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아메리카는 세계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9세기 초 독립을 쟁취했지만 미국의 뒷마당으로 전락해 초국적 자본의 착취와 수탈의 대상이 됐다.

라틴 아메리카는 투쟁의 전통에서도 특수성을 보여줬다. 19세기 독립혁명을 이끈 무장투쟁 전통에 더해 1959년 쿠바혁명과 1970년 칠레 좌파정부의 실험, 1979년 니카라과 혁명까지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이 벌인 투쟁은 세계 혁명운동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21세기 초반 라틴 아메리카의 지형은 다른 세계와 전혀 달랐다. 2015년을 기준으로 라틴 아메리카는 멕시코와 콜롬비아를 제외한 대부분 국가에서 좌파정부가 집권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우고 차베스, 핑크타이드를 이끌다

라틴 아메리카 대다수 국가에서 좌파정부가 들어선 상황을 일컫는 ‘핑크 타이드’는 문자 그대로 분홍색 물결을 의미한다. 1959년 쿠바혁명 이후 1979년 니카라과 혁명까지 라틴아메리카 해방운동의 중심은 체 게바라가 상징하는 혁명 무장투쟁이었다. 이 거대한 물결은 미국과 과두지배세력의 폭압과 반동 앞에 실패했다. 라틴 아메리카는 가장 먼저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실험장이 됐다.

혁명 역사의 종말이 선언됐지만 라틴 아메리카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일어났다. 1995년 멕시코의 사파티스타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4차 대전을 선포하고 새로운 형태의 봉기를 시작했다. 1998년 베네수엘라에서 무명의 예비역 중령 우고 차베스가 부패하고 무능한 과두체제에 맞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1992년 군부쿠데타를 주도했던 차베스가 무장투쟁을 포기하고 합법 선거공간에 뛰어들어 다른 후보를 압도하는 지지로 당선됐다.

▲ 선거혁명의 물결은 1990년대 후반 신자유주의의 누적 모순에 저항하는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투쟁과 축적된 역량 덕분에 가능했다.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 봉기(1989년),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봉기(1995년), 에콰도르 원주민 봉기(2001년)와 경제 붕괴에 저항한 아르헨티나 봉기(2001년), 볼리비아의 물 봉기와 1, 2차 가스 전쟁(2000년, 2003년과 2005년) 등 신자유주의에 맞선 새로운 사회운동은 좌파정치와 정치혁명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멕시코 사파티스타 마르코스 부사령관(사진 가운데)과 대원들.

대통령에 당선된 우고 차베스는 제헌의회를 소집해 새 헌법을 제정하고 새로운 5공화국 건설에 나섰다. 2002년 4월 권력을 상실한 우파세력은 쿠데타를 시도하지만 분노한 베네수엘라 민중이 거리로 뛰쳐나와 쿠데타 세력을 몰아내고 차베스를 다시 대통령에 복귀시켰다. 19세기부터 혁명과 쿠데타로 점철했던 라틴 아메리카 역사상 처음 민중의 힘으로 쿠데타를 뒤집고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

 

좌파 승리의 물결

신자유주의와 과두제에 맞선 민중의 정치적 승리는 베네수엘라에 머물지 않았다. 대선에 네 번째 도전했지만 당선할 수 없었던 브라질 노동자당의 룰라가 2002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보수 양당 100년 지배 역사가 결코 끝날 것 같지 않던 우루과이에서 확대전선(FA)의 타바레스 후보가 승리했다. 또 인디오 원주민이 많은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에서도 에보 모랄레스와 라파엘 코레아 후보가 각각 2005년 대선에서 승리를 거뒀다.

신자유주의를 반대하고 민중의 지지를 받는 좌파 후보들이 연이어 대선에 승리하면서 거스를 수 없는 반신자유주의 흐름을 형성했다. 이 흐름은 선거혁명을 통해 반신자유주의 좌파정부를 전 대륙으로 확산시켰다. 이것이 라틴 아메리카를 휩쓴 핑크 타이드이다.

 

핑크 타이드를 추동한 아래로부터 투쟁

20세기 좌파들은 선거를 통한 집권이 불가능하다고 믿고 총을 들었다. 1970년 칠레 민중연합(UP)의 정치 실험은 1973년 9월11일 피노체트 쿠데타와 살바도르 아옌데의 죽음으로 끝을 맺었다. 변화된 상황 속에서 선거를 통한 승리는 가능했고 거스를 수 없는 현상이 됐다.

선거혁명의 물결은 1990년대 후반 신자유주의의 누적 모순에 저항하는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투쟁과 축적된 역량 덕분에 가능했다.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 봉기(1989년),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봉기(1995년), 에콰도르 원주민 봉기(2001년)와 경제 붕괴에 저항한 아르헨티나 봉기(2001년), 볼리비아의 물 봉기와 1, 2차 가스 전쟁(2000년, 2003년과 2005년) 등 신자유주의에 맞선 새로운 사회운동은 좌파정치와 정치혁명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핑크 타이드의 위기

1990년 라틴 아메리카의 좌파정당들이 브라질 상파울루에 모였다. 혁명운동의 반세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와 브라질의 룰라가 주도해 다양한 좌파정당들이 범대륙 연대체를 구성한 것이다. 이 모임은 개최지 이름을 따서 ‘상파울루 포럼’이라 불렸다. 당시 쿠바를 제외하면 집권한 좌파정당은 없었고 브라질과 칠레를 제외하면 의석수도 미미했다.

15년 후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남반구 주요 국가에 좌파정부가 들어섰고, 베네수엘라의 통합사회주의당(PSUV)과 볼리비아의 사회주의운동당(MAS), 에콰도르의 조국동맹(AP) 등 새로운 좌파정당이 등장했다.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와 엘살바도르의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FSLN), 우루과이의 확대전선(FA) 등 과거 무장투쟁을 주도했던 정당들도 선거혁명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 좌파정당들은 서구의 사민주의 정당보다 훨씬 더 급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15년 차베스의 사망 이후 핑크 타이드의 물결은 제국주의와 과두세력의 반격에 부딪혀 위기에 처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등장한 우파정권, 브라질에서 벌어진 지우마 후세프 대통령 탄핵, 베네수엘라의 경제위기와 2015년 총선 참패 등 핑크 타이드의 거센 물결이 주춤하고 있다.

서구 언론이 원하는 것처럼 핑크 타이드가 끝나지 않았다. 일시 조정국면을 겪고 있을 뿐이다. 21세기 사회주의를 향해 전진할 것인가, 아니면 핑크 타이드의 종말과 신자유주의로의 회귀로 끝날 것인가. 이 투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원영수 <국제포럼>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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