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락모락 김 오르는 쌀밥에 걸쳐 먹으면 제 맛인 깻잎김치, 지글지글 삼겹살에 쌈장 찍고 마늘 얹어 싸 먹으면 최고인 깻잎, 막걸리 안주로 제격인 깻잎 튀김까지. 입안에 군침 돌게 하는 깻잎은 한국사람 밥상에 없어서는 안 되는 채소 중 하나다.

최근 깻잎 먹기 불편한 마음이 생긴 사건이 벌어졌다. 밀양의 깻잎 농장에서 일하던 캄보디아 여성들이 농장주가 월급 제대로 주지 않아서 다른 일자리를 찾고 싶다며 상담하러 왔다. 새삼 누군가의 노동으로 농산물이 우리 손에, 입에 들어온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밀양 깻잎이 입속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 캄보디아 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 30분에서 11시간 동안 일했다. 정말 뜨거웠던 올해 여름 비닐하우스에서 땀을 줄줄 흘렸다. <자료사진>

한 노동자는 100만원만 받았다. 다른 사업주에게 고용된 이는 123만원을 받았다. 월급이 차이나는 이유는 숙박비였다. 컨테이너 박스에서 사는데 한 달에 23만원이나 냈다. 1년 이상 일한 이들이 ‘제대로’ 계산했을 때 받아야 할 임금은 600만원이 넘었다. 계약서에 휴게시간이 3시간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노동자들은 점심시간 한 시간만 쉬었을 뿐이다.

노동부에 진정을 내고 출석일에 동행했다. 어떤 표독스런 농장주가 나올까 생각했지만 그저 내 아버지 같은 굵은 주름과 그을린 얼굴의 농사꾼이었다. 이 농장주는 걱정이 되었는지 젊은 사위와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몇 번 당해봤다’는 이웃을 대동했다.

우리는 실제 근로시간은 계약서와 다르다고 주장하며 정리해 둔 근무시간 기록을 제출했다. 농장주에게 근무시간 기록 같은 건 없었다. 한국어와 캄보디아어로 쓰인 서류 한 장을 제출하였는데 여기에 내가 같이 갔던 캄보디아노동자의 사인이 떡 하니 있었다. 본인 것이 맞다고 했다.

서류 이름은 근로확인서. 여러 말들이 쓰여 있는데 그중에서 사업주가 가리킨 것은 ‘농업의 특성에 따라 근로자는 휴게시간을 분할하여 사용한다’는 문구였다. 휴게시간으로 점심시간 한 시간밖에 못썼다는 노동자에게 농장주는 “왜 자유롭게 쉬지 않고 그 시간에 일을 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황당해 하는 노동자는 “당신이 쉬지 말고 일 하라고 했잖아”라고 통역자를 통해 전했다.

▲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제약하기 위해 이러한 꼼수를 썼던 버스 안의 ‘그 여성’과 업무대행을 돈 주고 맡겼던 농장주를 진지하게 조사하고 문제를 파헤쳐야 할 노동부 근로감독관은 “캄보디아어로 적혀 있는데 이 내용을 몰랐느냐, 왜 서명을 했느냐”며 노동자를 압박했다. 더 화나는 일은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사장처럼 이주노동자들을 “애들, 애들” 이라고 불렀다. <자료사진>

근로확인서에 서명한 경위를 들어보니 한국에 처음 입국하여 경기도에서 2박3일 숙박 교육을 받고 버스를 타고 밀양으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어떤 한국 여성이 서명하라고 했다고 했다. 다른 노동자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식사할 때 서명했다 했다. 내용을 제대로 확인할 겨를도 없었고 일을 시작하기 전이니 서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지 몰라 모두 서명했단다.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제약하기 위해 이러한 꼼수를 썼던 버스 안의 ‘그 여성’과 업무대행을 돈 주고 맡겼던 농장주를 진지하게 조사하고 문제를 파헤쳐야 할 노동부 근로감독관은 “캄보디아어로 적혀 있는데 이 내용을 몰랐느냐, 왜 서명을 했느냐”며 노동자를 압박했다. 더 화나는 일은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사장처럼 이주노동자들을 “애들, 애들” 이라고 불렀다. 여러 번 항의했지만 자기가 부르는 게 아니라 알아듣기 쉽게 사업주가 하는 말로 지칭할 뿐이라고 했다. 대체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인가. 노동자가 알아듣기 쉽고 존중하는 호칭을 쓰면 된다.

한국에서 소비하는 깻잎 70%가 밀양에서 난다고 한다. 밀양에서 일하는 2천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은 자유롭게 휴식을 취한다는 근로확인서에 서명하고도 한 시간만 쉬고 11시간 동안 뼈 빠지게 일하는 부자유스런 삶을 살고 있다. 첫 상담 건이 채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두 번째, 세 번째 상담이 밀양으로부터 밀려오고 있다. ‘밀양 송전탑 투쟁했던 할머니들께 연락해볼까? 밀양 농민회에 도움을 청해볼까? 노동부를 압박하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고민이다. 나처럼 깻잎 좋아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주면 어떨까?

김그루 <이주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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