 공장 옆에도 10층이 넘는 아파트형 공장이 한창 지어지고 있다. 그 자리에 있던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김 지회장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 투쟁이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지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용역들이 들어와 폭력적으로 내쫓는 상황이 계속해서 일어날 수도 있어요. 그것만큼은 막아야죠” 아파트형 공장 건설 등이 계속된다면 캅셀에서의 상황이 언제든지 재발될 수 있다. “우리 캅셀 노동자들이 지역사회에서 발생하는 투쟁에 불씨를 지폈다고 기억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용역깡패가 조합원들을 공장 밖으로 내몰고 난 후 다시 공장 밖에 천막을 쳤다. 매 주 목요일마다 촛불문화제도 진행하며 다시 투쟁의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하지만 5월 16일까지 천막을 철거하라는 계고장이 나온 상태라 조만간 조합원들의 보금자리를 또 빼앗길지도 모른다.

“나는 법을 잘 모릅니다. 나는 50년 넘게 내가 알고 있는 도덕과 규범으로 살았습니다. 그 도덕, 규범 지키려면 끝까지 열심히 싸워야죠” 6일 촛불문화제에서 마이크를 잡은 캅셀 노동자의 말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공장을 돌리겠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일하던 공장에서 용역을 내보내고 다시 돌아가 일하고 싶다는 것이다.

우린 껍데기를 만든다
                                                                                  김성만

우린 껍데기를 만든다
그 껍데기 안에는 세상 아픔이 치유되는 약이 담아지게끔
손톱보다 더 작게 공간이 비어있는 약 캡슐을

내가 만든 껍데기는 사람들의 아픔에 보드랍게 다가갔을 터이고
그 안에 빈 공간은 내 가난한 삶의 작은 웃음을 채우는 소중함이었다

껍데기를 만들어온 삶터지만 내겐 너무도 소중한 곳을
악덕 기업사냥꾼은 고의적으로 부도를 내고 도망쳐버렸고
공권력은 그 껍데기 같은 자본가를 처벌하긴 커녕 시주단지 모시듯 했다

내가 일을 하겠다고 머무르며 껍데기 된 공장을 지키고 있을 때
경찰과 용역깡패들은 작은 캡슐 같은 숨 쉬는 공간마저 내게서 뺏어가 버렸다
30년을 넘게 껍데기를 만들게 하더니 나를 껍데기 취급하기 시작했다

그래 난 껍데기였다
너희들이 그 껍데기마저 짓밟고 빼앗아 가려 할 때
우린 이 작은 가슴 안에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채워넣기 시작했고
노동조합을 만들어 채워나간다

일을 빼앗긴 수년동안 내 껍데기에 채워진 노동자라는 이름이
병마처럼 남았던 노예 근성을 치유할 수 있었고 함께라는 것도 알았다

다시 껍데기를 채우겠다
노동자로 일을 하기 위하여 작은 팔뚝질도 멈추지 않겠다
아우성도 노래도 가열차게
상처 가득한 가슴속에 승리라는 것이 채워지는 날까지 알갱이를 채워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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