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말까지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1만 명으로 늘리겠다”던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하자 일주일 만에 “올해 안에 협력사 직원 1만 명을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5‧18 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 참가자들은 9년 만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제창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주일 동안 보인 행적은 대통령이 얼마나 큰 권한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노동 분야에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 법을 바꾸지 않고 노동3권 보장을 할 수 있는 일이 쌓여 있다.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비정규직 철폐 ▲노조 할 권리‧노동3권 보장 ▲노동시간 단축‧청년실업 해소로 정리했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은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시금석이다. 당장 최저임금위원회가 6월29일까지 최저임금 안을 내야 한다.

올해 최저임금은 월 135만원(시급 6470원) 수준으로 2015년 기준 비혼단신노동자 생계비 167만 원에 미치지 못할 만큼 낮다. 주요 대선주자 다섯 명은 선거운동 기간에 시기는 다르지만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약속했을 만큼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사회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돼 있다.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에 최저임금 1만 원 실현을 위한 단계별 이행안을 내라고 촉구하고 있다. 재원 마련, 자영업자 대책 등을 포함한 구체 이행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다.

▲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은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시금석이다. 당장 최저임금위원회가 6월29일까지 최저임금 안을 내야 한다. 5월1일 대학로에서 ‘최저임금 1만 원, 비정규직 철폐, 재벌체제 해체, 노조할 권리 보장 2017년 세계 노동절 대회’를 마친 대형마트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1만원을 상징하는 카트를 밀며 광화문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사진=신동준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1만 원 이행안과 함께 최저임금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법정최저임금을 받지 못 하는 노동자가 264만 명(13.7%)에 달하고, 정부 부문인 공공행정에서도 13만 명(12.9%)이나 된다(한국노동사회연구소,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민주노총은 실효성 있는 최저임금제도 실시를 위해 ▲근로감독관 증원 등을 통한 근로감독 강화 ▲최저임금 전담 명예근로감독관제 도입 ▲상습 최저임금위반사업장 사업주 명단 공개 ▲공공부문 최저임금 위반 시 정부기관‧공공기관 평가 반영 등의 행정조치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공공부문부터 모범을 보이라고 주문하고 있다. 공공기관이 발주처, 원청 사업주인 경우 최저임금을 위반하면 입찰을 하지 못 하도록 하는 등 제재를 가하고,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사용자, 발주처인 경우 최저임금보다 높은 급여를 줘야 한다는 제안이다.

 

비정규직 철폐

정부 공식통계에 따르면 2015년 8월 현재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임금노동자의 45.0%에 달하는 868만 명이다(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부가조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정부 통계에서 각각 정규직과 자영업으로 잘못 분류한 사내하청 노동자와 특수고용 노동자, 조사대상에서 제외한 이주노동자를 더하면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임금노동자의 50%를 크게 넘어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한국노동사회연구소, 「한국의 노동 2016」).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3권을 누리지 못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민주노총은 ▲특수고용노동자 ▲간접고용노동자 ▲공공부문 비정규직 등 고용형태별로 행정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아래 노조법)상 노동자 범위를 넓게 해석해 특수고용노동자에게 노동조합 설립 기회를 넓히자고 제안하고 있다. 대법원은 2014년 골프장 캐디 사건에서 골프장 캐디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는 아니지만 노조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고용노동부와 행정관청이 대법원 판례를 받아들여 특수고용노동자에게 노조설립신고증을 내줘야 한다는 제안이다. 노조 설립 이후 노조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적극 단체교섭 지도,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엄벌 등이 필요하다.

민주노총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개념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최근 대법원은 시간강사, 백화점 판매원, 채권추심원 등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했다. 문재인 정부가 판례에 맞춰 특수고용노동자의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폭넓게 인정하고 이를 근거로 사업장 근로감독 시행, 산재보험료‧고용보험료 징수 등 적극 행정조치를 취해야 한다.

현행 노조법은 간접고용노동자의 실질 사용자인 원청의 사용자 의무를 부정하고 있지만 대법원은 현대중공업 사건에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가 부당노동행위를 할 경우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 민주노총은 간접고용노동자 대책으로 ▲원청이 단체교섭에 나서도록 적극 행정지도 ▲원청의 사업장 안 노조활동, 쟁의행위 방해를 부당노동행위로 엄벌 등을 촉구하고 있다. 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5월17일 청와대 앞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에서 ‘문재인 정부에 바란다’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김경훈

민주노총은 ▲원청이 단체교섭에 나서도록 적극 행정지도 ▲원청의 사업장 안 노조활동, 쟁의행위 방해를 부당노동행위로 엄벌 ▲법원의 불법파견 1심 판결, 고용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 시 특별근로감독을 통한 전수조사 등을 촉구하고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실태를 살펴보면 역대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큰 의지가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사회공공연구원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가 56만여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사회공공연구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책 평가 연구」).

정부가 기존에 내놓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대책이 부실하고, 정규직이 아닌 무기계약직 전환에 초점을 맞춘 데다 무기계약직 전환대상도 예외가 많은 등 여러 문제가 있었다.

민주노총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간접고용 문제를 포함한 종합 대책 마련 ▲간접고용을 양산하는 공공기관 경영지침, 경영평가지표 전면 수정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 전면 재검토 등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 할 권리‧노동3권 보장

전태일 열사는 1970년 11월13일 봉제노동자들의 참상을 숨기는 ‘허울 좋은 법조문’인 근로기준법을 들고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노조 할 권리, 노동3권이 법전에 있지만 현실에서 평등하게 작동하지 않고 있다. 노동권을 지킬 사실상 유일한 수단인 노동조합 조직률이 10%에 불과하고, 노조를 만들고 가입하려면 임금삭감, 해고 등 온갖 탄압을 겪는다. 민주노총은 노조 할 권리‧노동3권을 현실의 권리로 만들기 위해 ▲노동개악 4대 행정지침 폐기 ▲전교조․전공노 법외노조화 철회 ▲부당노동행위 처벌 강화를 위한 강력한 행정조치 등 세 가지를 제안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박근혜 정부가 일방 발표한 저성과자 해고 지침,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지침,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지침, 단체협약 시정지도 지침 등 노동개악 4대 행정지침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노동개악 4대 행정지침은 노동조건에 관한 기준을 법률로서 정하도록 규정한 헌법 32조를 위반하고, 노사대등의 결정원칙을 규정한 근로기준법 4조를 무력화하는 위헌, 불법 행정지침이다.

▲ 금속노조는 ▲부당노동행위 처벌 강화 ▲사용자에게 부당노동행위 입증책임 부과 ▲노조파괴 가담 공인노무사 제재 강화 등을 담은 노조파괴 금지법을 발의할 계획이다. 한광호 열사가 3월4일 천안 풍산공원 묘역에 묻히고 있다. 사진=신동준

민주노총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위원장 조창익, 아래 전교조), 전국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김주업, 아래 전공노)의 법외노조화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전교조는 2013년 법외노조 통보를 받았고, 전공노는 2002년 설립 이래 계속 설립신고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전교조에 내린 법외노조 통보를 직권취소하고, 전공노 설립신고증을 즉각 교부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나아가 전교조에 내린 법외노조 통보의 법률 근거인 노조법 시행령 9조2항 폐기를 제안하고 있다.

헌법이 노동3권을 명시하고 있지만, 정작 노동3권을 짓밟은 사용자들은 대부분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 금속노조 법률원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노조법 위반 형사공판사건 1심 판결을 조사한 결과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용자는 0.34%에 불과했다.

노조는 ▲부당노동행위 처벌 강화 ▲사용자에게 부당노동행위 입증책임 부과 ▲노조파괴 가담 공인노무사 제재 강화 등을 담은 노조파괴 금지법을 발의할 계획이다.

민주노총은 노조파괴 금지법 입법 이전에 문재인 정부가 ▲부당노동행위 관련 구속원칙과 구형 형량 강화 ▲부당노동행위 발생 사업장에 대한 행정·재정 제재조치 강화해 부당노동행위를 엄벌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노조 할 권리‧노동3권 보장을 위해 ▲노조활동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청구 철회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 87호, 98호 비준 절차 개시 ▲근로감독제도 개선 ▲구속노동자 석방과 사면 복권 등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청년실업 해소

‘저녁이 있는 삶’이란 구호가 인기를 끈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한국의 장시간노동 문제는 심각하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두 번째로 길다. 한국 노동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 년 평균 노동시간 1,766시간 보다 347시간 긴 2,113시간 일한다.

민주노총은 장시간노동 문제 해결을 위해 휴일노동을 연장노동에 포함하지 않는 고용노동부 행정해석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2000년 ‘근로기준법 52조의 연장근로시간에 휴일근로시간이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행정해석을 내놔 최장 주 68시간의 불법 장시간 노동을 정당화했다.

민주노총은 행정해석을 폐기해 법정 최장노동시간인 주 52시간을 준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노동시간 단축과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연장노동 한도 준수 근로감독 강화 ▲노동시간 단축 청년 신규 채용기업 인센티브 강화 ▲공공‧안전 인프라 확충으로 공공부문 일자리 만들기 등을 제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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