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산재사망자 유족을 우선 채용하는 단체협약 조항이 ‘사회통념에 맞지 않는다’, ‘반사회적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산재 사망자 유족 우선채용 조항을 제한하려는 행태야말로 사회통념에 맞지 않습니다.”

우승명 한신대학교 교수는 산재사망자 유족 우선채용 조항(또는 유족 특별채용 조항, 아래 유족채용조항)을 위법으로 몰아가는 정부와 법원을 강하게 비판했다. 노조와 이정미(정의당)‧이용득(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4월10일 ‘산재 사망자 유족보호단체협약이 반사회질서 법률행위인가?’ 국회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노동계‧법조계 전문가들은 “유족채용조항은 취약한 사회보장제도 탓”이라며 “사회보장 성격을 띤 유족채용조항을 위법으로 보는 판단은 단체협약의 자치를 매우 축소하는 행위”라고 입을 모았다.

 

“유족 우선채용은 사회보장 취약 탓, 오히려 정부가 장려해야“

서울고등법원은 기아자동차에서 일하다 산재로 사망한 ㄱ조합원 유족이 제기한 채용청구 소송에서 “유족 우선채용 조항은 민법 103조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되어 무효”라고 2016년 판결했다. 산재 사망자 유족 1인에 대한 특별채용을 규정한 기아자동차지부 단체협약이 사회통념에 맞지 않다고 판단한 셈이다.

서울고등법원은 “유족채용조항이 사용자의 고용계약 자유를 현저하게 제한하고, 사실상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결과를 초래해 고착된 노동자 계급의 출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민법 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날 발제를 맡은 박수근 한양대학교 교수는 이 판결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당해 생계가 어려워진 유족을 보호하려는 활동을 사회질서 위반으로 파악하면 노동조합 활동목적을 왜곡하고 사회질서를 매우 확대해석하는 판단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박수근 교수는 “현재 산재보상금액과 손해배상액이 불충분해 노동자나 가족들이 경제활동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유족채용조항은 산재사망자와 유족의 어려움을 완화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노력한 결과물”이라고 평가했다.

▲ 박유기 지부장은 4월10일 ‘산재 사망자 유족보호단체협약이 반사회질서 법률행위인가?’ 국회토론회에서 “1993년부터 2017년 4월까지 사망이나 6급 이상 장해로 대체 채용된 경우는 고작 41명에 불과하다며 “유족특별채용이 고착된 노동자 계급의 출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법원 주장을 비판했다. 박유기 지부장은 “현대자동차 재직자가 6만5천 명이고 2017년부터 5년 동안 정년퇴직하는 조합원이 7,400여 명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신동준

토론자로 나선 우승명 한신대학교 교수는 “유족채용조항은 공공 사회보장제도가 매우 취약해 산재보험의 유족연금 제도만으로 산재 이후 삶의 질 급락을 피할 수 없다는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승명 교수는 “유족이 유족연금에 의지하는 상황에서 기업과 노조가 추가 보호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족채용조항을 긍정 평가할 수 있다”며 “이런 기업들이 늘어나도록 정부가 장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65,000명 중 41명이 ‘고착된 노동자 계급’이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박유기 노조 현대자동차지부장은 현대자동차지부 단체협약 사례를 들어 법원 판결을 반박했다.

현대자동차지부와 회사는 1993년 “회사는 조합원이 업무상 사망하였거나 6급 이상의 장애로 퇴직할 시 직계가족 중 1인에 대해 결격사유가 없는 한 특별채용할 수 있다”는 단체협약을 맺었다. 이 조항은 2013년 단체교섭에서 “회사는 조합원이 업무상 사망하였거나 6급 이상의 장애로 퇴직할 시 직계가족 또는 배우자 중 1인에 대해 결격사유가 없는 한 요청일로부터 6개월 이내 특별 채용하도록 한다”는 내용으로 개정했다.

박유기 지부장은 “1993년부터 2017년 4월까지 사망이나 6급 이상 장해로 대체 채용된 경우는 고작 41명에 불과하다며 “유족특별채용이 고착된 노동자 계급의 출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법원 주장을 비판했다. 박유기 지부장은 “현대자동차 재직자가 6만5천 명이고 2017년부터 5년 동안 정년퇴직하는 조합원이 7,400여 명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박유기 지부장은 “유족채용조항이 사용자의 고용계약 자유를 현저하게 제한한다”는 법원 주장에 대해 “유족채용조항에 따라 비조합원인 총무직, 관리직 직원도 특별 채용해왔다”고 반박했다.

 

고용노동부, 민법 103조 위반 아니다

박현희 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법원의 민법 103조 적용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현희 노무사는 “수십 년 전부터 존재한 채용 조항에 대해 대법원이 무효를 확인한 판례가 없었다. 고용노동부가 2014년까지 위법이라는 의견을 낸 적이 없고 질의회신에서 해당 조항이 유효하다고 밝혔다”고 설명했다.

박현희 노무사는 “특히 노사관계를 지도하고 국가 노동정책을 수행하는 고용노동부조차 2015년까지 유족 우선채용조항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꼬집었다.

고용노동부는 2015년 3월 ‘위법‧불합리한 단체협약 개선 지도 계획’를 발표할 때 “업무상 재해로 인한 사망자에 대한 특별채용은 민법 103조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조항으로 인한 취업자 비율이 높지 않아 삼자의 기본권 침해 정도가 약하고, 업무상 재해자에 대한 사용자의 보상 필요성을 고려할 때 기본권 침해 정도가 사회 통념상 허용 한도를 넘어선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김상구 노조 위원장은 이날 토론회 인사말에서 “정부와 법원이 산재사망자 유족채용조항이 ‘반사회적’이라고 한다. 노사가 자율로 맺은 단협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라며 “오늘 토론회가 유족채용조항을 법조계와 사회에서 토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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