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합원들은 죽을 각오로 절대 포기하지 않고 싸울 겁니다. 조합원들이 열심히 싸우는 모습에 힘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정리해고 당한 당사자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 안에 있는 조합원들도 동지를 보고 힘내고 있습니다.”

금속노조 포항지부 사무실에서 엠피이엔씨지회(지회장 김학수, 아래 지회) 조합원들과 벌인 인터뷰는 훈훈했다. 3016년 9월 정리해고를 당해 11월부터 노조 포항지부 조직차장으로 일하는 김대영 조합원이 먼저 “조합원들 보며 힘을 받고 있다”고 건네자 김학수 지회장은 “조합원들도 김대영 동지를 보면서 힘내고 있다”고 화답했다.

지회는 2006년 포스코 점거농성 이후 처음으로 포항지역 포스코 하청업체에 태어난 금속노조 사업장이다. 과거 금속노조에 가입한 포스코 하청업체들이 그랬듯 지회는 정리해고, 노조탈퇴 종용, 재계약을 빌미로 한 협박 등 수많은 어려운 고비 속에서 투쟁하고 있다. 어려움 속에서도 지회는 “반드시 승리해서 포항지역 포스코 하청업체에서 금속노조 깃발을 지키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정치인 출신 대표이사, 취임하자마자 갑질 시작

엠피이엔씨는 포스코로부터 철강 폐기물을 공급받아 미니 팔레트(철제 운반대)를 생산하는 사내하청업체다. 지회를 설립한 계기를 돌이켜보면 정치인 출신인 공원식 대표이사 취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김학수 노조 포항지부 엠피이엔씨지회장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우리 싸움을 계기로 포항에 있는 포스코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이 금속노조에 가입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포항=김경훈

포항시의회 의장, 경상북도 정무부지사, 이명박 대선후보 정책특보 등을 역임한 공원식은 2008년 엠피이엔씨(당시 광일기업)를 인수해 자신의 후배, 친구 등을 앞세워 회사를 운영하다 2015년 직접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뒤에 물러나 있던 공원식이 직접 나선 원인은 노동자들의 요구였다. 김대영 조직차장은 “바지사장은 실권이 없으니 차라리 오너가 직접 나오면 나을 거라고 판단했다”며 “노사협의회에서 ‘공원식이 직접 대표이사로 취임하라’고 요구했다”고 회상했다. 공원식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금품을 유포한 혐의로 정치에서 물러나야 하는 시기였다. 노조 요구를 수용해 직접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공원식 대표이사 취임 이후 노사관계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김학수 지회장은 “그 전에 있던 대표이사들은 그나마 말이 통했는데 공원식은 취임하자마자 갑질을 했다”고 비판했다. 공원식은 노동자와 상의 없이 일방으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배치전환, 상여금 200% 삭감 등을 추진했다. 휴가, 경조사비, 복지카드 등 복지혜택을 축소하고 연차휴가 사용까지 막았다.

견디다 못한 노동자 스물한 명은 2016년 1월 엠피이엔씨노조(아래 노조)를 설립했다. 김대영 조직차장은 “노조를 만들기 전부터 금속노조에 가입할 생각으로 민주노총 문을 두드렸다”며 “포스코의 노무관리가 워낙 막강하니 일단 기업노조로 출발했다”고 덧붙였다. 노조를 설립하자 엠피이엔씨는 일방 배치전환을 한층 강도 높게 추진했다. 정비를 해본 적 없는 노동자를 정비부서로 보내는 등 근거 없는 인사이동을 자주 시행했다.

노조를 만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한 사건은 노조의 위기감을 부추겼다. 엠피이엔씨는 손도윤 당시 노조 부위원장이 술자리에서 했던 말을 문제 삼아 2016년 5월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고 손도윤 부위원장을 해고했다. 손도윤 부위원장은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서 승소해 그해 7월 복직했지만, 결국 오래지 않아 회사를 그만뒀다.

정광국 지회 사무장은 “술자리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굳이 인사위원회를 열어 해고까지 할 문제가 아니었다”며 “엠피이엔씨가 과거에 하지 않던 일을 벌이며 노조를 탄압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비판했다.

 

부당 정리해고에 금속노조 가입

엠피이엔씨는 그 무렵 조합원과 개별 접촉해 정리해고를 강행하겠다고 암시했다. 손도윤 부위원장 해고에 불안감을 느끼던 노조가 정리해고에 맞서 2016년 9월8일과 13일, 두 시간 경고파업을 벌이자 엠피이엔씨는 김대영 조직차장 등 지회 조합원 세 명을 해고했다. 노조는 그해 11월 금속노조 지회로 전환해 임금협약과 단체협약을 맺었다.

▲ 엠피이엔씨지회 해고자인 김대영 포항지부 조직차장이 “우리 조합원들은 죽을 각오로 절대 포기하지 않고 싸울 것이다. 조합원들이 열심히 싸우는 모습에 많이 힘을 받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포항=김경훈

기업노조에서 금속노조로 전환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김학수 지회장은 “공원식 대표이사가 워낙 대단한 사람이라 조합원들이 많이 분노했고, 끝까지 가보자는 심정이었다”며 “만장일치로 금속노조 전환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정광국 사무장은 “공원식 대표이사는 팀장이나 여직원에게 막말하고, 한 번씩 손찌검도 한다”며 “정치를 하던 시절부터 그렇게 살아왔다”고 거들었다.

공원식은 2013년 경북관광공사 사장으로 일할 당시 “골프장 프런트 여직원은 예쁘고 젊고 늘씬해야 한다”는 성차별 폭언으로 말썽을 부렸다. 골프장 여직원을 채용할 때 외모와 나이를 기준으로 뽑아야 한다는 취지로 관련 부서장에게 했던 말이었다.

경북관광공사노조는 이 발언과 공원식이 일방으로 추진한 임금삭감, 구조조정, 부당인사 등을 이유로 퇴진운동을 펼쳤다. 공원식은 2014년 6월 지방선거에 포항시장 예비후보에 등록했지만 금품을 유포한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살았다. 죄질이 나쁜 범죄자다.

 

2006년 포스코 점거농성 이후 하청업체 노조탄압 강화

포항에 있는 포스코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금속노조 가입은 어려운 일이다. 과거 에스엔지, 레스코, 제철세라믹 등 포스코 하청업체 네 곳이 노조 포항지부 사업장이었지만 지금은 모두 노조 사업장이 아니다.

이상섭 노조 포항지부 사무국장은 “포스코는 보통 1, 2년에 한 번씩 공개입찰로 계약을 갱신하는데 하청업체에 노조가 생기면 재계약을 거부하고, 사장을 날리고, 사내하청업체를 공단 밖으로 내쫓는 등 온갖 방법으로 노조를 깬다. 아직 포스코의 노무관리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엠피이엔씨가 지난해 단행한 정리해고는 2016년 2월 포스코가 하청업체를 모아 주재한 회의에서 결정한 사항이다. 포스코는 당시 회의에서 엠피이엔씨 인원 45명 중 11명을 2018년 12월31일까지 시기별로 감원하기로 결정했다.

포스코가 하청업체 노무관리를 지금처럼 강화한 계기는 2006년 포스코 점거 농성이었다. 포항건설노조(현 전국플랜트건설노조 포항지부)는 그해 7월1일 ▲주 5일제 시행 ▲불법다단계하도급 철폐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포항건설노조가 7월13일 포스코의 대체인력 투입을 규탄하며 항의 방문하는 과정에서 조합원 1,500여 명이 포스코를 점거했다.

조합원들은 사회의 비판에 떠밀려 8일 만에 자진해산했다. 포스코 점거농성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포스코의 하청업체 노무관리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상섭 사무국장은 “그때부터 포스코가 하청업체 노무관리에 직접 개입해 노조 설립을 미리 막았다”며 “점거농성 이후 포항에서 금속노조에 가입한 포스코 하청업체가 없다”고 설명했다.

포스코가 강력하게 하청업체 노조를 관리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다. 포스코는 2000년 민영화 이후 계속 대규모 외주화를 추진했고, 이에 따라 포스코 소속이다 하청업체 소속으로 바뀐 노동자들이 불만을 품고 있다. 이상섭 사무국장은 “포스코가 외주화를 하면서 하청업체와 포스코가 임금보전을 하겠다고 합의했는데 잘 지키지 않았다”며 “몇몇 노동자들이 포스코에 합의를 지키라는 소송을 하고, 근로자지위확인 소송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개개인의 불만이 조직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2006년 포스코 점거 사태 이후 몇몇 포스코 하청업체들이 노조 설립을 위해 상담을 받았지만 노조 설립 이전에 포스코가 미리 알고 저지하곤 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포스코의 다른 하청업체들이 지회 투쟁에 많은 관심을 두고 지켜보고 있다. 김학수 지회장은 “주변에서 ‘인원도 적은데 씩씩하게 오래 싸운다’는 말을 듣고 있다”며 “다만 아직 금속노조에 가입하려는 업체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상섭 사무국장은 “포스코의 막강한 노무관리를 뚫기 쉽지 않다”면서도 “이번 기회에 포스코의 다른 하청업체 노동자들도 각성하고 함께 금속노조로 뭉쳐 싸우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엠피이엔씨, 중노위 판정 이행 않고 행정소송 제기

중앙노동위원회(아래 중노위)는 올해 4월 김대영 조직차장에 대한 정리해고가 부당해고라고 판정하고, 원직 복직과 해고기간 임금 지급을 주문했다. ▲긴박한 경영상 필요 ▲해고 회피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따른 대상자 선정 등 정리해고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취지다. 엠피이엔씨는 중노위 판정을 이행하지 않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지회는 5월16일부터 매일 중노위 부당해고 판정 이행과 부당노동행위 중단을 촉구하는 포스코 앞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지회 투쟁의 변수는 6월 말에 결정될 포스코와 업체 재계약 여부다. 이상섭 사무국장은 “재계약 여부는 판단하기 어렵다”면서 “다만 공원식 대표이사가 오랫동안 지역에서 정치했기 때문에 재계약을 하지 않아 이런저런 말이 나오면 포스코에게 부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회는 재계약이 되지 않을 경우라도 끝까지 싸우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김학수 지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우리 싸움을 계기로 포항에 있는 포스코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이 금속노조에 가입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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