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이렇게나 화제였을 때가 있었던가. 41.1%의 득표율로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에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2주를 지나고 있는 지금 90%에 육박할 만큼,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국민의 만족과 기대가 높은 상황이다.

이런 높은 지지율의 배경엔 국민과 허니문 기간이라는 시기의 요인과 탄핵된 전임 대통령 박근혜 씨와 대비 효과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론 충분한 설명이 불가능하다. 대통령의 탕평 인사로 확인한 검찰·재벌 개혁과 유리천창 타파 의지, 인천공항 비정규직 1만여 명 정규직 전환 약속으로 드러낸 노동개혁 의지, 4대강 정책감사 지시로 시동 건 적폐 청산 작업 등에 대해 국민이 만족을 표시하며 기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 전국언론노동조합이 만든 박근혜 정권 언론부역자 퇴진 촉구 선전물.

정부의 의지 표명과 국민의 기대만 있는 게 아니다. 이제 겨우 시작 단계이긴 하지만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국정농단 세력들이 죗값을 치르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또 아직 일부이긴 하지만 개혁의 대상으로 꼽히는 기업들 또한 조금씩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SK브로드밴드가 위탁 협력업체 비정규직 5,200명의 정규직 직접 고용을 위한 자회사 설립을 의결했다. CJ그룹은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근무시간 외 카카오톡 업무지시 금지와 자녀 입학 돌봄 휴가 보장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경영 혁신 방안을 내놨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지난 가을과 겨울, 봄까지 광장을 지킨 촛불 시민들이 전 정권과 함께 적폐로 지목한 언론은 새 정부 출범 후 변화하는 일련의 흐름들을 중계하고 있을 뿐, 정작 스스로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언론단체 등은 변화 없이 버티는 언론의 모습을 공영언론에서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세월호가 가라앉던 순간 보험금을 먼저 계산하거나 늑장 구조에 대한 비판에서 대통령을 지우는데 골몰했던, 지난 9년 동안 용비어천가 부르기에 앞장서며 이에 저항하는 언론인들을 찍어내는 데 앞장섰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공영언론의 경영진들이 여전히 아무 일 없다는 듯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정권이 교체됐다고 법에서 임기를 보장하는 공영언론 사장의 거취 문제를 말하는 일 자체가 구태라고 지적한다. 원칙적으로 맞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원칙을 말하기에 앞서 짚어야 할 게 있다. 공영언론 사장의 임기를 법에서 정하는 이유다. 그 이유는 바로 헌법과 방송법 등의 언론관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언론의 자유, 편집권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때문에 질문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공영언론 경영진들은 자신의 임기를 보장하는 이유인 책무들을 과연 제대로 수행했던가.

▲ 전국언론노동조합이 만든 박근혜 정권 언론부역자 퇴진 촉구 선전물.

이에 대한 답을 위해 청와대의 일상 보도 검열에 굴종한 사례들을 폭로했던 한 공영방송의 전임 보도국장의 증언이나, 언론인들이 구성한 언론노조에서 지난해 12월과 올해 4월 두 차례 발표한 언론부역자 60인 명단 등을 굳이 돌아볼 필요도 없다.

지금 이 순간 공영언론의 언론인들은 “더 이상 회사를 망치지 말고 떠나라”(5월 23일, 언론노조 KBS본부)며 사장 등 경영진과 이사진의 용퇴를 요구하고, “MBC 문제의 해결은 언론 개혁의 최우선 과제”라며 “국민과 함께 경영진을 끌어 내리겠다”(5월 22일, 언론노조 MBC본부)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안타까운 건 이런 주장을 하는 언론인들을 향한 세간의 시선이 많이 싸늘해진 현실이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나, 지난 9년 동안 차츰차츰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라는 언론의 본령을 지우고 침묵을 선택한 언론(인)들이 반성은커녕 교체된 권력을 향해 언론의 제 기능을 하겠다며 비판을 해대고 있다고 불신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이렇다보니 언론 내부의 적폐 청산을 주장하는 언론인들은 ‘우리가 왜 적폐냐’며 반발하는 경영진들과 싸움만이 아니라, 냉소와 원칙적인 응원 사이에 위치한 대중의 신뢰 회복이라는 과제까지 해결해야 하는 힘겨운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혁명’이라고까지 일컫는 촛불 시민들이 연 새 시대에 언론(인) 스스로 적폐로 지목한 세력들과 결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언론을 대하는 정권의 태도에 따라 비판과 침묵을 오가는 습속을 끊어내기 위한 길을 스스로 찾아낸다면 언론(인)을 향한 대중의 신뢰는 전에 없이 견고해질 것이다. 개혁으로 향하는 열차의 마지막 칸에 탑승했다는, 어쩌면 진짜의 위기감이라고도 부를 정도의 마음가짐이 필요한 이유다.

김세옥 미디어 관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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