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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 함께라면 끝까지 한다”[노동문화 처음처럼 08] 구미지부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율동패 ‘허공’
김경훈 편집부장  |  edit@ilabo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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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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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이면 수많은 노동자, 시민이 박근혜 정부 퇴진과 적폐청산을 외치며 촛불을 들고 모이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광화문광장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박근혜 정부 퇴진을 요구하며 100일 넘게 천막에서 농성 중인 ‘박근혜-재벌총수 구속 비정규직 철폐, 정리해고 분쇄 민주노조 사수를 위한 공동투쟁단’(아래 공동투쟁단) 동지들이 있다. 노조 구미지부 아사히비정규직지회도 두 조로 나눠 교대로 천막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공동투쟁단이 농성을 시작한 지 102일째 되는 2월10일, 아사히비정규직지회(지회장 차헌호, 아래 지회) 율동패 ‘허공’을 농성장에서 만났다. 남기웅 패원은 조가 달라 함께 하지 못했지만, ‘허공’ 패원들은 대화 내내 “잘하든 못 하든 ‘허공’은 셋이 함께 한다”며 끈끈한 유대감을 과시했다.

 

나이트클럽 댄스 같았던 첫 공연…‘허를 찌르는 공연’으로 거듭나다

송동주 ‘허공’ 패장은 “지금도 첫 공연을 생각하면 부끄럽다”면서 ‘허공’ 설립 당시를 회상했다. “2015년 9월5일, 투쟁사업장 동지들이 함께 모이는 ‘연대 한마당’을 했는데 당시 조직부장이 ‘우리도 동지들에게 뭔가 보여줘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억지로 다섯 명을 모았어요. 율동에 대한 개념도 없을 때니까 시키는 대로 나이트클럽에서 틀 법한 음악에 맞춰 나이트클럽 댄스 같은 춤을 췄죠. 공연하고 나니 너무 부끄러웠는데 공연 본 동지들이 많이 놀랐을 거예요(웃음).” 송동주 패장은 “원래 첫 공연이 끝난 후 다시 공연을 안 하려고 했는데 울산과학대 동지들이 한 달 뒤쯤 공연 요청을 했다”며 “고마운 마음에 구미지부 KEC지회 율동패 ‘창공’에 부탁해 율동을 배우고,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송동주 패장은 “‘허공’은 구미지부 KEC지회 율동패 ‘창공’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지회 설립 전부터 차헌호 지회장과 김성훈 KEC지회장이 친했던 데다 노동조합 활동이 뭔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해고를 당하다 보니 자연스레 주변에서 투쟁하는 KEC지회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설명이다. ‘허공’이란 이름도 “KEC가 ‘창공’이니 우리는 ‘허공’으로 하자”고 장난삼아 붙였던 이름이다.

   
▲ 장명주 패원은 “힘들어 할 때 두 동지가 많이 다독여준다. 힘들어서 무대에 서기 싫을 때도 있었지만 셋이 함께 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같이 하고 있다”며 “셋이 함께라면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노조 구미지부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율동패 ‘허공’이 2016년 1월15일 ‘비정규직 철폐, 민주노조 사수, 아사히비정규직 투쟁 200일 금속노동자 결의대회’에서 공연하고 있다.

활동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처음 율동패를 제안한 조직부장이 지회 활동을 그만두고, 4~5개월 후 다른 한 명도 생계투쟁을 나가며 ‘허공’ 활동을 그만뒀다. 2016년 4월 회사가 2차 희망퇴직을 실시하면서 조합원 절반이 나가고, 구미시청이 농성장을 강제 철거하고, 생계비 문제 때문에 조합원들이 전국으로 연대투쟁을 다니는 등 연달아 사건이 터지면서 교육도 계속 못 받았다. 지금도 상경투쟁 때문에 교육은 못 받고, 짬짬이 연습만 하고 있다.

‘허공’은 하이텍알씨디코리아, 하이디스, 동양시멘트, 성주 사드집회, 구미 촛불집회 등 수많은 투쟁현장에 연대하고 있다. 특히 ‘허공’이 2016년 1월 ‘비정규직 철폐, 민주노조 사수, 아사히비정규직 투쟁 200일 금속노동자 결의대회’에서 선보인 ‘노가바’ 공연은 여러 동지가 인상 깊은 공연으로 꼽는다. 싸이가 부른 가요 ‘낙원’의 가사를 지회 투쟁 내용으로 바꿨다. 투쟁 현장에서 보기 힘든 랩이 가사의 80% 가량을 차지하는 노래다.

당시 랩을 맡았던 장명주 패원은 “랩은 평소에 좋아하고, 즐겨서 랩 하는 건 힘들지 않았다. 대신 가사를 바꾸니 원래 가사와 바꾼 가사가 헷갈려서 공연 중에 실수했다”며 “많이 연습했는데 그래도 결국 틀렸다”며 수줍게 웃었다. 장명주 패원은 “원래 ‘허공’이란 이름은 아무 뜻도 없었는데 그 공연 이후 ‘허를 찌르는 공연을 하는 팀’이란 뜻이 생겼다”는 후일담을 들려줬다.

 

“틀리고, 잘 못 해도 둘보단 셋이 낫다”

장명주 패원은 지난해 6월 다치면서 한동안 ‘허공’ 활동을 못 했다. “몸을 제대로 안 풀고 공연하다 어깨 근육이 찢어져서 4개월 정도 율동을 못 했어요. 그때 둘이 공연하는 걸 봤는데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셋이 하고 싶은데 같이 못 해서 아쉽기도 했죠.” 장명주 패원은 “이제는 몸을 꼭 30분씩 풀고 율동한다”며 “다른 율동패 동지들도 율동하기 전에 반드시 몸을 잘 풀어야 한다”고 농담 섞인 충고를 건넸다.

장명주 패원이 의도치 않게 활동을 중단한 시간 동안 남은 두 사람도 마음고생을 했다. 송동주 패장은 “잘하는 것도 좋지만,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느낀 시간이었다”고 입을 열었다. “지금 세 명이 ‘허공’을 하고 있는데 정말 형제 같은 동지들을 알게 돼서 좋아요. 사실 명주 형이 연습할 때 좀 쳐지고, 공연에서 실수도 가끔 해요. 그런데 그렇다고 저희 두 명이 하면 셋이 할 때보다 잘하고, 호응도 좋냐 하면 그건 또 아니거든요. 저희가 세 명일 때 동지들이 호응을 많이 해주세요. 그래서 잘하든 못 하든 무조건 우리 셋은 ‘허공’이고, 같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때 많이 했죠.”

장명주 패원도 “힘들어 할 때 두 동지가 많이 다독여준다. 힘들어서 무대에 서기 싫을 때도 있었지만 셋이 함께 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같이 하고 있다”며 “셋이 함께라면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여러 정리해고 사업장 소속 문화패들이 그렇듯 ‘허공’ 패원들도 복직 후에 ‘허공’의 명맥을 이을 수 있기를 바란다. 다만, 그때는 ‘허공’ 2기가 출범해서 다른 동지들이 율동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송동주 패장은 “우리가 복직할 때면 이미 나이를 많이 먹었을 것 같다”며 “공장으로 돌아갈 때까지는 열심히 동지들에게 힘줄 수 있게 공연하고, 그 후에는 다른 동지들이 ‘허공’의 명맥을 이어줬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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